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양의모선생의 일본이야기(16) 아베가 21세기의 히틀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닥터 양 2019. 9. 3. 23:30

양의모선생의 일본이야기(16) 아베가 21세기의 히틀러가 되지 않기 위해서

(1)히틀러는 잘못된 전후처리의 산물

  제1차 세계대전은 기존의 강대국 영국 프랑스 등에 대한 신흥강대국 독일의 도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상식이 되어 있다. 일찍부터 민족국가를 형성하여 세계로 진출한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 각지에 그들의 제국을 건설하였고 뒤늦게 이러한 경쟁에 뛰어든 독일에겐 제국을 형성할 여지가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신흥강국인 일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다른 점은 일본은 이 당시까지 아직은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기존체제에 도전할 힘이 없었기에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약간의 상을 받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뒤늦은 산업혁명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능가하게 되어 최강의 국력을 구축한 독일이 일본처럼 영불중심의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는 점이다.

  독일제국의 탄생 자체가 사실은 영불중심의 세계체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우리들은 독일 하면 전범국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독일제국의 탄생 이전 독일은 유럽의 약소국강에 속하였고 그로 인해 강대국들의 다툼에 휘말려 많은 피해를 입었던 나라이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민족국가로서의 통일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십자군전쟁, 백년전쟁, 레콩키스타(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추방운동)에 의해 민족국가로서의 결집을 이루고 이후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국력을 키워 세계제국의 길을 걸었던 비해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연맹의 이름하에 흩어져 좀처럼 결집을 이루지 못한 채 30년 전쟁 등 각종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했다. 심지어 같은 민족인 오스트리아조차 독일의 결집을 방해하는 세력이었다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그러한 독일이 마침내 결집하여 통일을 이룬 것은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은 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청년 시절 나폴레옹의 침략의 역사를 되새기며 독일통일을 맹세하였다고 한다.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결집을 가져온다는 고전적인 법칙이 독일의 통일에도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민족의 통일을 방해해 온 세력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베르사이유궁전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한 것 자체가 그동안 억눌렸던 독일민족의 처지를 잘 말해준다 하겠다.

  하지만 독일의 도전은 제1차 대전에서의 패배로 일단 좌절되고 말았다. 독일은 역사의 반전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역사는 그들이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큼 기존의 세계체제는 강고했다.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나마 얻었던 식민지조차 빼앗기고 영토도 줄어들었으며 군사력도 제한되었을 뿐 아니라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베르사이유궁전에서 독일제국의 선포를 통해 당당하게 일어난 독일민족은 같은 베르사이유궁전에서 맺어진 강화조약으로 인해 깊은 좌절감에 빠져야 했다. (프랑스는 일부러 베르사이유궁전에서 조약을 체결하게 함으로써 과거의 패배를 복수하였다고 한다)‘우리는 어쩔 수 없는 2등 민족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지배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좌절감을 날려버리고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설파하며 세계제국의 꿈을 심어준 것이 히틀러였다. 민족적 절망감이라는 토양에서 독버섯처럼 히틀러와 나치즘은 자라난 것이다. 히틀러가 연설할 때 바그너의 음악을 자주 틀었다고 한다. 바그너 역시 독일민족주의 음악가였고 그것은 민족적 좌절감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효과를 더하였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문학, 베토벤 바그너의 음악, 칸트와 헤겔의 철학 이런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문화유산을 가진 독일민족이 2등 민족일 리가 없다라는 생각이 독일인들을 사로잡지는 않았을까 싶다. 그것은 제1차 대전의 패배로 생긴 민족적 트라우마를 날려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그러한 민족적 기대를 양분으로 더욱더 크게 성장하여 갔다.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어 독재를 하여도 저항은 거의 없었다. 그는 신이 독일민족에게 내려준 반신반인의 지도자라고 여겨졌고 그의 폭거조차 신의 계시나 결단이라고 하여 지지되는 상태가 온 것이다. 그의 측근 괴벨스가 중심인 여론조작술은 독일국민의 이성을 마비시켰기에 독일민족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다. 또 한 번의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치는 그렇게 해서 준비되었다.

