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곧 생명입니다. 마음이 전부다!
마음이 곧 생명입니다. 마음이 전부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 23절)
유명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4학년 때입니다. 물론 그를 직접 만난 것은 아니고요. 19세기의 인물을 직접 만나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가거나 초혼을 통한 방법과 같이 매우 신비로운 수단을 동원해야 하겠지요. 우연히 듣게 된 사회학개론 시간에 만난 뒤르껭에 대한 강의는 흥미진진한 것이었습니다. 강의를 해 주신 교수님이 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성분이라 의욕과 열정이 넘치셨다는 점도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학자에게 가장 뜨거운 시기는 학위를 받은 직후라는 것을 저도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우연히 만난 뒤르껭은 그러나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저는 뒤르껭의 주장을 자주 소개하곤 합니다. 사실 뒤르껭에 대하여 아는 바가 생각보다 적습니다. 제가 뒤르껭에 대하여 사회학 개론시간에 발표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조사를 했지만 학부 4학년의 능력의 한계도 있어 광범위하고 깊게 뒤르껭을 이해하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수박 겉핧기라고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의 ‘자살론’은 제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자살이 객관적인 어려움이나 고통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고립과 절망감이 가져다 주는 비극임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타적 자살이라는 말도 처음 알았습니다. 군인이 동료들의 죽음을 막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폭탄을 안고 적의 진지에 뛰어드는 것이 외형적으로는 자살이 아니지만 실은 그것이 변형된 자살이라는 이야기는 저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에밀 뒤르껭이 강조하는 것은 결국 마음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와 개신교 신자 사이에 보이는 자살률의 차이와 두 종교의 특징의 차이를 연결하여 이를 설명한 것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천주교에 대하여 잘은 모르지만 부모님이 천주교 신자여서 조금은 압니다. 천주교는 인간적인 교제를 매우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다른 성당으로 옮겨도 경조사에 와 주더군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예전에 다니던 성당 분들이 많이 조문을 와 주셔서 놀랐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제가 천주교로 개종을 고려할 정도로 감동받았죠.
두 종교의 차이는 결국 인간관계를 통해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 이어진 끈을 견고히 하느냐입니다. 그물망처럼 이어진 천주교도들은 고통을 당할 때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 줄 사람들이 많지만 개신교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신교도 개신교 나름이긴 합니다. 요즘엔 뒤르껭의 시대와 달리 개신교도 셀모임을 통해 개개인에 대한 케어를 하는데 열을 올리게 되었기 때문에 천주교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응집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그의 주장의 정수는 바로 인간의 마음이 곧 생명의 근원이라는 잠언의 말씀이 학문적으로 입증되었다는 점입니다. 뒤르껭은 자살에 대한 수많은 사례연구를 통해 그것이 단순한 이론이 아님을 과학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병들었다고 고통에 빠졌다고 모두가 자살하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자살에 대한 공포 때문만은 아니고 그가 마음을 지킬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가 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뒤르껭의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에 못지 않는 자살 공화국이었습니다. 원래 일본사람들에게는 자살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특히 추리드라마의 끝에 주인공은 자신의 원한을 풀고 죽어 버리는 경우가 많더군요.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마치 아름다운 최후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할복의 전통을 가진 나라답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깨긋하게 생을 마친다는 식이지요.
하지만 그게 다라면 일본의 자살률이 정책적인 지원으로 급속히 떨어졌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것은 극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일본은 우리와 함께 자살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신세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냐고요? 그것은 한 마디로 에밀 뒤르껭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고립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갖가지 정책이 시행되었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우리도 그런 것을 많이 실시하고 있어 자살률 자체는 떨어졌습니다. 다만 여전히 자살률이 선진국 중에서 으뜸 수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일본만큼 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살방지를 위한 예산이 비교할 정도로 적기 때문입니다. 흉내만 내었다고 할까요?
흉내만 내어도 그 정도라면 그 효과를 가히 상상할 수 있겠지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송파 세모녀’ 사건 등을 들여다 봐도 우리는 쉽게 그것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한 것은 그들의 고립과 절망이었음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좋은 방법 역시 명백합니다. 하나님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의 교제를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의 교제가 최우선입니다. 오늘 다락방의 필자 역시 하나님과의 교제를 시작하면서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성경을 읽기 시작하자 엄청난 평안이 밀려오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저는 믿음의 교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동호회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취미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도 믿음의 형제자매들과의 교제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교제를 깊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고립과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는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만나 그들과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뜬금없이 영국에 어학연수를 갈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물론 어학연수비용 등에 대한 조사이지만 그 다음으로 한 것은 현지 한인교회에 대하여 알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홈페이지를 찾아 그곳의 정황을 알아보고 교회 게시판에 글을 올려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죠. 결국 유학은 가지 않았지만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교회가 있고 한인교회가 있는 한 저는 최소한 맨땅에 헤딩하는 일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일본유학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에는 교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일부러 한인교회가 아닌 일본인 교회를 다녔는데 그로 인해 일본어 실력이 부쩍 늘었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아이 둘을 일본에서 낳았는데 그때마다 교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친정 부모도 제 부모도 오지 못하시는 상황에서 부모대신 저희 부부를 돌보아주신 교회 성도들의 (모두가 일본사람들입니다)호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자살과 고독사 문제는 날로 날로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마음의 문제임을 자각하고 고립과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크리스천에게 그것은 믿음으로 해결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는 정책적으로 고립과 좌절을 막아줄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비극은 공동체의 붕괴와 해체입니다. 과거에는 친척이나 친구 친지 등이 우리에게 든든한 벽이 되어 주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공동체가 쇠퇴하고 말았기에 고립과 좌절감이 예전에 비해 팽배해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결국 우리 사회의 비극적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믿음과 교제로 마음을 다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믿는 형제자매들의 교제 나아가 불신자들에게 마음을 나눌 기회를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을 키우고 전도의 기회를 늘린다는 점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그런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이 생명이고 전부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교의 가르침(모든 것이 마음에 의한다)도 있는 것처럼 이것은 보편적 진리인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마음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음에 집중하기 위해 하나님은 물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의 교제를 돈독히 함으로써 어려움을 이겨내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저희가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그리고 형 제자매들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교제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