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유라고 쓰고 짐이라고 읽는다.

닥터 양 2019. 11. 16. 23:21

소유라고 쓰고 짐이라고 읽는다

1. 불필요한 소비와 소유로 인해 먹고 살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식에 대하여 의문점을 갖고 살아왔다..별 필요 없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정말 써야 할 곳에는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았고 가끔 그것을 어른들에게 질문하곤 했다. 어른들의 반응은 대부분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당연한 것에 왜 의문을 갖느냐고 하며 호통을 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값비싼 장롱. 알다시피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방에 놓여있는 장롱의 수준으로 그 집안을 평가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수백은 보통이고 수천을 하는 장롱이 왜 꼭 필요한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일본에서 10년을 거주하면서 그런 비싼 장롱을 갖추고 사는 집을 한 번도 본적이 없기에 그러한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집에 대하여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 시절에 우리집은 드디어 아파트로 이사가게되었다. 32평형이었는데 예전에 살던 단독주택 (마당이 딸린 집)에 비해 좁았지만 방과 방 사이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점을 감안 하면 실제 면적은 크게 차이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부모님은 그 아파트가 좁다고 생각하셨고 결국 몇 년 후 4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들어가 살아보니 방이 하나 더 늘어난 것 말고는 어떠한 이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공연히 넓은 거실과 부엌 그리고 베란다,활용할 방법이 없어 그저 텅 비어있을 뿐이다...

  일본에 유학을 가서 보니 더 어처구니 없는 점을 발견했다.값비싼 가구가 없어 좋아 보였던 일본사람들의 집이지만 집의 크기라는 점에서는 문제를 찾았다. 내가 살던 동네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지역이었고 그래서 전원주택형 단독주택이 많았다. 넓은 정원에 2,3층의 큰 주택...우리로 치면 꽤나 있어 보이는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그런데 그 큰 집에 사는 사람이 고작 2,3명 정도라니, 심지어 혼자 사는 경우조차 있었다. 집의 내부구조는 아기자기하게 되어 있어 그나마 덜 썰렁해 보이는 게 다행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왜 이런 큰집에 사시느냐고.대부분은 나이 많은 노인들이었다. "살던 집이라 정이 들어서" "애들이 오면 자고 갈 곳이 필요해서" "큰 집에 살면 남들이 부러워하니까" 라는 식의 답변이 나왔다.. 내가 듣기에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였다...아이들이 오면 일 년에 몇 번이나 온다고 그런 큰 집을 유지해야 하나..남들이 부러워하는 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나..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소유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했다가 주위 사람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내가 일반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소유마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그들이 당혹감을 느끼던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소유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주장했지만 산 속에서 수도 생활하는 승려들의 삶을 그대로 적용시키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각각의 소유가 가져다주는 이익에 비해 너무나도 큰 비용과 부담을 지불해야 하는 점이고 또 그로 인해 삶이 여유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써야 할 때에는 "돈이 없다" "먹고 살기 어렵다" 하며 발뺌을 하니 이해가 안되었다.

  수입의 절대액이 부족해서 가난한 게 아니라 (물론 잘 버는 사람은 예외겠지만) 여기저기에 돈을 묻어 두니 가난한 것은 아닌가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능력보다 비싼 것을 소유하다 보니 각종 대출금과 카드할부대금에 수입의 대부분은 날아가고 남은 돈으로 살아가는 모습들...게다가 소유는 아니지만 만족도에 비해 너무나 큰 지출을 요하는 소비도 많았다..대표적인 것이 휴가비.평소에는 천 원짜리 하나 사는 것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수 십 만원 경우에 따라서는 수 백 만원을 펑펑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소유와 소비가 그들의 삶을 진정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처음에는 무척이나 기뻤을지 모른다...하지만 그 비용을 지불할 때도 행복감이 남아 있어 보이지는 않다..중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냉장고가 들어왔다..다른 집에 비하면 좀 늦은 편이다. 서울에서는..얼마나 기쁘던지 자다가도 쳐다보곤 했다..하지만 한 달 적어도 두 달 후에는 냉장고의 존재가 내겐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게 되었다..