2. 아베라는 괴물 역시 잘못된 전후처리의 산물

  전후처리의 부작용은 히틀러의 탄생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베신조라는 괴물 또한 전후처리 잘못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성격은 전혀 다르다. 히틀러가 독일민족에 대한 보복적 전후처리로 인한 결과물이라면 아베신조는 지나친 유화정책이 낳은 산물이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보복과 유화라는 양극단을 경계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일본은 패전국에 맞지 않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대접을 받을 처지는 아니었다. ‘무조건 항복이라는 문구는 일본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를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일본은 연합국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연합국 역시 어느 정도 그럴 생각으로 일본을 접수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독일이 첫 세계대전에서 맞이했던 가혹함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연합국은 보복이 가져온 제2차 대전의 교훈을 수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한 것은 보복이 아니라 개혁 내지 개조였다. 군사력이 해체는 기본이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체제를 송두리째 바꾸는 대수술을 계획하고 점령에 나섰던 것이다. 물론 이는 독일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범죄인을 교도소에 처 박아놓고 알아서 깨닫게 한 것이 아니라 형집행을 면제받게 하는 대신에 각종 교화프로그램을 충실히 이수하도록 한 것이다. 정신개조를 통해 다시는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그런데 그러한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은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지도-변수가 생겼다. 바로 냉전시대의 개막이었다. 그것은 일본에게는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으니 일본의 경제력약화를 통해 전쟁할 능력을 봉쇄하겠다는 미국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의 체제개혁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멈추고 말았다. 애초부터 일본에 대한 개혁이 독일에 비하여 미진하였는데 거기에 더하여 냉전이라는 요소가 덧 붙혀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유럽국가들과 달리 눈에 보이는 피해를 보지 않은 미국으로서는 일본을 압박할 동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천황에 대한 면죄부 부여는 그것을 상징한다.

  그것은 일본을 전범국가에서 반공의 선봉에 설 동맹국의 지위로 옮겨지도록 하였다. 마치 우리나라 친일파들이 해방과 분단을 통해 반공의 전사로 거듭남으로서 친일의 행적이 감추어진 것과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거듭난 친일파들은 오늘날까지 친일의 행적을 미화시키기 위해 일제강점기의 미화 일본에 대한 친일적인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원래 이념적이지도 못하고 이상주의도 결여되어있던 미국이 손쉽게 일본을 파트너로서 수용하여 면죄부를 부여한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미국식 실용주의의 발현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전후처리가 가져온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일본은 전쟁에 대한 그리고 식민지지배에 대한 반성도 사죄도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애국자라고 강변하듯이 자신들은 반공의 전선에서 자유를 수호하는 전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의식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1차 대전의 전후처리가 보복으로 점철되어 독일민족의 좌절감을 통해 제2차 대전의 씨를 뿌렸다면 일본의 경우는 너무나 관대한 조치로 인해 자신들의 잘못조차 잊어버리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 미일안보조약으로 미국의 동맹국이 되었으니 더 이상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그들의 입장은 확고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70여년이 흘러간 오늘날 아베신조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히틀러가 잘못된 전후처리의 산물이듯이 그 역시 그렇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독일이 두 번째 패전으로 깊은 반성과 사죄를 통해 유럽국가들의 용서를 구해야 했던 것에 비하여 일본에게 그러한 행동을 강요한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한국은 굴욕적인 국교수립과정을 통해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과오를 범했고 그 뒤에는 미국의 압박이 있었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경쟁을 의식해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미국은 계속 일본의 책임을 감싸돌았다. 그것은 미국이 저지르고 있던 갖가지 전쟁범죄-베트남전쟁에서 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필요했을 것이다. 먼로주의에서 해방된 미국은 천방지축처럼 세계를 흔들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였는데 이는 동양의 은둔의 나라가 개항으로 세계를 접하면서 폭주하기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두 나라는 통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미일관계는 돈독한 것인지 모른다.

