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세요 평신도 여러분! -자기주도 신앙생활법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사무엘 상 30장 6-8절)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은 일반 기독교도들이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깊습니다. 어떤 분이 미국 시민권의 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절차를 무사히 통과하고 마지막 단계에 까지 이르는데 성공했습니다. 최종적인 질문은 “당신은 미국이 전쟁을 하게 될 때 군인으로 참전하거나 후방에서 지원행위를 할 마음이 있습니까?”였습니다.
우리로서는 매우 상식적인 질문이기에 쉽게 “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정복전쟁처럼 여호와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전쟁 외에는 모두 불법이기 때문에 절대로 참전할 수 없으며 특히 총이나 검을 집는 행위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신념을 지켜 “아니요”라고 답했고 미국 시민권이라고 하는 엄청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내용을 제게 알려준 신문기자는 아마 기독교도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냥 예라고 답하고 나중에 회개기도해서 용서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믿음은 정말 대단하다‘라고 쓴 글이 그렇게 짐작하게 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이런 그의 생각에 동의할 것 같습니다. 눈 딱 감고 예라고 하고 (물론 기독교에 그런 교리는 없지만 있다고 치고)시민권 받고 나중에 회개기도 하지 하는 생각을 하겠지요.
하지만 신앙의 원칙상으로 보면 그 여호와의 증인의 선택은 정답이라고 해야 합니다. 아마 일반기독교신자라고 해도 그렇게 할 분들은 제법 있을 것이고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제가 윤선생 영어교실에서 근무할 때 저희 지사장이 여호와의 증인이었는데 저는 그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을 정도로 그에게 차이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비양심적인 행동을 너무 많이 해서 자주 다투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만나 함께 공부한 증인들은 한결같이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사이비(?)신자인 지사장도 꽤나 교리에 충실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고요.
아시다시피 여호와의 증인은 평신도중심체제입니다. 기본적으로 성직자 자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임사역자는 있지만 그들 역시 평신도으로 사역에 전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실시하고 있는 1대1 교육도 전부 평신도의 몫이고 주일(그들에게 주일 개념은 없으며 그냥 편의상 주일에 집회를 합니다)집회를 주재하는 것도 평신도의 몫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그렇게 길러졌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균일화된 내용을 전세계적으로 보급하여 이를 전하도록 하는 체계가 세워져 있습니다. 설교자가 임의로 메시지를 전하는 기독교와는 다릅니다. 그런 메뉴얼과 교재가 갖춰져 있어 이를 숙지하면 쉽게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평신도 사역이 가능합니다.
몰몬교의 경우도 평신도 사역을 하지만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몰몬교의 경우 1대1양육시스템은 여호와의 증인과 유사하지만 집회에서는 교재를 사용하는 대신에 개인적 간증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일 집회는 신앙생활을 공유하는 시간이지 배움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제법 산만해지고 조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저를 인도한 평신도 사역자들도 때론 졸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금 체계가 덜 잡힌 느낌이죠.
평신도 사역이 문제가 될까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 전서 2장 9절)이라는 말씀에서처럼 성경은 평신도들이 사역을 할 자격을 이미 갖고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된다면 몰몬교나 여호와의증인이 이처럼 세계적인 종교단체로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리가 다르다는 것과 그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원래부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결성한 단체이기에 나타나는 한계일 뿐 평신도사역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렇게 소위 이단이라는 종파에서는 평신도 사역을 강조하고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는데 비해 기독교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제한적이라 하겠습니다. 애초부터 평신도를 사역자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고 인정해도 매우 좁은 범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평신도를 신앙의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임사역자들에게 양육받는 피동적 존재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교육적으로 볼 때 이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소위 티처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에게만 의존하여 공부하는 아이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공부하는 이른바 ’자기주도학습‘에 서툴기 때문에 성적이 오르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이 교육을 해도 그가 24시간 곁에서 학습을 이끌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학습할 능력을 가져야 우수한 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티처보이는 그런 점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를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목회자보이 목회자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사나 전도사 등의 전임사역자에 기대어 신앙생활을 하니 신앙이 성장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오죽하면 ’툭탁 신자‘라는 말이 있습니까? 교회 갈 때 성경 책을 들어 먼지를 툭하고 털고 예배 끝나고 돌아오면 책상에 탁하고 던져 버리는 신자를 ’툭탁신자‘라고 합니다. 마치 학교에서 수업만 듣고 집에 오면 책가방 집어 던지고 놀기에 바쁜 학생들 같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우등생이 된다면 그는 엄청나게 머리가 좋은 경우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예전에 시험 직전에 책 한번 읽어보고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내는 학생들이 있었다네요.