내친김에 냉장고에 대하여 말해보고자 한다. 나의 어머니 집의 냉장고는 어머니 자신이 두 세 명은 들어가고 남음직할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혼자 사시는 분이 왜 저런 냉장고가 필요할까 볼 때마다 의문이다. 냉장고 안에는 음식과 식재료가 가득하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묵어 버린 것들이니 문제이다. 냉장고가 크니 음식과 식재료가 가득해도 문제가 없어보이고 그러니 계속 그것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냉장고를 잘못 활용하는 집은 의외로 많다. 냉장고가 작다면 그때 그때 음식물을 처리할 텐데. 냉장고 구입비 전기세 낭비되는 식재료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식재료만으로도 족히 일주일은 버티고 남을 것 같다 무슨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비상식량을 비축해 놓으셨는지..그래서 나는 가끔 비상시라고 가정하고 그 식량을 소비해 드리곤 한다. '냉장고청소작업'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돈을 묻어두고 살면서 "먹고 살기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늙으신 부모님을 돕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어려운 형제자매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좋은 책을 사 볼 수 없는 것도 멋진 공연을 보러 갈 수 없는 것도 불우이웃을 돕지 못하는 것도 "먹고 살기 어려워"서 라고 둘러 댄다.. 정말 어려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필요성이 의심스러운 소유에 사로잡혀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상태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2. 소비와 소유의 기쁨은 짧고 그 대가는 길다

  소유에 대한 집착은 단지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만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삶 전체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입시위주가 된 것도 사교육비가 저토록 부풀어 오른 것도 대학생들이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스팩 쌓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재벌들이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려는 것도 결국은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많은 소유를 하려면 당연히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소득이 높은 직장을 구해야 하고 그러니까 명문대에 들어가야 하니 사교육비를 들여야 한다. 가진 자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으니 서민들의 경제권을 위협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여학생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남들은 여자들이 차별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여성들도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을 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존재하지만 우리 때만 해도 사정이 좀 달랐던 것 같다. 물론 졸업시즌이 되면 당연 취업하고자 하는 여학생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평생직장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졸업하고 그냥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이 껄끄러워서 그랬던 면이 강했다. 그녀들에겐 결혼이 제일 중요한 것이고 직장은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갈 때까지 머무는 곳 정도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있었다..물론 전부 다는 아니지만.(그래서 일본에서는 직장여성의 직무를 대기석이라고 하였다...시집갈 때까지 대기 하면서 쉬는 곳이라는 뜻에서)

  내가 부러웠던 것은 그녀들의 자유였다. 남자인 나로서는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그것이 얼마의 수입을 보장하는지 그리고 평생 할 만한 일인지 생각해야 했다. 돈이 안 되는 일 장래가 보장되지 못하는 일을 남자가 한다면 주위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염려조차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일인데도 여자가 하면 오히려 칭찬받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그녀들은 나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의 여성들에겐 그런 자유가 별로 주어지지 않았으니 과연 어느 것이 더 행복한 건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3. 소비와 소유에 대한 집착은 선택의 자유를 박탈한다.

  많은 소유를 지향하는 사회풍토는 나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역사공부가 좋아 사학과를 지원하려던 나를 아버지는 결사적으로 만류하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취업 잘되는 과를 가라는 것이었다.. 오늘날과 달리 그것은 정말 취업이 안 되서가 아니라 좀 더 좋은 수입을 올리는 취업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난 완강하게 버텼고 그 덕분에 평생 자식에게 손을 대신 적이 없는 아버지에게 매까지 맞아야 했다..

  사학과에 들어가서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사학과를 내가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어려서부터의 꿈인 교사가 되고자 했고 기왕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역사교사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이 점에 대하여는 좀 후회스러운 면이 있다..어차피 목적은 교사였으니까 영어나 국어 같은 과목을 택하였다면 훨씬 수월하게 목적을 이루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대학입학은 짧은 순간에 정해야 하니까 내 고집을 꺽지 못하셨지만 이번엔 시간을 두고 설득을 해 오셨기에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세대치곤 비교적 드물게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대학입학의 꿈도 가졌으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포기한 일로 인해 아들의 학업에 유달리 기대를 걸고 있었고 그 설득 역시 너무나도 집요하고 끈질겼다. 그래서 결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교사자격증도 따고 또 짧은 기간 교사생활도 했지만 ....대학교수도 가르치는 일이니 마찬가지고 공부는 좋아했으니 상관 없겠지 라는 위안을 갖고 진로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하게 된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행복하게 살게 되었으니 그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괜찮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는 했지만 그리고 공부가 재밌기도 했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늘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가르치는 일을 여기저기서 하게 되었고 그것에서 느낀 기쁨이 너무 컸기에 계속하게 되었다.

  이렇듯 소유지향적인 삶은 개인과 사회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많은 경우 억압적인 면을 갖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모든 삶은 소유로 통한다"라고나 할까?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조금만 마음을 비우고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들이 얼마나 소유적 삶에 얽매이는지 알 수 있다..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부터 가정불화의 원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소유문제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은 자식을 훌륭한 인간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부 잘 해서 명문대가서 좋은 직장을 얻어 더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어려워서" 싸우는 부부..그들이 생각하는 "먹고 산다"는 것의 기준은 남들같이 소유해야 한다는 것은 아닐까?

