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래를 찾자 –위기를 기회삼아
1. 일본의 거듭되는 배신
아베의 경제제재는 단순한 마찰이 아니라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본질적인 생각과 자세를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국을 더 이상 파트너나 협조대상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라 하겠다. 아베의 조치는 무역이나 경제에 타격을 가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한일관계의 역주행을 통한 신뢰상실과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98년’김대중오부치선언‘이래 조성되어 온 한일화해와 협력의 과정이라는 잔칫상을 둘러 엎어 버린 격이라 하겠다.
“일본에게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
김대중이 일본 국회에서 연설한 이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아베는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들은 과거를 직시하지도 역사를 두렵게 여기지도 않았다. 아니 도리어 과거에의 회귀를 서슴지 않았다. 1993년 고노담화, 1995년 무라야마담화를 부정하는 말과 행동이 계속되었고 아베의 시대에 들어 그것은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더 이상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태도만이 난무하였다.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아베의 선언은 이를 상징한다 할 것이다.
“통쾌하고 장하도다! 수 백년간 악행을 저지른 백인종의 선봉 러시아를 단 한 차례의 공격으로 대파하였으니 ..이때 한국과 청국 두 나라의 뜻있는 사람들이 표정을 같이하기로 꾀하지 않았는데도 기쁨을 가눌 수 없었던 것은 일본의 정략이 순서에 따라 진척되어 동서양의 하늘과 땅이 처음 갈라진 뒤로 가장 큰 업적이자 통쾌한 모양임을 스스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안타깝다! 전혀 생각지도 않게 일본은 승전하고 개선한 뒤,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며 어질고 약한 같은 인종인 한국을 억압하여 강제로 조약을 맺었으며 만주의 장춘 이남을 조차를 핑계 삼아 점거하였다....일본의 위대한 명성과 바르고 큰 공훈이 하루아침에 뒤바뀌었으니 러시아의 만행보다 더 더욱 심한 일이다...“(안중근 ‘동양평화론’에서)
안중근의 심정이 어쩌면 우리의 심정일지 모른다.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리로 동아시아의 수호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중국과 한국의 국민에게 갖게 했으나 결과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침략자의 이름이 바뀐 것 뿐이었음을 안중근은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고노담화 무라야마담화김대중 오부치선언으로 열려진 한일화합의 과정은 일종의 잘 꾸며진 연기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고이즈정부때 일어난 각종 배신으로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베는 그것을 확인사살해 버리고 말았다. 행여나 혹시나 하는 기대는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일본의 본질적 생각이나 자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확인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라고 비난한다. 적반하장이 아닌가? 일본은 구한말 우리에게 ”조선은 독립국“임을 수 없이 강조했지만 결국 우리의 국권을 찬탈해 버리는 ‘약속불이행’을 하고 말았다. 해방 후 국교수립이래 그들은 겉으로는 침략과 식민지지배를 사과하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역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끊임없이 쏟아냈고 야스쿠니신사참배와 같은 행위를 통해 한국인의 가슴에 의구심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의 수상의 선언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행위를 해오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결국 ‘공수표’ 내지 ‘부도수표’를 남발한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자 노력했다. 일본에 한류열풍이 일고 일본문화의 수입이 개방되면서 우리는 그들을 이웃으로 대하고자 노력했다. 2018년 우리 국민750만이 일본을 찾았다. 우리나라 해외여행지의 1위가 바로 일본인 것이다. 한국 내에서는 일본의 음식, 문화가 몰라보게 침투하여 많은 매니아를 양산하여 왔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영토인 스시마에는 연간 40만이 방문하여 일본의 맛과 문화를 즐겼다. 2011년 후쿠시마 대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의연금을 보내 우리의 진심을 보여주기도 하였고 그들은 감사의 표시를 했다.
