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류열풍의 불편한 진실.

닥터 양 2019. 11. 16. 22:11

한류열풍의 불편한 진실.  

1. 문화에 대한 수동적 태도가 만든 한류열풍

  이른바 '욘 사마' 열풍으로 시작된 한류열풍! 드라마가 기폭제였지만 이젠 걸 그룹들의 '음악'(?)에까지 장르를 넓혔고 일본과 동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그 지역도 크게 확대되었다..마치 미국의 할리우드영화와 팝뮤직이 세계를 석권했던 것을 연상케 하는 면을 보일 정도니 왠지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이 된 것 같아 어깨에 힘마저 들어갈 정도다. 이대로 문화를 갖고 세계를 정복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꿈마저 꾸고 싶다...

  하지만 한류열풍을 대중의 수동적 문화 참여라는 관점에서 재검토한다면 무조건 기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티브이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각 가정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따라서 대한민국만의 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한류가 티브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대중문화가 직접적 참여 보다는 간접적인 참여라는 방향으로 발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한류열풍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예를 보자. 왜 우리나라 드라마는 다른 장르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발달하게 되었는가? 그 배경에는 티브이의 가정에서의 지나치게 비중이 높다는 부정적인 면이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티브이가 대한민국의 가정을 지배해온 속도와 정도는 가히 세계적이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과는 달리 비교적 제작비가 저렴한 드라마 제작에 티브이 방송국이 힘을 기울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것이 드라마의 질과 시청률의 상승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오늘날 명품 드라마의 탄생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왜 티브이가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빠른 시간에 가정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라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티브이의 원조인 미국과 같은 선진제국보다 티브이 보급도 늦게 되었고 컬러티브이는 1980년대에서야 비로서 허가된 티브이후진국 대한민국이 왜 티브이의 지배를 받는 나라가 되었을까?...

  예를 들어 스포츠와 티브이의 관계를 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케이블티브이에 스포츠전문채널이 여럿이 있는 것을 보면 스포츠의 인기가 그렇게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과 비교할 때 스포츠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들은 바에 의하면 유럽에서는 스포츠의 인기가 매우 높아 스포츠 전문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비스포츠방송의 채널까지 끼워 넣기로 구매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최근 프로야구와 농구가 제법 인기를 얻고 있어 관중의 수도 늘어 가고 있지만 아직 유럽이나 미국의 그것을 따라잡을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티브이와 스포츠는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대립적이기도 하고 보완적이기도 하다.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티브이로 인해 인기를 상실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티브이 중계수입 등으로 더 많은 수익을 올려 발전하고 있고 티브이에게도 역시 메이저리그 중계가 황금알을 낳는 콘텐츠의 하나인 것이다. 한때 대립 관계인 줄 알았던 영화와 티브이가 도리어 상호보완작용을 하게 된 것처럼 메이저리그와 티브이는 서로의 발전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에는 티브이와 프로야구 사이에 균열이 심해지고 있다. 일본의 프로야구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조금씩 사양길에 들어섰다. 그 한 예로 요미우리 자이안츠의 모기업인 일본티브이가 자이안츠 전경기 중계를 중지하였다는 사실이다. 10%가 넘는 고정시청률을 자랑하던 자이안츠의 경기는 시청률경쟁이 치열한 평일 저녁시간의 효자 콘텐츠였지만 그런 영광스러운 시대가 끝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스포츠와 티브이의 사이는 환상의 콤비를 이루던 과거의 추억을 뒤로 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다. 프로야구조차 포스트시즌이 아니면 지상파를 타기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고등학교 경기도 심심치 않게 중계해 주던 티브이가 이젠 아시안게임과 같은 중요 대회조차 '골라서' 중계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결승전조차 인기가 없는 종목의 경우 외면당하고 있다. 아직까지 올림픽까지는 그 영향이 덜 미치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사이에 발생한 차이를 나는 대중문화의 수동화라는 점에서 보고 싶다...미국에서 스포츠는 단지 눈으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참여하는 대상이다.어찌 보면 물과 공기처럼. 그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역연고제가 확실히 정착되어 그 지역의 상징이기도 하다. 티브이의 등장이 그 존재를 위협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삶에 녹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사회에서 티브이는 스포츠와 상호보완관계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이나 우리는 스포츠가 눈으로 보고 즐기는 대상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눈으로 보고 즐길만한 다른 콘텐츠가 생기면 쉽게 그것을 대체 될 수 있다. 티브이의 콘텐츠가 발달하여 다양화되자 티브이는 스포츠를 외면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스포츠의 역사가 길고 또 생활화 정도도 강하기 때문에 우리와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티브이에서 외면당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외면의 정도가 우리보다는 좀 덜하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여자배구. 우리나라 티브이 방송국은 올림픽예선이라는 중요한 대회조차 외면하였다. 과거 여자배구는 올림픽에서 구기 종목 최초의 메달을 딴 역사도 있어 최고의 인기스포츠 중에 하나였지만 지금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반면 일본의 경우 여자배구는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고 세계적인 각종 배구대회를 유치하는 등 인기유지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일부 인기 있는 여자선수들의 경우 연예인에 버금가는 지명도를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스포츠에 대한 수동적 입장의 강화라는 거대한 트렌드에서 한국과 일본은 같은 길을 걷고 있고 이것이 티브이와의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삶에 녹아들지 않은 스포츠는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 쉽고 그 순간 티브이의 화면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급속한 경제발전에 희생된 여가생활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을까? 미국이나 유럽의 티브이가 결코 힘이 없는 매체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쇼의 위력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포츠를 친구로 삼았고 또 삼아야 했다.삶에 뿌리박힌 스포츠를 외면하고서는 티브이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으로 스포츠야 말로 그들의 삶이기에 그것이 황금알을 낳는 콘텐츠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급속한 시기에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일본의 경우 1930년대 말 전쟁직전에 이미 세계 굴지의 경제대 올랐다. 상대적 위치로 본다면 거의 현재의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그들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자체적인 무기를 갖고 당당히 맞설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갖고 있었다. 우리에겐 꿈도 못 꿀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런 나라이기에 전쟁의 폐허를 이기고 전후 불과 20년 만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20년간 평균 10%라는 기적 같은 성장을 이루면서 말이다..대한민국이 만약 20년간 10%의 성장을 이룬다면? 과연 우리 정도의 규모를 가진 나라가 20년간이나 10%의 성장을 해 낼 수 있을까? 99.99% 불가능하다.대한민국의 경제 성장률은 중국이 등장하기까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기에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고도성장 뒤에는 모든 것을 경제발전이라는 것에 집중하여 나머지 삶에 대한 희생하였다는 불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에 대한 적극적 자세가 그 중의 하나이다. 우리에게 문화란 부자들의 사치이다. 나중에 선진국이 되면 그 때 하면 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돈을 버는 것이다. 렇게 우리는 문화에 대한 참여를 희생해 갔다. 문화뿐이 아니라 교육마저도 경제발전의 인재를 양성하는 도구가 되었고 학교는 그러한 필요에 맞춰 특화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모두는 어려서부터 경제발전 나아가 국가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길들어지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등장한 티브이는 효율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고마운 존재였다..지금은 그것이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로 확대되고 있다. 공통점은 시간과 노력은 거의 필요 없이 그저 전원을 켜고 버튼을 누르면 바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대중은 이렇게 문화적으로 수동적 존재로 만들어져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소유나 소비에 대한 대중의 욕망은 이러한 매체를 통해 매일 아니 매시 달아오르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대한민국의 서민들도 잠시나마 재벌이 될 수 있다. 서민에게 높은 수준의 삶이 마치 자신들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삶인 양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드라마들이 넘치고 있다. 그들은 큰 차와 명품을 갖고 싶게 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드라마의 주제들과 달리 - 표면적 주제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위해서는 재벌이나 군주 같은 존재가 꼭 필요하다 - 많은 소유임을 무의식중에 세뇌당하고 있다..

