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라는 선의 뒤에 숨겨진 엄청난 기만
목차
1. 기부의 미국 세금의 일본
2. 기부와 빈곤이 비례하는 현실
3. 문제는 진정성이다.
4. 기부와 복지는 대체재가 아니다.
5. 선의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 기부의 미국 세금의 일본
일본인 친구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다가 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빌게이츠가 일본의 기부가 적다는 사실을 비난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들도 기부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기부문화는 우리나 일본보다 앞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빌 게이츠의 말에 무조건 찬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일본은 미국과 달리 세금을 더 많이 거둬 사회적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기부가 적다고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기부와 세금은 같은 역할을 하니 일본사람들은 형식은 달라도 기부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라고도 말 해 주었다. 아울러 기부보다 세금이 훨씬 효율적으로 사회적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데 그 증거로 미국이 일본보다 빈곤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말도 덧붙혔다.
2. 기부와 빈곤이 비례하는 현실
이것은 결코 접대용멘트가 아니다. 기부란 자발적이기 때문에 기부자의 기분에 좌우되는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기부가 부자들에게보다 중산층 이하에 더 일반적이며 부자들의 경우 매우 형식적이라는 분석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두가 빌게이츠나 워렛버핏처럼 기부한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게다가 그들의 기부액수는 만일 세금이 높은 복지국가에서라면 내야 할 세금액수보다 턱없이 적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결국 기부란 생색내기를 통해 복지제도의 발달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미국의 사망자 발병자가 엄청났던 것도 이러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처럼 국민건강보험이 만들어지지 않은 미국에서 서민들이 의심증상이 있다고 해서 검사를 받는 것도 치료를 받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사망자와 확진자의 양산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 이 역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다-미국은 공중보건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을 가능성이 –적어도 우리보다-낮을 것이다. 공공서비스를 최소화하고 수익자 부담의 민간서비스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으니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러한 문제는 결코 기부로 충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기부와 빈곤률이 비례한다는 것은 명확한 통계로 나와 있다. 언 듯 가난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기부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볼 수 있지만 기부에 의존하는 나라가 가난하다고 보는 것이 보다 객관적인 분석일 것이다. 기부문화의 허상 뒤에 숨어서 탈세와 온갖 편법의 절세를 통해 기부한 액수보다 수 십배 수 백배의 세금도둑질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한다면 기부문화를 함부로 찬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 문제는 진정성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두 사람의 부자에 대하여 상반된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 부자관원에 대한 것이다. 그가 자신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키는가를 자랑하자 “그럼 너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한다. 반면 삭개오라는 세리장에 대하여는 그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고 만일 부정하게 모은 재산이 있다면 4배로 갚겠다고 선언하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있다”고 선언할 뿐 그 외의 요구는 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문제는 진정성이라고 생각된다. 부자관원은 형식적인 기부를 통해 자기만족적인 생활을 하는 위선자였다. 하지만 삭개오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자신의 것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예수는 그러한 차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러기에 다른 처방을 내린 것이다. 그는 부자관원이 자신을 따를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위선을 밝혀내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일 뿐이었다.
4. 기부와 복지는 대체재가 아니다.
기부문화가 활성화될수록 세금을 통한 복지시스템에 대한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된다. 1964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 골드워터는 교회와 같은 단체가 기부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복지보다 낫다고 주장하였다. 복지대신 기부라는 논리이다. 이것은 보수주의자들이 즐겨 주장하는 것인데 이는 복지와 기부가 대체재관계라는 생각이다. 기부냐 복지냐 이것이 문제로다 하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라 대체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기부를 중시하는 미국과 복지를 중시하는 스웨덴은 너무나 대조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복지가 기부보다 훨씬 훌륭한 시스템이고 제도임을 우리는 이러한 결과를 통해 확인하여야 한다. 기부라는 이름이 갖는 기만성에 속지 말고.
5. 선의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범죄를 범죄자의 선의로 막으려는 것처럼 사회적 빈곤이나 위험을 기부라는 선의로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범죄를 막기 위해 인간의 양심이나 도덕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나 그것만으로 범죄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찬가지로 기부라는 선의적 행동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길은 아닐 것이다. 개인위생과 보건을 통해 코로나 19사태를 해결하려 했던 나라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안다면 그러한 잘못된 주장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선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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