하지만 일본은 끝내 실질적인 태도의 변화를 하지 않았다. 위안부문제 등에 대하여 그들은 사죄는커녕 부인과 자기합리화로 일관했다. 징용배상문제에 대하여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하나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아베의 테러리스트선언처럼 근본적으로 ”우리가 뭘 잘 못했는데“라는 식의 의식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2.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한국의 징용배상문제나 위안부합의 문제는 그들의 이러한 본질에서 비롯되었다. 입으로만 한일화해를 외치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가 한국측으로 하여금 다소 무리한 행동을 일으킨 것이다. 선언이나 담화와는 달리 실제로 성의있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한국인들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저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한국인들은 직접 행동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언 듯 보면 한국이 일본에게 도발을 하여 이번 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외면과 위안부합의, 문재인 대통령의 반일적인 자세 등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조차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지 묻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거듭 이야기한 대로 우리의 배신은 그들의 배신에 비하면 매우 가볍고 일시적인 것이다. 상대가 약속을 계속 어기니 도리없이 행동으로 나선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일본을 무시하니 할 수 없이 실력행사를 한 것이다“라는 것이 아베의 변명이다. 하지만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해방 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배신을 해 왔는가 라고. 아니 구한말까지 넣으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질 것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과거의 죄에 대한 사죄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우리에게 ‘독립축하금’의 명목으로 돈을 쥐어줬다. 그것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느 사람이 어떤 가족에게 몹쓸 짓을 했다. 자식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고 돈을 빼앗고 등등 그리고 어느 날 나타났다. 그 때 그 가족은 몹시 곤궁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힘드니까 도와주지“라고 하며 그 가족에겐 거액인 돈을 쥐어주었고 ”이것가지고 잘 살아라“고 했다. 하지만 ”과거에 내가 죄를 지었구나 미안하다.“라는 사죄는 일체 하지 않았다. 그저 당신들이 힘들어 하니까 주는 거라고만 하였다.
이것이 과연 합당한 행위일지 묻고 싶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과거에 대한 사죄는커녕 그것을 합리화시키거나 부정하는 말을 사방에 하고 다녔다. 딸을 성폭행한 것도 합의에 의한 것이며 대가를 준 것이니 매춘이었다고 우겨 딸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내가 준 돈으로 먹고살게 되었으니 감사하라고 하는 식으로. 심지어 과거의 만행은 다 너희를 위한 것이었다는 소리까지 한다면? 가끔 미안하다는 사죄를 했지만 얼마 뒤며 ”내가 뭘 잘 못했는데“ ”그런 일 한 적 없어“라고 합리화 내지 부정을 밥 먹듯이 한다면?
그래서 결국 그 가족은 법적인 투쟁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한국인이 직접 행동에 나선 원인이다. 우리는 일본이 그동안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와 끊임없는 배신에 의해 받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나선 것일 뿐이다. 무엇이 약속위반이란 말인가? 상대가 약속을 어기고 함부로 행동하는데 그저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다면 누가 약속을 지킬 것인가?
기독교 성경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야곱과 에서라는 형제 이야기이다. 과거에 장자란 집안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권리를 갖는다.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것에 무관심했고 그래서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었다. 하지만 엄연히 그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러한 계약을 맺었기에 정당한 것이었고 야곱은 장자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 이삭이 장자권의 축복을 주려고 하자 에서는 약속을 어기고 자신이 받고자 하였다. 엄연한 계약위반이다. 그러나 에서는 막무가내였다. 도저히 그를 정상적으로 저지할 방법도 약속을 지키게 할 수단도 없었다. 오죽하면 어머니까지 나서야 했을까? 그 어머니는 둘 모두의 친모이며 에서의 계모가 아니었음에도 그렇다.
결국 야곱은 속임수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았다. 그것만 보면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지만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에 부득이 한 것이라 하겠다. 일종의 정당방위와도 같은 것이라 하겠다. 내 것을 힘으로 빼앗길 위기에 상대를 속임수로 따돌리고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이 비록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라도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1963년 마틴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100년 전 인 1863년 그날 미국정부는 노예해방을 선언하였고 우리는 자유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선언은 그 후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오늘날 흑인들은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다. 100년 전에 지불된 수표는 실은 부도 수표였기에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받기 위해 여기에 모인 것이다. 피부색이 아니라 능력과 인품에 의해 판단되는 세상 흑인과 백인이 함께 형제자매친구로서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싸울 것이다.
계속된 일본의 거짓말과 약속불이행 그러한 것은 우리에게도 부도수표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받기 위해 야곱처럼 불법적인 줄 알면서 싸워야 했다. 마틴루터가 싸운 것처럼. 따라서 우리의 행동은 정당방위이고 권리를 찾기 위한 부득이한 불법이니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비난하려거든 부도수표를 제대로 보상해 주고 나서 해야 할 것이다.