  티브이에 의해 부추겨진 소유와 소비에 대한 심리는 또 다시 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삶을 강요한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하기에 경제에 집중한다. 그래서 다른 것을 다 희생하니 티브이 말고는 이렇다 할 여가 활용방법이 없어져 다시 티브이에 매달린다. 티브이에 매달리니 다른 여가활동의 여지가 없어진다. 아니 필요성도 못 느낀다. 티브이의 연장인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에 매달린다. 그리고 소비와 소유의 욕구를 충전하고 다시 경제에 모든 것을 건다. 이러한 악순환이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3. 놀 줄 알아야 인생이 풍요롭다

  "놀 줄 모르는 노년...64%'취미 없다'"라는 기사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평생 일만 하다 보니 은퇴 후 여가 생활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하는 은퇴자의 말은 고소득과 소유에 모든 것을 걸어 온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하던 게 취미"라는 고백도 경제에 모든 것을 걸어온 우리사회의 슬픈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취미 없음은 단지 여가 시간을 보낼 줄 몰라 심심하다는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정신적 빈곤과 물질적 욕구의 순환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돈 벌이에 모든 것을 집중하니 마땅히 정신을 채워줄 방법이 없어지고 따라서 술이나 담배 같은 퇴폐적 오락에 매달리거나 소비적 활동을 계속 하게 되고 그런 삶이 지속되니 돈 안 들고 건전한 문화는 파괴되어 재생 불가능의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더욱 소비와 소유를 필요하게 되니 돈벌이에 더 매달릴 수 밖 에 없게 된다...

  한류열풍은 문화적 기반을 거의 상실한 우리나라 대중들이 보여주는 티브이에 대한 열광적 사랑에 의해 탄생된 기형적 현상이라고 본다면 너무 자학적인 것일까? 소유와 소비를 위한 돈벌이에 지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없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막장 드라마와 걸 그룹을 통해 돈만 쓰면 되는 여가를 즐겨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서 쓴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원하는 돈을 벌기 어려운 시대가 말이다. 그들 앞에 놓여진 운명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고민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