다수의 승리가 정의가 되고자 한다면
2020년 4월16일 (세월호 6주년과 415총선의 결과에 대한 소회)
19세기 서양의 선진국들은 민주주의와 제국주의가 양립하는 모순을 보였다. 민주주의는 자유평등 박애를 내세운 숭고한 이념인데 침략과 지배 착취를 일삼는 제국주의와 함께 갈 수 있었을까?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자 풀기 어려운 과제이다.
문제는 과연 다수의 생각이 정의인가 하는 점이다. 제러미 벤덤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론은 소수자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형제복지원’사건은 노숙자나 전과자 등 사회불안요소를 일정한 곳에 가두어 두는 것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가져오겠다는 생각이 낳은 비극이었다. 과거 장애인을 격리하는 것으로 다수의 정상인(?)의 심기를 편하게 하려고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민중의 지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수가 힘을 합해 민주주의를 실현시켰던 것은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을 뿐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수자나 외부인에 대한 공격은 민주주의 아래에서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자주 경험하게 된다.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에 대한 근거도 배려도 없는 맹목적인 비난은 좋은 예라 할 것이다. 그것이 국가적으로 외부세계를 향할 때 약소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발전한 것이다.
민주당과 범여권의 대승에 취해 자칫 다수의 횡포가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는 새로운 사회발전을 이룰 기회를 잃을 것이다. 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을 비롯한 많은 과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집권여당과 대통령은 다수의 욕망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주어진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양이 되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할 것이다. 소수자를 위해 다수가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여 그들도 최소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작년 영국에서 불법이민을 하려던 39인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보인 우리국민의 반응은 가히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것은 제국주의적인 사고로부터 한 걸음도 못 벗어난 집단이기주의였다. 이제 우리는 동방의 은자가 아니라 선진국으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 일본이 선진국으로서의 성숙한 자세를 보이지 못해 국제사회의 맹비난을 받고 ‘일본때리기’에 직면했던 것은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국민이 더 높은 곳으로 성장해야 할 때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 복무를 OECD국가중 가장 마지막에 허용한 부끄러운 과거가 우리에게 있다. 민주당의 승리로 자칫 정의가 이겼다는 식의 자화자찬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놓친다면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 그것은 자칫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커다란 함정이 될 수 있다.
아무쪼록 하늘이 준 이 기회를 통해 근본적인 변화와 성장을 가져오기 바란다. 2004년 선거승리가 도리어 개혁의 길을 막았던 아픈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승리를 새로운 도전의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첫 걸음을 떼기를 바란다. 그것이 국민이 다시 안겨준 지지에 대한 참다운 보답이 될 것이다.
인간은 숫자로 처리할 대상이 아니다. 마이클 샌들은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이 보다 효율이 좋다는 생각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예수는 99마리와 한 마리의 양의 비유에서 때로는 소수의 삶을 위해 다수가 불편함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권이 다수의 지지를 얻으면 그들을 위해 소수의 행복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할 위험이 있다. 이번 선거의 승리가 그러한 불의를 가져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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