  일본에게도 독일과 유사한 억울함이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다 같이 세계를 약탈하였는데 왜 우리만 갑자기 전범이 되어 반성과 사죄를 해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 영국 프랑스가 중심이 된 세계체제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세력다툼을 벌인 것 뿐인데 어째서 전범의 낙인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억울함은 전후 70여년간 그들의 뇌리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식민지지배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지배가 합법이라는 강대국 위주의 국제질서가 유지되는 한 그것은 문제시 할 가치조차 없는 역사인 것이다.

  아베신조는 그러한 일본인의 억울함을 대변해 줌으로써 탄생한 21세기판 히틀러인 것이다. 독일이 세계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패배한 대가를 치룬 것에 대한 좌절감처럼 일본 역시 그러한 억울함이 일본의 경제대국화와 함께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아베신조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대변함으로써 일본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여론조작 반대세력 제거 등을 통해 강력하게 국민을 장악해 가는 모습은 히틀러와 괴벨스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아베와 그의 측근들은 히틀러와 괴벨스처럼 헌법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일본은 과연 독일의 과오를 재현할 것인가? 현재까지의 움직임은 그러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헌법 9조의 재무장과 전쟁방지조항을 없애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아베정권의 노력은 베르사이유조약으로 위축된 독일의 군사력을 확대시키는 재무장시도와 유사한 것 같다. 과거사에 대한 미화작업을 통해 야마토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하려는 시도 역시 히틀러의 게르만민족찬양의 복사판이 아닐까 싶다. 과연 역사는 되풀이 될까?

(3) 아베를 히틀러로 만들지 않는 방법 링컨과 마틴루터킹이 가르쳐 줄 것이다.

  별로 존경할만한 인물이 없는 미국의 얄팍한 역사에서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마틴루터킹 목사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이다. 보편적 가치보다는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이러한 인물들이 나타난 것은 어느 면에서는 기적같은 일이라 하겠다. 두 사람에게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훌륭한 연설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여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오늘날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연설이지만 그 외에도 주옥같은 연설을 남겼고 마틴루터킹 역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대표적인 연설을 비롯하여 많은 명연설을 통해 미국흑인인권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연설이 훌륭하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적들에게 보여준 놀라운 포용력이었다. 그 포용력은 미국이 일본에게 보여준 그런 무책임한 포용력과는 거리가 멀다. ‘네멋대로 해라 는 정신에 투철해 자유만을 지상의 가치로 여겨 보편적 가치와 거리가 멀었던 미국에서 그들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생을 바쳤다. 그러기에 그들은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대하여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놀라운 포용력을 통해 설득시키는 인내심을 발휘했고 그것이 그들의 성공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되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링컨과 킹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기에 미국은 그나마 보편적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링컨과 킹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큰 그림을 꿈이라는 형태로 간직하고 있었다. 노예해방과 흑인인권은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과정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에 대하여 적대감을 극단적으로 표현하여 대립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을 극도로 피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상대를 포용하여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데 큰 효과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던 노예해방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는 노예해방을 선포하라는 주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이를 거부하였다. 노예해방을 선언하는 순간 남부와 북부의 관계가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은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애매한 태도를 취하던 경계주들이 급속하게 남부지지로 돌아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것은 북부의 패배와 미국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며 남부에서의 노예제의 영속적 유지로 귀결될 것이다. 이는 링컨의 꿈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상태인 것이다. 그가 불리한 전황에도 불구하고 강화에 대한 유혹을 뿌리친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였다. 적에 대한 포용적 자세와 함께 가치에 대한 엄격한 자세를 유지한 것이다.

  1865년 그가 행한 제2차 취임연설에는 링컨의 이러한 생각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는 일단 남과 북의 화합을 역설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라는 주장은 그러한 생각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땀 흘리지 않고 축적한 재산이 전쟁으로 인해 사라졌다면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라 여겨야 한다라고 하는 뼈 있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노예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이러한 링컨의 양면적 자세는 마침내 노예해방과 함께 미국의 통합을 이뤄낸 것이다. 미국이 20세기 최강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링컨의 공이 가장 지대하다 할 것이다. 만일 이 때 미국이 분열되어 버렸다면 우리는 미국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분열은 또 다른 분열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분열된 집은 성립될 수 없다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미국의 분열을 걱정했던 링컨은 미국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에서 미국을 구하였다. 노예해방이라는 인권의 실현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지만 아니러니하게도 미국은 20세기 인권수호국가의 명예를 얻게 되었으니 링컨의 원대한 꿈은 실현된 셈이다.