하지만 그것은 정말 예외 중의 예외일 것입니다. 학력고사 또는 수능 시험 만점자 수석합격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말하는 학생은 없습니다. 원종수라는 분이 약간 그런 분이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니 일반화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자기주도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자신이 주도하여 기도와 말씀 그리고 찬양을 통해 자신의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영위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겨우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소그룹 모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만일 후자라면 여러분의 신앙은 아마 제자리 걸음에 가까운 상태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클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지만 교회직분에 비해 신앙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성실하게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안수집사 장로 권사가 되어 있지만 신앙의 깊이가 못 따라갑니다.
이런 분들이 문제는 직분에 의해 자신의 신앙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직분이 높으니 자신의 신앙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만족해 버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직분이 낮지만 신앙이 좋은 사람들을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교만하다‘는 것이죠. 신앙이 빠르게 성장하는 분들의 특징은 그것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교만‘이라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 해 봐서 아는데” “유난 떨지 마라. 예수는 혼자 믿냐?” “그러다가 다 내려온다. 나도 예전에는 당신만큼 뜨거웠다” 등등
목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직자를 신앙이 아니라 인간성이나 인품 목회자나 교회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편리함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심하게 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중직자가 전혀 신앙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개인적 문제로 끝나면 문제가 덜 하지만 교회 운영이나 중요한 결정에 인본주의나 세상 문화를 가져와 버려 족쇄가 되어 버리게 되면 목회자 입장에서는 큰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에게 세상적 사고나 인본주의적 발언을 하게 된다면 그 여파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키우고 영성을 높여가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의 삶에서 능력있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승전한 군사들은 영생을 얻으며 영광의 주와 함께 왕노릇 하리라”(’십자가 군병들아‘에서)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영생은 왕노릇은 집단적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교회 동료가 얻었다고 자신도 얻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승전한 군사‘들이라고 했지 ’승전한 부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전투에서는 부대 단위로 승전을 하지만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는 각 개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옆의 동료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과에 대한 최종책임은 각 개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학습과 신앙을 결합한 설명이 나이가 드신 분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자기주도학습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학교 때 공부잘 했던 기억이 있는 분이 드물거든요. 요즘 세대는 사교육이 발달해 비교적 자기주도학습이 확산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편할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평신도 개개인이 신앙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목회자나 같은 교회 지체들은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라 이런 점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대학 나아가 대학원 석박사과정이 되면 글자그대로 공부는 자신이 하는 것이며 교사나 교수님은 도우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습관처럼 그렇게 하였더니 제법 신앙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매년 성경 통독 1회는 필수로 하고 매일 큐티하고 새벽기도 자주 다니고 전도도 알아서 하고 산앙서적을 닥치는대로 읽고 요즘은 유튜브를 자주 시청하면서 설교도 듣고 찬양도 듣고 강의도 듣고 합니다.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신앙적인 내용을 귀로 들으면서 다닙니다. 여유가 생기면 신앙성장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저보다 훨씬 이런 면에서 뛰어난 평신도들은 수없이 계십니다. 교도관으로서 많은 경험을 하신 박효진 장로님의 유튜브강의는 웬만한 목회자들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요? 저도 그분의 방송을 즐겨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용기를 얻어 저 자신도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분의 인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그 정도가 되고 싶은 마음이지만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결과를 결정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부디 응원부탁드립니다. (유튜브에서 양의모라고 치시면 나옵니다.)
제가 예전에 집필한 ’라이언 집사 한국교회 구하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으로 출판된 것은 아니지만 책이 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야 교회도 성장하고 평신도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부교역자들이 무책임하게 사역에 임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들에게 지금의 교회는 임시라고 할 수 있으니까 너무 성의가 없으며 그로 인해 평신도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평신도가 사역의 중심이 되어야 부교역자가 바뀌어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평신도가 진정 교회의 주인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에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교회가 아직은 많아 목회자들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지지만 역사깊은 교회들이라면 평신도가 주인으로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평신도 자신들이 양육의 대상으로만 스스로를 낮추지 말고 교회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능력과 의지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제대로 교회답게 되지 만일 평신도가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교회는 목회자가 바뀔 때마다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특히 단기간에 목회자 교체가 이루어지면 상당히 위험해질 수도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또한 평신도는 세상에서 신앙의 실제 주체로 살아가기 때문에 더욱 그 중요성이 큼니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존재해서는 안 되며 세상에서 그 힘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결국 평신도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와 과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전도만이 평신도의 유일한 과제는 아니며 전도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처럼 스스로 제사장의 의상인 에봇을 입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제사장의 도움없이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굳이 목회자에게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목회자는 신앙의 프로이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신앙에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된다면 더욱 큰 성장을 통해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우등생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들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더 큰 기쁨과 행복 평안을 누리를 지름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자기주도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성공적인 삶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