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본능이 아니라 범죄행위이다.
사람은 본능에 의해 살아간다. 먹고 싶고 자고 싶고 성관계 하고 싶어한다. 추우면 따듯한 곳을 찾고 더우면 시원한 것을 찾는다. 모욕을 당하면 화가 나고 그래서 때론 싸우기도 한다. . 본능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생존을 위한 본능과 생식을 위한 본능이다. 전자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고 후자는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후손을 남기려는 것이다. 이런 본능은 결코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며 필요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본능을 무한대로 채우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두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남에게 살의를 느낄 수 있다. “확 죽여버리고 싶다”이런 말을 뱉어 보지 않은 사람이 –설령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사건은 훨씬 적다. 그것은 법과 질서가 있고 양심이라는 또 하나의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본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을 저지른 것이다”라고 하여 마음의 죄를 경계하게 하였다. 이것은 성욕을 문제시한 것이 아니다. 범죄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마음을 정결하게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살의를 느끼지 않는다면 살인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으니 살의를 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과 같다. 실제로 예수는 형제(이는 친형제가 아니라 남을 의미한다)를 저주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여 살의에 이어질 마음을 경계하게 했다. 많은 남성들 특히 기독교도 남성들이 이 구절 때문에 괴로워하나 그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성에게-물론 아내가 아닌 경우이다- 음욕을 품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당연히 성범죄는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예방 차원의 가르침을 성욕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시사만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11월12일자 내용은 그런 점에서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몰카 범죄나 엿보기 등에 대하여 “왜 그렇게 궁금합니까”라는 질문은 본능에 대한 의문이다. “도대체 왜 그러지?‘라는 것은 행위가 아닌 욕망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행위로서의 범죄이지 동기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질문에 ”남자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합리화가 될 것인가?
우리는 본능을 억제하는 것 그리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배워왔다. 본능이 좋으냐 나쁘냐는 그 다음 문제일 뿐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죽여도 되는 것이 아님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왜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싶어할까“라는 질문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없다.
게다가 모든 남성을 몰카범으로 모는 식의 전개도 큰 문제이다. 살인사건은 늘 일어나지만 우리는 ”왜 사람은 살인을 하는 걸까?“라고 묻지는 않는다. 즉 개별적 살인사건을 가지고 사람전체로 일반화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그녀)는 왜 사람을 죽였을까?“라고 묻는게 정답이다. 물론 보다 철학적 성찰이라면 가능하지만 한겨레의 만화는 그런 철학적 의미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본다.
몰카를 하면 안 된다는 현실적 논리로 그린 만화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왜 남자는 여자의 000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가?“라는 질문은 해서는 안된다. 마치 모든 남자들이 몰카를 찍고 있다는 뉴앙스이다. 극소수의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니까 ”여자는 왜 성매매를 하는 걸까?“라고 묻는다면 여성 전체를 성매매범죄자로 모는 것이 된다. ”그녀는 왜 성매매를 하게 되었을까?“가 바른 질문이다.
몰카범은 그저 본능을 부정한 방법으로 해소하고자 한 일부의 범죄자들일 뿐이지 남성 전체의 보편화된 '행위'는 아니다. 남성의 본능이니까 합리화되어서도 안 되지만 일부 극소수의 남성의 '행위'를 남성 전체에 확대시켜 일반화하는 것은 남성들을 모두 범죄자로 모는 것에 불과하다. 보고 싶은 것이 범행동기가 아니라 그것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범행동기인데 왜 보고 싶어하는 것에 의문을 던지는가? 아울러 살인의 경우 동기가 중요한 참고자료이지만 살인은 우발적으로 일어나도 몰카 촬영은 우발적으로 일어나지 않기에 사실 동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살인도 성매매도 모든 인간 모든 여성의 일반적 행위가 아닌 것처럼 몰카 역시 극히 일부의 행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남성 전체를 범죄자로 모는 식의 주장은 멈춰야 할 것이다. 일부의 남성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남자들은 왜 그래?”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부 여성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여자들은 왜 그래?”하며 악플을 달고 비난을 하는 몰지각한 행위와 하등 다를 게 없다. 물론 그런 의문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범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것을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남성혐오주의자’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모였다 하면 남성들을 근거 없이 비난하는 여성들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전체를 ‘남성혐오주의자’로 단정할 근거는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보다 냉정해 질 필요가 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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