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 기본소득은 인류의 구세주가 될 것인가?
인류는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로 많은 집단을 형성하여 살아왔다. 작게는 가족에서 크게는 국가 나아가 국제연합 같은 세계적인 집단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집단이 만들어졌거나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나왔다고 하겠다. “삶이 무서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무서워 종교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집단을 통해 삶의 안전과 평안함을 보장받고자 한 인류의 노력이 집단들의 형성을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집단이란 긍정적인 역할만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집단에는 질서라는 이름의 억압이 존재하였고 그 질서란 대개 힘 있는 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으로 귀결되기가 쉬웠던 것이 현실이다. 가족이란 사랑과 평안이 넘치는 집단 같지만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힘 있는 가족이 약한 가족에게 억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점에서 다른 집단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성격의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하물며 기업 국가 등에 이르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이 이러한 집단을 거부하는 것은 좀처럼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단내 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한 억압은 있지만 그에 따른 보호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이나 계급적 이해관계로 다툼이 일상화된 이 나라 국민들도 월드컵 4강 신화 앞에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대한민국’을 외친 것은 그러한 모습의 상징적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로서 하나가 되어 서로를 지켜주는 집단으로서의 동질성에 흠뻑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뿌리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러한 집단으로부터의 해방을 끊임없이 시도하여 온 것 역시 사실이다. 경제적인 발전이 가져오는 생존능력의 향상은 각종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키며 개인의 자립과 자유를 확대시켜 왔다. 일족의 힘을 무력화시켜 소가족 내지 핵가족이 탄생하였다. 민족의 힘을 축소시킨 결과 미국과 같은 다민족 국가가 탄생하여 민족이 아닌 국가의 이름으로 된 집단을 강화시켰다. 기업에의 종속을 거부하고자 프리랜서 같은 자유업종도 늘어갔다. 가족 자체를 거부하기 위하여 비혼을 선언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개인의 자립이 불안하기만 하다. “둘이 가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겠지만 혼자서 넘어지면 누가 일으켜 줄 것인가?” 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자립된 개인의 삶이 가지는 불안함을 말해주고 있다. 고독사가 문제시되는 지금 집단의 필요성이 새삼 강조되기도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두 입은 먹여도 한 입은 못 먹인다” 라 는 일본의 속담은 홀로선 개인의 삶이 가지는 불안을 경제적으로 말해준다 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그런 점에서 개인의 자립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을 매개로 하지 않으니 실업의 위험이나 고령으로 인한 노동의 불가능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게 된다. 가족이 아닌 개인 단위로 지급되니 가족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릴 수 있다.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지급되니 자격의 상실을 우려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세상에 존재하는 한 기본소득은 개인의 삶을 지켜줄 수 있으니 얼마나 획기적인 도구인가?
하지만 함정은 있다. 정책이란 인간이 만드는 것이니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을 바꾸느냐에 따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기본소득에 의해 자유를 누리던 사람들이 정책의 변화로 그것을 상실하게 된다면 지옥이 기다릴 수도 있다. 미국의 불평등심화가 어느 날 찾아온 감세와 규제완화 때문이라면 기본소득 역시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 찬반양론은 무수하나 본질은 하나이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기대 바로 그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확신은 없다. 하지만 집단에서 해방된 개인이 누릴 자유의 무한함을 생각하면 모험을 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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