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배가 멈추자 한 노인이 조용히 하선하기 시작했다. 많은 여성들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환영의 기다림이 아니었다. 분노의 눈길로 노인을 기다리는 여성들! 하지만 그녀들의 분노가 통곡소리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노인이 가슴에 품고 있던 영정 사진이 순식간에 분노를 슴픔으로 바꾼 것이다. 영정사진에는 노인의 세 아들이 담겨져 있었다.
1905년 러일전쟁 직후의 에피소드이다. 노인의 이름은 노기마레스케 대장이고 여성들은 러일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어머니들었다. 비록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많은 병사들이 전사했고 특히 노기마레스케대장이 지휘한 여순전투는 그야말로 시체로 산을 이룬 처절한 격전이었다. 1904년 11월8일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단 하루만에 8,000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을 정도였다. 1904년 2월에서 1905년 1월 러시아측의 항복까지 1년간 전개된 여순전투는 승자가 패자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은 전투로서 일본군은 57,000명의 사상자(이중 전사14,000명)를 기록하였다.이 과정에서 노기장군은 국민들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고 승전 후에도 자칫 수모를 당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런 그를 구한 것은 세 아들의 희생이었다. 최고사령관으로서 얼마든지 장교인 아들들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싸우게 하여 희생시킨 노기장군에게 여성들은 숙연함을 느꼈고 결국 그 앞에서 통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비겁하게 용서를 빌었다면 속시원하게 욕이라도 해 줄 텐데 그럴 수 없었던 것이 그녀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아닐까? 이런 걸 속된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지 라고 했던가? 노기 자신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 메이지천황이 사망하자 아내와 함께 생을 마감함으로써 아들들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지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여러분은 그런 사례를 금방 떠 올릴 수 있는가? 있다면 아마 백제와 신라의 황산벌전투일 것이다. 계백장군이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출전한 것 화랑관창과 그의 벗들이 앞장서 싸워서 죽어간 것 아마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최근 자주 접하는 지도자들과 그의 자녀들의 부정한 병역면제부터 한국전쟁 당시 지도자들의 비겁한 모습 등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은 아닌지 모르겠다. 언제 우리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자신들을 희생시키며 이 나라 백성을 구한 적이 있었던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도리어 뒤로 빠져 도망가기 바빴고 결국 힘없는 백성들이 이 나라를 구해냈던 것은 아닌가?
이러한 차이에 대하여 우리는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 그런 거지 뭐 그런 거야 그러니까 미안미안해"라는 유행가가 가사처럼 우리는 이 문제를 너무 쉽게 일반화시켜 잊어 버린 것은 아닐까?"아 억울하면 출세를 해라" 라는 노래처럼 출세를 하여 안전한 위치에 오르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여기고 오로지 입신출세를 위하여 달려 오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것이 최고의 위안이요 해결책일지 모른다. 어차피 한반도라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숙명처럼 여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잊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도 우열이 있다면 민족 사이에도 우열은 있을 것이라고. 한민족의 역사를 통해 본 우리의 자화상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과연 우리가 우수한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라고 평가되는 유대인의 경우와 대조해 봐도 그 차이는 확연하다. 유대인들은 비록 나라를 잃고 2천년의 방랑생활을 했지만 세계사에 빛나는 업적은 남기고 오늘날에도 세계를 좌우하는 무서운 세력으로 남아있지 않는가? 우리 역시 오늘날 과거와 비교해 커다란 힘을 가진 민족이 되었지만 유대인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부터 오는 것일까? 한국인의 지능지수가 세계에서도 월등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닌데.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가 퇴직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공학(서울대)과 인문학(한국학대학원) 그리고 경제학(일본히토츠바시대학)을 두루 섭렵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대담한 시도라고 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평가를 일본의 역사와 비교 분석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한 평가를 시도한 '역사의 품격'(책과 나무,2018)의 저자 배준호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평자의 히토츠바시 대학 대학원 선배이기도 한 배준호 박사는 한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으로 실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근래 우리사회는 민족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으로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오만함이 넘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거 식민사학에서 벗어나고자 하여 민족적인 자부심을 강조한 것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뭐든지 찬양고무하며 우리의 실패를 그리고 약점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남의 탓만 하는(특히 일본)풍토가 조성된 점은 실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경제적 성장으로 3만달러 시대를 맞이 하게 되자 그러한 오만함은 도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한 마디로 "돈이 면 다다"라는 사고가 만연되는 가운데 종합적인 평가에 의해 미래를 열고자 하는 생각이 사라진 감이 든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 보면 반성을 잊은 민족이 번영의 절정에서 무너져 내려간 사례는 헤아일 수 없다. 