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빛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2. 우리민족의 역사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

닥터 양 2019. 12. 31. 20:14

2. 우리민족의 역사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

  E.H.카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는 역사가의 객관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역사가는 사열대 위에서 사열하는 사열관이 아니라 사열을 받는 대열에 서 있는 존재이다.” 사열을 하는 사열관은 모든 대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대열에 서 있는 존재들은 그럴 수 없고 자신의 시야에 제한된 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역사가는 시대라는 대열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며 객관성이라는 것도 그러한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객관성이라는 것도 결국 시대적 사회적 개인적 한계 내에서의 또 다른 주관이다. 과거에는 국정교과서가 당연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획일적인 내용을 공부해야 마음이 놓이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과 개성을 존중하는 지금 국정교과서는 시대착오적인 산물이 되어 버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이다. 그런 결정은 누가 내리는가?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내리는 것이고 시대정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시대정신은 객관성의 기준마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국정교과서의 사례로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객관성을 기준으로 선택을 하였다. 국정교과서를 택한 사람들은 국정이 아니면 주관적 이야기(객관성이 없는)라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객관성을 추구하였지만 그 역시 또 하나의 주관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새로운 시대정신인 다양한 의견과 개성의 존중이 등장하자 국정교과서를 옹호하는 객관성은 더 이상 객관성이 아니게 된 것이다. 획일적 교육으로 국민의 통합을 이루고자 하던 시대정신의 시대에는 국정교과서가 객관성의 기준이었지만 다양한 의견과 개성의 존중이 시대정신이 된 후로는 그것은 더 이상 객관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 역사에 대한 평가도 시대정신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식민지시대에는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의 대립 가운데에 우리 역사가 평가되었다. 식민사관은 물론 우리 역사를 폄하하고 식민지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에 비해 민족사관은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객관성으로 삼아 역사를 연구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개발독재시대라 할 박정희시대에는 우리 민족의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비록 식민지지배 등 수난의 역사를 경험했지만 원래는 엄청난 저력을 가진 민족이라는 전제하에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자는 식의 역사관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민주주의시대에 걸맞게 민주화의 역사를 강조하는 역사교육이 강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해일 것을 각오하고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갖고 있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을 정리해 보겠다. 우리 민족은 원래 만주와 한반도를 무대로 위대한 역사를 써내려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와서 성리학일변도의 사회가 되어 무능하고 부패한 역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일제의 강점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해방 후 과거의 저력을 되살려 오늘날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이루었다.

  과연 이러한 인식에 오류는 없을까? 사실만을 논한다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고대사에 비하여 근세사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꼭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다. 나라에 대한 판단기준을 영토나 군사력에 한정하지 않고 문화나 문명이라는 척도까지 포함한다면 근세가 고대보다 뒤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상대성이다. 모든 평가는 상대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농구나 배구를 보러 가면 상대성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신장이 170이면 꽤 큰 편이나 그런 여성이 배구나 농구를 하기 위해 선수들 사이에 서 있다면 왜소해 보일 수 밖에 없다. 똑같은 체격이라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보기이도 한다. 180센티의 여자농구선수나 배구선수는 지금은 평범한 체구로 보이나 40년 전이라면 꽤나 큰 체구로 보였을 것이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여자배구팀의 평균신장은 174정도였으니 180은 매우 큰 신장이다. 하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강에 오른 여자배구대표팀의 평균신장은 180이 넘었기 때문에 180은 그냥 평균수준일 뿐이다. 더구나 베스트 7중 수비전담 선수를 제외한 6명의 평균은 185가 넘었기 때문에 실제 시합에서는 작은 선수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 역사의 경우도 이러한 상대성을 가지고 평가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우리조선은 민중을 착취한 나라라는 이미지는 착취로 인해 혁명이 일어난 프랑스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의문을 갖게 된다. 오죽했으면 자본가 계급이라할 부르조아마저 혁명의 대열에 앞장 섰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조선 시대에 쏟아진 저작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문화적으로 뒤떨이지기는 커녕 매우 선진적인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도리어 자랑스럽게 여길 역사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남의 나라에 해를 끼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고려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마도정벌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우리는 남의 나라나 민족을 침략한 적이 없다. 대마도정벌도 왜구의 침략에 견디다 못해 일어난 일종의 방위적 침략일 뿐 대마도를 정복하여 지배하고자 한 사실은 없다. 오늘날의 많은 선진국들이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한 지역에서 우리 민족만큼 오랜 세월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국가를 이루어 온 역사를 가진 민족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유대인들의 경우를 보면 2천 년 이상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아왔다. 우리가 역사에서 만나는 많은 민족들 여진족, 거란족 등-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알 수가 없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흡수되어 그 후손들이 살아있겠지만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몽골의 경우 지금 국가를 세워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청나라의 일부가 되어 그 지배를 받았다가 소련의 대중견제정책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럽국가를 이루는 민족들이 유럽에 정착해 국가를 이룬 것은 길어야 1500년 정도이다. 그나마 지금처럼 국가를 제대로 만든 시기는 그보다 훨씬 짧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최소 3,000년 이상 길게 보면 5,000년 이상 그렇게 살았으니 실로 자랑스러운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민족으로서. 이런 민족을 굳이 찾는다면 중국의 한족, 이집트, 인도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 한족과 이집트 인도는 세계 4대 문명을 이룬 지역과 민족이다. 우리는 그런 훌륭한 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민족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 제대로 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은 세계사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우리는 서양국가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세계의 최선진국가들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언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에서도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형질인류학적으로 서양인들은 우월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한다. 근현대사에서 서양이 패권을 장악하고 세계를 지배한 역사를 근거로 과거부터 쭉 우위에 있었다는 식의 유추를 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몽골의 기병들이 서양을 향했을 때 서양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기도 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유추가 진리 인 냥 여겨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교 성리학이 우리 민족을 망쳐버린 원인처럼 여기는 것도 이러한 유추와 무관하지 않다. 막스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를 통해 개신교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했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그 이전의 기독교가 자본주의발달에 장애가 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즉 어느 종교를 믿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그 영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성리학이나 유교가 발전에 장애가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오늘날 동아시아국가의 발전을 유교자본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에서도 알 수가 있다. 이제는 유교가 장애가 아니라 촉진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발전이 미국의 원조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에 대하여도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물론 미국의 원조가 큰 힘이 된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하고 나라의 살림을 살펴보니 마치 도둑맞은 집을 인수했다는 허탈감이 들었다고 했다. 수 십 억 달러의 미국원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경제적 자립을 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 많던 원조는 어디로 갔을까라고 묻고 싶은 지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집권한 후 우리나라는 놀라운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원조=성공은 아닌 것이며 그만큼 우리에게 그것을 살릴 저력이 있었고 박정희는 그것을 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하여 객관적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식민사관의 극복 같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객관적인 근거 없이 속된 말로 빨아대는식의 국뽕적 자부심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보다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세계사 속에 우리 민족이 차지하는 위치를 조명한 객관적인 역사 인식을 통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찾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결별하여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박정희는 우리식을 통해 경제발전과 자주국방의 길을 걸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역사에서 발견하여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조선시대에 대하여 상대성이 결여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객관적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우리는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객관적 자부심을 통해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