  부모들은 진로문제를 놓고 아이들과 자주 싸운다.. 아이들의 꿈이 부모들의 기준에 맞지 않아서이다..그들은 말한다. "그런 거 해서 먹고 살 수 있겠니? "라고 하지만 이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 거 해서 남들만큼 소유할 수 있겠니?"라고는...물론 정말 먹고 살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우리나라는 진짜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할 나라는 아니다..우리가 먹고 사는 것의 기준이 높아진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것도 소유라는 면에 집중해서..

4. 소유 때문에 우리는 참된 행복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학생들이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면 이렇게 대응한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살려고 한다면 학생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남과 다르게 살아도 좋다고 각오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그 꿈이 학생을 평생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렇게 해 보라고..마치 내 자신이 남들의 시선이나 소유에 집착하지 않아 누리는 지금의 행복처럼 그들도 느낄 수 있다면 하게 하는 것이 맞다 고 믿는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어느 대선 후보의 슬로건이 우리에게 와 닿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후보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단지 기업의 노동자착취라는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에게 문제의 절반만을 보고 있다 고 충고하고 싶다. 더 많은 소유를 향한 집착이 우리들의 저녁을 앗아간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은 아버지들을 특근수당을 위해 저녁 늦게까지 일하게 만들고 자녀들을 학원이나 과외 등에 내몰고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현장에 서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에 살던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어느 노인이 폐휴지를 주우러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의아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내가 살던 동은 평수가 32평이고 시세가 당시 1억쯤 되었다..IMF직후라 시세가 상당히 낮은 수준에 있었다고 하나 1억이면 적은 돈은 아닐 것이다. 1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왜 폐휴지를 줍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럴 거면 차라리 집을 줄이고 그 돈으로 사시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하지만 소유지향적 우리사회는 그런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듯 하다. 그 노인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사는지 몰라도 소유에 대한 집착이 있는 건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부모가 유일한 재산인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받아쓰는 이른바 '역모기지론'을 하고자 하면 반대하는 자식들이 많다고 한다..또 힘들어도 집은 반듯한 곳에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보았다..이유야 어찌 되었든 모두가 소유라는 짐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소유지향의 삶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열풍이 세계를 강타하였다..미국의 정신적 식민지에 가까운 우리에게 그것은 IMF위기를 계기로 다가왔다. 고도성장이 끝나고 불어온 신자유주의바람은 더 이상 많은 소유를 누구나가 누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온 것이다. 평생직장도 연공서열도 사라져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안정된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과거의 소유수준을 꿈꾸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공무원과 교사와 같이 과거에는 보잘 것 없던 직업들이 최고의 인기직업이 되어가고 대학생들은 몸값을 올려보려고 스팩에 목숨을 걸게 되었다. 사교육은 이제 유치원을 지나 영아시절에까지 미치고 있다. " 더 갖기 위해 더 벌어라 더 벌기 위해서 더 많은 스팩을 쌓아라 더 좋은 대학에 가라 더 많은 학원을 다녀라 더 일찍 공부시켜라 "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최소한 과거의 소유수준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 하에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었.

  그러한 경쟁이 지금까지 빈곤해질 때로 빈곤해진 삶의 질을 더 떨어뜨린다. 저녁이 없는 삶이 주말도 휴일도 없는 삶으로 변한다. 아빠는 아이들 사교육비를 위해 더 일해야 한다. 엄마도 이제 집에 있으면 안된다. (간 큰 여자시리즈 "집에서 살림만 하겠다는 여자")아이들은 학원을 최소 두세 개는 다녀야 한다...어학연수를 위해 대학생들은 휴학이 필수학점이 되었다..이런 뜨거운 사랑을 갖고 질주해 오는 구애자들 덕에 기업은 힘 안들이고 좋은 인재를 줍고 있는 것은 아닐지..

  대학도 변했다...'취업학원'으로의 결코 화려하지 못한 변신이라고 해야 할까? 지성의 전당이 되어야 할 학교는 취업을 위한 기술 습득의 전당이 되었다. 책 읽지 마라 그럴 시간이면 토익점수 올리기 위해 단어 하나 더 외워라 밤샘 토론 하지 마라 인생 뭐 있나. 대기업에 가서 높은 연봉 얻으면 되지..취업에 도움 안 되는 강의 듣지 마라 그런 전공 하지 마라.