배준호 박사가 비교대상으로 삼고 있는 일본이 군국주의에 치달아 패망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할 것이다. 1904-05년의 러일전쟁에서 세계 최강의 육군국 러시아에게 승리한 일본은 자만에 빠져 반성을 잊게 되었고 마지막엔 세계최강국 미국을 대상으로 한 무모한 전쟁을 벌여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정신력 주의이다. 러일전쟁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여순전투에서 (다른 하나는 동해해전)무모한 돌진으로 수 많은 사상자를 낸(노기 장군이 지휘한)끝에 승리한 사실이 그러한 오만을 부추긴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국민작가 시바료타로는 그것을 1939년 러중국경에서 일어난 노몬한 전투에서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지 불과 40년도 되지 않아 양국의 전력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졌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반성을 잊은 일본의 전력은 약화되었고 패배를 되새긴 러시아는 일본이 따라가기 어려운 강군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막강한 히틀러의 독일군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배준호 박사의 '역사의 품격'은 읽는 사람들 -한국사람이라면- 에게 불편한 마음 심지어 분노를 일으킬 여지가 매우 크다. 어쩌면 책을 집어던지고 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친일파00"하며 분노를 할 독자도 속출할 것 같다. 배준호 박사외 히토츠바시 동문 모임에서도 그러한 염려가 제기되었다. 평자 역시 그 점에 공감하는 바이다. 민족사관에 취해 우리의 역사를 배워온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 식민지 지배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침략을 그저 피해자 의식만으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배준호 박사의 분석은 '을사오적'에 버금가는 괴변(?)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근 촛불혁명을 통해 이 나라 지도자들의 무책임에 얼마나 치를 떨었는가? 몽골에 대한 전쟁에서 전장을 누빈 것은 천한 백성들 심지어 노비들이었고 국가의 지도자들은 강화도의 안전함과 조세에 의해 호화로운 생활을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의병들의 분발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세를 만회한 임진왜란 역시 그러하다. 심지어 의병장들을 역모혐의로 살해하기조차 한 우리의 지도자들을 생각할 때 노기마레스케의 노블레스 오블리지는 그저 부럽기만 한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잃어버린 7시간은 논할 가치도 없다.
평자는 배준호 박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평자와 의견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점에서 고개를 갸웃뚱하게 하는 부부니 없지는 않다. 무인정권의 비교의 경우 일본의 무인과 한국의 무인의 태생적 차이점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일본사에 무지한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은 마음에 걸린다. 일본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평자에게도 그렇게 쉽게 읽혀지는 책이 아니니 일반대중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라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세부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이 책의 가치를 평가 절하할 수 없는 장점을 독자는 먼저 알아주기 바란다. 세부적인 토론은 그 다음 문제이다.
배준호 박사는 최근 한국일보 컬럼 '역사구락부'를 통해 우리의 상식에 도전하는 역사적인 사실을 제기하며 모두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세종대왕이라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비판도 불사하면서. 물론 그것이 모두 배준호 박사의 창작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절대전 존재에 대한 도전을 시도함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촉구할 용기를 발휘한 점이 아닐까 싶다.
그는 역사를 품격의 역사 실격의 역사로 구분하고 있다. 아마도 배준호박사의 꿈은 우리 역사가 앞으로 품격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격의 역사를 반성하고 품격의 역사를 되새겨 살려가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준호 박사의 시도가 우리사회에 보다 큰 흐름을 이룰 때 우리의 역사는 품격의 역사를 향해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E.H.카의 명언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고 싶다. 배준호 박사도 이 말을 본 서를 통해 강조한다. 역사를 그저 지나간 옛날의 이야기로 여기는 회고담점 역사에서 미래를 위해 우리가 되새겨야 할 대화상대로 적극 활용할 때 역사는 살아서 운동력 있는 귀중한 인류의 자산이 될 것이다. 이제 먼지로 가득한 역사의 창고를 청소하여 적절한 자리를 마련해주고 끊임없이 우리의 사고 속의 대화상대로 초대하여할 때가 온 것 같다.
구약성경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구약성경은 언듯 읽기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어 보면 이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약성경 곳곳에 자주 등장하는 주장은 역사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잘 섬길 때 이스라엘은 번영하였고 잊었을 때 쇠망하였다는 그들의 역사를 잊지 말고 반복학습하라는 구약성경의 가르침은 단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가르침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역사는 자화자찬에 빠진 오만과 편견에 가득한 역사이어서는 안 된다. 자부심과 아울러 아픔도 되새기고 반성을 동반한 것이야 비로소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예루삼렘의 통곡의 벽 앞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오늘도 찾아와 구약성경을 읽으며 통곡을 한다. 그들은 아픔을 되새기며 내일을 다지기에 소수의 민족인 그들이 세계사를 좌우하는 위대한 민족이 되었던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자. 우리 눈 앞에 있는 편견과 오만의 손바닥을 치우고 맑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기를 진심으로 충고한다. 배준호 박사의 '역사의 품격'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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