  한편 마틴루터 킹은 링컨이 실현한 노예해방을 흑인인권운동을 통해 보다 구체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역사적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백년전인 1863년 미국정부는 우리에게 해방이라는 수표를 발행했지만 그것은 부도수표였습니다. 우리는 그 수표의 지급을 요구하고자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마치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헌법이 반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민주주의를 1960년의 419혁명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실현시켜 가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킹 목사는 이끌었다 하겠다. 물론 그가 그러한 운동을 이끈 유일한 지도자는 아니었고 그의 앞에서 많은 선구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로마도 민주주의도 인권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틴루터킹은 흑백문제를 흑백논리로 해결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꿈을 가지고 흑인운동을 이끌었다. 그것은 피부색 인종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흑인과 백인이 함께 화합하며 사는 세상을 그렸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였다. 이는 흑인과 백인의 분리를 외친 말콤엑스의 흑인주의적 운동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말콤엑스는 노골적으로 백인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하여 양자간의 대립구조를 만들었으나 이는 백인들에게 흑인인권운동에 대한 분노를 일으킬 뿐이었다. 만일 말콤엑스의 운동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미국의 흑인인권운동은 백인들의 거센 저항으로 실패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설령 성공했더라도 훨씬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을지 모른다.

  마틴루터 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유이하게 탄생일이 국경일로 지정된 인물이 되었다. 링컨도 워싱턴도 그러한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다. 다른 한 명은 예수이다. (크리스마스)그의 집회에는 많은 백인들이 참가하여 그를 지지하였다. 말콤엑스가 가져온 분노와 공포를 마틴루터 킹은 가져오지 않았으며 그가 말하는 세상에서 자신들은 결코 억압을 받을 우려도 없으며 아울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곧 마틴루터킹에 대한 지지를 가져왔고 그 결과 그의 생일이 국경일로 정해질 정도로 모든 미국인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 것이다.

  마틴루터킹과 에이브라함 링컨이 추구한 것은 보편적 가치이지 승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은 분열되지 않았고 노예는 해방되었다. 그리고 그 흑인들은 오늘날 과거에 비하여 훨씬 덜 차별받고 있고 심지어 흑인대통령까지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들이 승리를 추구했다면 패배했을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원하는 것 역시 승리가 아니라 가치일 것이다. 식민지지배, 전쟁의 잔혹함을 깨닫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간직해야 할 은 아닐까? 하지만 일본은 그러한 꿈 대신 아베라는 21세기 히틀러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승리를 원할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에 의지하여 그 길에서 물러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킹과 링컨이 했던 것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일본의 현재세대는 전쟁과 식민지지배에 대하여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극소수를 제외하면.(적어도 나이가 95세이상이어야 한다)아울러 그들은 식민지지배와 전쟁에 대하여 대부분 무지하다. 호사카유지 교수가 자신이 처음 역사를 제대로 배운 것은 성인이 된 다음이라고 고백하였고 그것이 큰 충격이라고 한 것처럼. 회사로 치면 그들은 전임자의 잘못을 책임지게 된 후임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국민을 죄인으로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들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포용해야 할 것이다. “우린 당신들의 죄를 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안심시켜 줘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반성과 사죄를 원하나 그것은 그들이 죄인이기 때문이 아님을 확실하게 표명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그들과 함께 나눠야 할 가치를 함께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침략과 지배 강탈 이라는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결의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이 오늘날 사죄와 반성으로 새롭게 역사를 쓴 것은 이러한 가치를 공유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유럽국가들이 독일에게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링컨 마틴루터 킹 역시 그러한 포용을 통해 가치를 실현하였다. 물론 가치에 대한 양보는 없었으며 그러한 안일한 타협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오늘의 일본이 보여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대한 혐오적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비록 일본측의 혐한에 비하여 약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혐일발언은 자주 접할 수 있다. 혐일발언은 그들로 하여금 억울함을 더하게 하여 아베를 더욱 굳건한 기반위에 올려 놓을 것이다. 일본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평화와 행복에 대한 꿈을 그들에게 전한다면 아베라는 독버섯은 생존기반을 잃고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틴루터킹과 에이브라함 링컨은 우리에게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4) 한국인들이여! 일본을 구하자.