3. 독일과 일본이 걸어온 상반된 길의 결과 –현명한 실리주의와 잘못된 실리주의
독일은 일본과는 달리 그들의 약속을 철저히 이행하여 성공을 거둔 나라이다. 유럽연합 내에서 독일의 지위는 확고하다. 오죽하면 ”유럽이 제안하면 메르켈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을까? 그리스 등이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 유럽의 국가들은 ”독일에게 이야기 하라“는 조언을 하였다고 한다. 독일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시계를 돌려 70년 전인 1945년으로 돌아가면 독일은 전범국가로 낙인찍힌 처지에 있었다. 유대인 600만을 비롯하여 수천만을 죽음으로 고통으로 몰아넣은 독일은 국토가 동서로 나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토는 연합국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경제도 엉망이 되어 삶의 희망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였다. 무엇보다 주변국가나 세계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이 제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독일이 유럽의 강대국이며 신뢰받는 나라로 부활한 것은 바로 그들의 사죄와 반성이 철두철미하였기 때문이다. 독일은 연합국에 의해 국가배상을 면제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상을 치러가며 용서를 빌었다. 나치독일의 유산을 철저히 청산하였고 그것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90세가 넘은 나치의 전범을 처벌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나치독일에 대한 변명 합리화를 조금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하여 일체 관용을 베풀지도 않았다.
1985년 독일의 대통령 바이체커는 이런 점에 대하여 명쾌한 연설을 서독국회에서 하였다. ‘광야에서의 40년’ 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명연설은 독일의 전쟁책임과 사죄 반성 그리고 미래에의 길을 제시하였다. ”독일이 전후에 겪은 고통은 크지만 그것은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독일인들이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가해자로서의 책임감을 잊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여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잘못을 영원히 기억하고 후세들에게 정확히 전달할 것을 말한 것이다. 사죄와 반성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계속되어 대대손손이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의 고백록이기도 한 이 연설은 독일이 왜 주변국으로부터 신뢰받고 강대국으로 부활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하겠다.
물론 독일과 일본은 다른 점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책임은 전쟁책임이 아니라 식민지책임이라는 사실이다.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와 우리는 다르다. 그들은 엄밀히 말하면 전쟁피해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식민지피해국이다. 그들과 우리를 같은 선상에서 논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식민지 지배 책임은 범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크다. 독일처럼 단기간에 벌어진 전쟁책임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전 세계 제국주의 침략을 한 국가들 중 식민지지배에 대한 제대로 된 배상을 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특정 사건에 대한 배상만 있었고 그것도 가해자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 뿐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왜 우리만“ 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식민지가해자국가들 중 자신들의 역사를 사죄하고 교과서에 자신들의 죄상을 제대로 실어 가르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이 역시 일본이 억울해 하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는 독일이 침략에 대한 철저하게 사죄를 하는 것이 피해자가 대부분 강대국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그에 비하여 중국이나 우리, 동남아국가들은 약소국이었기에 사죄의 필요성이 적다고 일본은 판단했고 그래서 돈 좀 쥐어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것이 큰 착각임을 그들은 깨달을 법도 한데 아직도 그런 사고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미국의 국가대표 수영코치가 자신의 제자와 성관계를 거듭하다 그녀의 엄마에게 들켜 돈으로 입막음을 했던 일이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분을 삭이지 못한 엄마는 결국 그의 죄를 널리 알렸고 그는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형사는 시효가 지났지만 그는 그의 모든 지위에서 불명예퇴진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세상에는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만일 그가 성의있게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사태는 달라졌을지 모르는데 아마 돈으로 입막음하는 것으로 끝내려고 했던 것 같다.
