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과 통합은 희생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유대인만큼 민족적 단결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예전에 중동전쟁이 한창일 때 미국의 유대인 학생들이 앞다퉈 귀국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고위층이나 부자일수록 병역면제율이 높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도 온 몸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유대인이라면 어디에 있든 동족의 아픔을 함께 한다”는 것이 유대인의 민족의식이다.
우리의 민족의식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코로나 19로 모든 국민이 힘들지만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확진자와 사망자이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해 ‘총대’를 짊어진 것은 의료진과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생명과 생존의 위협을 무릅쓰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보상은 미미하기만 하다. 월남전 참전자에게 종신토록 연금과 병원비가 지원되고 있는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점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터무니 없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자영업자가 벼슬이냐?” “나도 자영업자가 되고 싶다” 식의 비난과 비방까지도 들려온다. “당신의 삶과 피해를 입고 있는 자영업자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까”라고 필자는 되묻고 싶다. 그들은 알량한 보상금조차 시샘하는 것일까? 어느 국회의원은 의정 단상에서 “자영업자만 국민이냐”라는 말까지 했다. 자영업자의 고통을 1이라도 이해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 아닌가?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이 이런 망언을 할 정도라면 일반 국민의 의식이야 짐작이 갈 것이다.
유대인과 우리 사이의 이런 차이는 역사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5천 년 역사의 대부분을 한반도에 정착하여 살았고 유대인들은 절반 이상의 시간을 떠돌이로 살았다. 고향 떠나면 고향이 더 그립고 타국에 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나 역시 경험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유대인들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1,500년 정도 거주할 동안에는 대립과 투쟁을 일삼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고국과 민족의 고마움은 나라가 망하고 외침을 당할 때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유대인들이 오늘날 목숨 걸고 조국을 지키는 것은 나라 잃고 당한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600만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떼죽음을 당했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에서 고국과 민족의 고마움을 새삼스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국가가 없어 서러움을 당하는 민족은 많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의 대응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세계최강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하루에도 수천 명이 죽어가는데 우리는 사망자 전체가 이제 겨우 1,474명(2월8일 현재. 이하 동일)정도이고 확진자 수는 81,185명에 그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이 406,274확진에 6,441명 사망1일 확진자 1,631명(5배. 인구 2.5배)인 것과 비교해봐도 K방역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사태 수습의 화룡정점은 바로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아닐까 싶다.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는 국민은 70% 이상이나 그것을 위해 세금을 더 내겠다는 국민의 비율은 50% 남짓에 불과하다.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조류 독감이나 구제역 때문에 가축이 살처분된 것도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본 것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점에서는 동일한데 왜 보상의 차이가 큰 것인가? 축산업자는 국민이고 자영업자는 외국인이라 말인가? 설령 외국인이라도 우리 국민을 위한 피해라면 당연히 보상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단결이 부러운가? 그들의 단결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닌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민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적절한 보상이 주어질 때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화합과 통합을 자주 언급하지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화합이나 통합은 누군가에 의한 억압이며 횡포일 뿐이다.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진정한 통합과 화합의 길이 열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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