  대학의 정신적 빈곤은 곧 사회전체의 빈곤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입시공부 대학가면 취업준비 입사하면 실무공부 우리에게 언제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할 여유 따위가 있겠는가? 더 벌어서 더 소유하고 더 소비하는 퇴폐적 사회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5. 소유지향의 삶이 가져다 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좌절

  하지만 이런 피 눈물 나는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예전과 같은 소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불만과 좌절 뿐 이다. 우리사회의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을 머무는 것은 양극화니 청년실업이니 하는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좌절감 때문이라고 나는 단언하고 싶다.

  '며느리 증후군'이니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명절에 며느리들이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발생한 것이 절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힘들기로 치면 우리 어머니들의 젊은 시절이 훨씬 더 했다. 지금처럼 전기제품으로 처리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니니 뭐든지 직접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어머니들에게 며느리증후군은 없었다..그런데 왜 편해진 지금 그런 병이 발병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의식의 변화 때문이다.. 예전에 들은 강의에서 어느 교수가 한 말이 있다. "민중은 가난하기 때문에 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자각할 때 봉기한다. 세상은 으레 이런 거니 라 고 체념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일어나 않는다" 라고..며느리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반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이 며느리 증후군의 원인이다.."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 왜 남자들은 안하는가? 왜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라는 반감 말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를 슬프게 하는 좌절감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야할 것이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우리는 그런 좌절감을 느끼지 않았다...남들은 가난하지 않은데 나 혼자 가난하다고 느끼니 슬프고 원통할 수밖에 ...물론 그들의 가난이란 우리가 과거에 느낀 가난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만...넓은 아파트와 좋은 차 고급전자제품 등을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유로 메워온 그들의 가슴은 소유가 아니면 메꿀 수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이를 어찌 한단 말가? .

  오해하지 말 것은 그렇다고 내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오로지 마음만 바꿔라 하는 무책임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누구 좋은 일만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당신들은 그렇게 살아야 하니까 현실에 만족하고 살라는 싸구려 동정에 동참할 생각은 없다.

6. 소유라는 짐을 내려 놓을 때 해방의 길이 보인다.

  하지만 소유라는 짐을 계속 짊어지고 가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지배층들이 앞에 놓은 먹이를 물려고 박 터지게 싸워서 피해를 입는 것은 힘없는 서민들 뿐 이다. 지배층들은 혹시나 하는 희망에 학원이다 과외다 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능력을 자기돈 주고 쌓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디 열심히 해 봐..좋은 일이 있을지 누가 알아" 라고 말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선택은 우리가 하는 거지 너네는 너 네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라는 드라마대사처럼 말이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적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이 가벼워야 한다. 소유라는 짐을 매달고서는 싸울 힘도 또 이길 승산조차 없다...결국 소유를 위해 알아서 기는 상태가 되고 만다..적의 쳐 놓은 그물에 몸을 걸고 적과 싸울 수야 없지 않는가?우리는 스스로를 그 그물에서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다.

  자식을 대기업에 입사시키려고 하는 부모가 있다고 치자.(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이 해당될 듯)대기업입사 = 높은 연봉 = 많은 소유의 삶 보장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부모와 자식이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 사회복지를 든든히 하자는 정책에 찬성표를 던지기 쉬울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자리 나누기에 긍정적인 생각을 할 가능성이 있을까?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에 어느 정도 지지를 보낼 수 있을까? 문제는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와 자식들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고? 소유라는 짐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 공짜로 대학교육을 시켜주는데도 30%남짓만이 대학을 가는 것이 단지 대학 안가도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일면적인 분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임대주택을 선호하는 것이 임대주택의 시설이 너무 좋고 임대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다 명품이나 고급승용차가 훨씬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처럼 구입에 열을 올리지 않는 것이 단지 그들이 검소한 삶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세금이 너무 비싸서 여유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그러한 삶이 가능한 근본적인 원인을 소유라는 짐을 내려놓았기 때문으로 볼 수는 없을까? 그들은 소유대신 자유를 구하였고 정신적 삶의 질을 택한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더 높은 소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적고 그래서 삶의 위험을 함께 짊어지는 사회복지에 대한 저항감도 약하고 그래서 높은 세금을 기꺼이 내고있는 것은 아닐까? 허울 좋고 실속 없는 소유대신 자신들의 삶을 지키려고 애쓴 결과는 아닐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전처럼 소유에 삶을 맡기고 그것의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알아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좁은 문을 향해 박 터지게 싸울 것인가 아니면 소유의 짐을 벗어 버리고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힘을 합하여 싸울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 말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들어가려고 하는 문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