다른 이유도 있다. 독일은 나치당이라는 명확한 전쟁의 주체가 있어 청산이 쉬웠던 데 비해 일본은 전국가와 국민이 하나가 되었기에 청산이 쉽지 않았던 점도 있다. 게다가 독일은 그 이전에 주변국가로부터 여러 번 침략을 받았던 나라이기에 그것을 이유로 변명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폴레옹의 침략에 분노한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은 독일의 통일을 가져왔는데 그것을 피해자의식으로 연결시켜 복수라고 합리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
독일은 매우 현명한 길을 걸어 왔다. 그들이 인정받은 것은 배상이 제대로 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꾸준히 이웃에 대하여 사죄와 반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꾸준히 실현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두철미한 실용주의 노선이다. 이웃과의 협조 없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일본의 태도는 오히려 명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엿보인다. 마치 죄를 지었고 피해를 입힌 것이 확실한 죄인이 끊임없는 변명과 합리화로 일관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로 인해 그는 더 엄중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이 독일처럼 실용주의를 택한다면 사죄를 통해 피해국인 한국의 신뢰를 획득하여 ”깊이 반성하고 있기에 “라는 이유로 얻어질 피해자의 용서와 재판부의 신뢰를 통해 처벌의 경감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왜 이런 어리석은 태도를 취할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이 내전에 익숙한 나라이고 내전이 끝나고 관대한 태도를 통해 화합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집안싸움이고 대등한 입장의 전쟁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는 집안문제도 아니거니와 대등한 싸움도 아니었다. 즉 쌍방폭행이 아니라 일방폭행이다. 아울러 단기간에 벌어진 폭행 아니라 36년간이나 벌어진 학대였다. 따라서 일본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또한 일본은 전통적으로 동아시아국가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는 사실이다.. 그를 통해 실속을 챙겨왔지만 동아시아의 발전에 공헌을 하지 않았다. 이는 어찌보면 영국과 비슷한 면이 있다. 영국은 이른바 ‘Splendid Isolation(영광의 고립)’을 외교의 기본으로 한 나라이며 대륙에 자신들을 위협할 세력이 등장할 때만 이를 견제할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어 자국의 안전을 기한 영리한(?)나라(얍삽한 이라고 해야 할까?)였다. 하지만 영국은 대륙과의 관계를 꾸준히 이어왔기에 대륙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영국보다 더 고립적이면서 실리를 챙겨 왔고 그러다가 힘이 강대해지면 침략의 길을 걸어왔다. 고대의 한반도 침략, 왜구의 침탈, 도요토미의 침략, 근대 일본의 침략 등. 영국이 브렉시티를 선언한 것이나 일본이 오늘날 취하는 태도를 보면 그들은 여전히 실리만을 챙기려는 영리한(?)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제 동아시아는 약하지 않은 이웃임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기에는 강해졌고 또한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동아시아라는 지역 전체를 무시하거나 적으로 돌리거나 한다면 그 피해는 일본 쪽이 훨씬 클 것이다. 장기적으로 눈 앞의 이익에 얽매여 또는 명분에 사로잡혀 고립주의로 나간다면 소탐대심의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이는 영국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안중근의사는 일본에게 경고했다. 당신들이 가고자 하는 침략의 길을 계속 간다면 파멸할 것이며 아울러 동아시아국가들의 신뢰를 잃을 것이다. 이 예언은 불행하게도 그대로 들어맞았다. 일본은 결국 패망하였고 동아시아국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의혹에 찬 눈초리를 받아야 했고 지금도 그리하다. 하지만 일본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을, 독일과는 달리, 게을리 하였다. 일본의 어리석은 실리주의는 과거에도 오늘에도 그리고 내일에도 그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임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4.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래를 찾자 –위기를 기회삼아
한국이 식민지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명분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명분주의라고 한 다면 독일과 유럽 이스라엘이 제2차대전의 청산에 철두철미한 것도 명분주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들은 철저한 실용주의를 걷고 있다고 생각 한다. 인류가 겪은 참혹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익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화약고 유럽에서 전쟁이 그쳤다. 소렴과 미국의 냉전시대에도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바로 제2차 대전의 교훈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류는 평화를 (전체적으로는) 유지하였고 이는 우리에게 커다란 이익을 남겼다. 만일 이를 소홀히 했다면 우리는 3차 대전의 비극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없다 할 수 없다. (한국전쟁시 실제 그 가능성은 있었다) 이 이상의 실리가 실용주의가 어디 있는가?
일본에 대한 식민지 책임을 묻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은 민족이다. 과거에는 외세의 침입을 막지 못한 그리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우리 자신을 탓하였다. 그것도 틀린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경제를 군사를 키웠고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하지만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은 최선의 길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과 달리 식민지지배와 전쟁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 왜일까? 일본인들이 독일인들보다 악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것은 유럽과 독일과 달리 철두철미한 전후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전이 직접적인 배경이지만 그것은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독일은 냉전을 빌미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유럽 전체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연합은 그러한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국경과 국가의 벽을 낮추고 탄생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사죄와 배상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전쟁이 있을 때마다 그러한 것을 되풀이 했고 그래서 그 지혜가 쌓여 마침내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 그 열매는 유럽의 통합이 되었고 그로 인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진 셈이다. 철저한 실용주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은 동아시아를 우습게 보았다. ‘너희들은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일본은 유럽과 미국만을 제대로 상대한 것이다. 탈아입구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세월이 지나 중국과 한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여 과거에 비하면 관심과 협조를 하는 흉내를 내고 있지만 그것이 본심이 아님을 때때로 드러냈다. 특히 한국에게. 때때로 뱉어내는 망언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일본사회의 본심을 드러낸 것 뿐이라고 생각된다. 취중진담이라했지만 그들은 맨정신으로도 진담을 쏟아낼 정도로 마음 속은 다른 것이다.