  현재 우리는 일본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은 없는 상태이다. 우리는 혐일론을 쏟아내지 않으며 그런 책을 대량으로 출판하고 있지도 한다. 우리는 No 아베 Yes Japan 운동을 통해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국인들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알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만큼 일본에게 받은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커졌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우리를 반일종족주의라고 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보다 똑바로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우리와 다르다. 과거에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혐한론 자체가 그다지 지지를 얻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들에게 위협이라고 느껴질 만큼 커졌고 그것이 그들의 쇠퇴와 맞물려 혐한론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보다 못하다고 우습겨 여긴 사람이 어느 날 자신보다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느끼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분노는 가히 반한종족주의라 할 만큼 강하다. 아베는 그러한 감정을 이용하여 갖가지 거짓말을 퍼트려 반한감정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들에게 이성적 이야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무엇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이야기만 되풀이 할 뿐이다. 일본 생활을 10년 이상 한 나로서도 이런 당혹감은 처음인 것 같다. “너희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까라고 시작되는 그들의 공격레퍼토리는 너무나도 유사해서 마치 교육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세뇌의 무서움이 실감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식민지책임 등에는 다 지나간 일을 왜 들먹이냐” “이미 충분히 사과했고 보상했다는 식의 막무가내 논리로 저항해 온다. 이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일본사람들이 원래 이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일 것이다. 내가 동경에서 유학하던 시절 그들은 나를 친형제자매 자식처럼 아껴주었다. 지금도 인간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면 표변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지금 정신적 감금상태임을 말해주고 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그들이 하는 것을 모릅니다예수는 십자가에서 그렇게 외쳤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렇게 외쳐야 할 것 같다. “하나님 일본사람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에 대한 적대행위를 멈추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불매운동도 일본 안가기 운동도. 이미 우리는 그 정도로 충분히 우리의 분노를 표현했고 더 이상의 운동은 그들이 완전히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일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문제 징용공과 위안부-를 양보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일본에 의존하던 것을 줄여가는 자립운동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들이 힘으로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힘없는 정의가 얼마나 무기력한 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너무나 뼈저리게 배웠다.

  아울러 우리는 그들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들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정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호간의 약속을 통한 신뢰의 회복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본에 찾아가 그들과의 교류를 활성화한다면 그들의 마음이 열려 우리의 말에 조금은 귀를 기울이게 될지 모른다.

  나아가 우리 내부에 있는 반일적인 요소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잊어버리는 식의 행동을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일본을 적대시 하는 모든 행위를 최대한 자제하고 이에 대한 법령을 정비하여 예방에 힘쓴다면 어떨까 싶다. 그와 아울러 과거사를 왜곡하는 것에 대한 제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과 가치를 공유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세계 전쟁과 침략이 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에 대한 비전을 그들과 공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와 함께 각종 민간기관 그리고 개개인이 함께 해 갈 때 그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우리에겐 꿈이 있습니다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일본사람들은 지금 중병에 걸려있다. 그들은 공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듬어야 할 사람들이다. 괴물 아베에게 사로잡혀 신음하는 그들을 우리는 구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들과 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구출된다면 괴물은 더 이상 서식할 수 없게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나는 조선통신사들이 걸었던 길을 함께 걸으며 한일간의 화합을 외치는 평화대행진을 계획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국민이 함께 그 길을 걸으며 가치를 나눈다면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많은 분들의 동참을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인여! 일본을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