그런 일본이 회개하고 반성하게 하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따끔한 맛을 보여줘서 알아서 기도록 하는 길 뿐이다. 독일이 되풀이 되는 전쟁과 그에 따른 피해를 통해 그렇게 하였듯이. 그래서 다시는 한국을 얕잡아 보고 함부로 보복조치를 못하도록 하는 것 그 길만이 우리의 안정과 평화 번영을 길이길이 보장하는 유일무이한 수단이라고 생각된다.
이보다 더 훌륭한 실용주의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한신이 폭력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었던 것 처럼 잠시의 굴욕을 참자고? 와신상담한 부차처럼 훗날을 기하자고? 우리는 한신이나 부차처럼 약한 자가 아니다. 더 이상 가랑이 사이를 기어갈 필요가 없다. 극일을 위해 와신상담한 세월이 얼마이며 그로 인해 얻은 성과가 있는데 왜 아직도 그런 패배자 근성에 사로잡혀야 하는가?
더 이상 일본의 호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번 아베의 보복조치는 아직도 한국을 제대로 된 이웃이 아니라 식민지지배를 했던 과거의 약한 상대로 마음대로 해도 되는 상대로 여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들은 중국에게 그러한 짓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본심을 드러낸 명확한 증거이다. 만일 우리가 역시 물러나면 “역시 너희들은 마음대로 대해도 되는 존재야”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양보를 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이 진정한 국익을 위한 것이고 실용주의란 말인가?
우리는 지난 100여년간 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강하고 지혜로워졌다. 일본에게 나라를 고스란히 넘긴 무능력한 조선이 아니란 말이다. 외환위기를 최단시간에 극복할 때 우리 국민은 피해를 감수하고 인내하며 노력했다. 그리고 해 냈다. 일본과의 싸움이라면 그 잠재력은 더욱 커짐을 우리는 잘 안다. 그것은 관념적 애국이 아니라 우리 민족 그리고 너와 나의 미래를 위한 신성한 싸움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에 이 또한 해 낼 자신이 있다. 무엇이 두려워 주저하는가?
우리는 더 이상 일본에게 매달려 우리의 자존심을 파는 어리석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일본이 우리를 진정한 이웃으로 파트너로서 여기지 않는 것이 드러난 이상 우리는 한일 협력이 아닌 다른 길로 우리의 미래를 틀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나아가 유라시아의 입구에 서 있는 우리는 무궁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일본이라는 섬나라에 매달리지 않아도 우리의 미래는 찬란해 질 수 있다.
이것이 그러한 전환을 가져다 주는 역사적 계기가 된다면 우리는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쪽발이들아 가라...우린 보다 큰 세계로 나아간다.” 라고.그들에겐 조그만 섬나라에서 자기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면 그만이다. 우리는 그들을 섬에 가둬놓고 다른 협력자들과 함께 세계를 향해 웅비할 것이다. 우리의 국토가 일본을 외면하는 모습인 것이 어쩌면 우연히 아닌 듯 하다.
우리는 넓고 넓은 대륙으로 꿈을 펼쳐 나가 언젠가 세계 5대강국에 들 국력을 구축할 것이다. 그러면 섬나라 족속들은 손을 들고 나와 우리의 가랑이 사이를 기겠다고 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반성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너희와는 다르다” 며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일으켜 세우며 화합을 말할 것이다. 그것이야 진정한 화합이다. 지금은 그 날을 위해 우리는 힘을 기르며 또 다른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낼 때인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당당히 내세울 것이다.
대타협 조건
1. 한국은 일본의 금전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만일 금전적 책임이 필요하면 한국정부가 대신 지불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2. 그 대신 일본은 식민지 책임에 대한 실질적인 사죄를 한다.
천황의 공식 사죄/ 교과서 왜곡 등의 시정/ 과거사 부정 등에 대한 철저한 방지책 마련
야스쿠니신사에서 전범자 위패 철수/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보장/한국에 대한 경제적 우 호 회복 및 유지 등을 성실하게 이행한다.
대한의 5천만 국민이여, 그리고 북한과 해외에 있는 3천만 동포여, 우리가 하나로 뭉쳐 이겨내야 할 시련이 다가오고 있다. 피를 흘리고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전쟁은 아니지만 마음의 피 영혼의 죽음을 각오해야 할 길고 긴 투쟁을 위해 하나가 되자. 대한민족의 역사상 가장 처절한 그리고 중요한 싸움임을 명심하고 나아가자. 민족의 힘을 결집하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단결을 통해 이 싸움에서 영광된 대한민족의 미래를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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