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위하여’를 위하여 가야할 길

닥터 양 2019. 7. 1. 18:28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위하여를 위하여 가야할 길

1. 안중근이 꿈꾸던 세상 -동양 평화론과 일본의 배신

  19091026일 중국 하얼삔에 울린 총성!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이라할 인물 이토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눈 것은 조선의 청년 안중근이었다. 그는 왜 이토히로부미를 살해하고자 하였을까? 이토가 교과서에 써 있는 대로 침략의 원흉이기 때문일까? 이토 한 명 죽인다고 일본이 순순히 우리 땅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런 것을 믿을 만큼 순진무구한 어른이 어디 있겠는가? 일본은 황제인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전제군주국가도 아니고 더구나 그렇다고 해도 이토는 황제 메이지 천황의 신하일 뿐이다. 그의 죽음이 곧바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정책을 바꿀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중근은 왜 이토에게 총탄을 날려 이토가 순국하는 영광(?)을 누리게 했을까?

  일본은 몇 년 전 안중근의 테러리스트의 테러로 규정하였다. 사실 나 자신도 한 때 안중근의 행위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한 명의 정치거물을 죽인들 세상이 바뀔까? 더구나 이토히로부미는 일본내에서도 온건파이다..그를 죽임으로써 일본이 더 과격한 제국주의 침략으로 달렸다는 설도 있을 정도이다. 이토가 살아 있었다면 한국이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였을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토가 생존했다면 만주사변도 중일전쟁도 없었을지 모르고 그럼 한국은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테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사실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테러리스트 안중근을 악으로 볼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테러 자체는 폭력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행위니 그렇게 바람직한 것이 아니고 안중근의 테러역시 엄연한 테러이기 때문에 결코 미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접하고 나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를 암살한 것은 그의 행위에 대한 단순한 보복이 아니었고 일본 제국주의를 물리적인 힘으로 막고자 하는 무모한 시도도 아니었다. 이토의 살해는 안중근이 전하고자 하는 동양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토가 제국주의 일본의 상징이라면 그를 살해 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경고를 하고자 하는 안중근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의미 있는 행위이다.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가 나는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한 것처럼.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은 그가 단순한 테러리스타가 아니라 지성과 신념을 가진 위대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현재 유럽이 진행하고 있는 통합의 정신과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그가 시대를 앞섰음을 알 수 있다. 안중근은 한중일의 공동통화까지 구상하고 있었다. 오늘날 유럽이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유로화의 구상이 그에게 그것도 거의 100년 전에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서 동양 삼국이 연대하여 싸울 것 그리고 삼국의 황제가 로마 교황 앞에서 평화를 위한 서약을 할 것 등의 내용은 이토 암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보여준다 할 것이다. 아울러 안중근은 만일 일본이 신의를 저버리고 계속 한국 나아가 중국에 대한 침략을 이어갈 경우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도 하고 있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예상이다. 실제로 일본은 안중근의 경고를 무시하고 침략의 길로 달리다 패망한 것이다.

2. 동아시아 연합의 길은 멀고 험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각 지역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경우 서유럽에는 EEC( the European Economic Community유럽 경제공동체. 1958)EC(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1967)이 동유럽에는 소련을 중심으로 COMECON(Council Mutual Economic Assistance 동구권 사회주의가의 경제 협력 기구1949)이 결성되었고 냉전 붕괴 후에는 유럽을 총괄하는 EU(European Union유럽연합,1993)으로 통합되어 28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영국의 탈퇴로 27개국이 될 예정)유럽은 지역 공동체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데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동남아시아국가연합1967)과 같은 지역 공동체의 결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결성은 인류 공동체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인 UN이 있기는 하지만 제2차 대전이후 승전국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운영되기 때문에 예를 상임이사국의 구성-제대로 된 인류공동체를 위한 기구라고 보기는 어렵고 실제로 그 역할도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에 지역공동체는 각 지역의 국가들이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성 운영되기 때문에 보다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인류의 공동체 역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공동체의 결성과 운영은 인류공동체로의 중요한 스텝이라 할 것이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20세기초에 이미 지역공동체에 의한 세계평화와 번영의 길을 제시한 셈이다. 그가 주장하는 한중일 공동체의 결성론은 동양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안중근의 눈에는 세계평화와 공생을 위협하는 것은 바로 서양열강의 침략주의이고 그에 대항하여 동북아 공동체가 결성된다면 침략의 위협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동양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은 세계평화로 통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동북아 삼국에 한정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동아시아 공동체로 확대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동부아시아 국가들 한중일, 몽골, 대만 등-이 하나가 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름 하여 EAU(East Asia Union동아시아연합)이다. 동아시아 지역공동체결성은 몇 번 시도되었지만 국가들간의 이해관계 그리고 미국의 방해로 인해 무산되었다. 현재 지역공동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 바로 동아시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속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연합결성의 또 다른 장애는 바로 일본의 침략이라는 역사적 부의 유산이다. 안중근은 일본이 침략의 길을 가게 되면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말 정확히 실현되었다.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과 중국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침략의 역사일 것이다. 일본이 동아시아연합의 주도권을 쥐고 싶어도 그러한 과거의 역사는 큰 걸림돌이 된다. 과거의 잘못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전과자와도 같은 신세이다. 게다가 그러한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려는 성의 있는 태도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안중근의 경고를 무시한 것이 오늘까지도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외에도 중국의 패권주의 역시, 북한의 무법성 한국의 대미종속 등등 동아시아연합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많다. 유럽과는 달리 교류가 비교적 적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이 하나로 뭉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다투고 화해하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것이 전통이 된 유럽은 문제의 해결에도 보다 적극적인데 비하여 동아시아는 그러한 전통이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문제라기보다는 유럽이 조금은 특이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3. 지역공동체는 인류공동체로의 지름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공동체의 결성은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역사적 과제라고 단언하고 싶다. 인류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이래 작은 집단에서 시작된 통합의 역사는 지방세력, 국가 그리고 지역공동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역공동체의 결성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다면 그것을 하나로 하는 인류공동체의 결성이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명백한 진리인 것이다.

  유럽이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에 의해 평화로운 시대를 구가한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두 차레의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일어났음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제2차 대전 이후 유럽에는 국가 간의 전쟁은 사소한 분쟁 말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100년 전쟁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세계의 화약고였던 유럽의 변신은 공동체의 결성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반전이 아니겠는가? 공동체의 결성이 갖는 위렵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다.

  만약 유럽의 공동체결성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그것이 하나로 통합된다면? 인류의 공동체가 그렇게 실현된다면? 전쟁 없는 세계 군대 없는 국가가 더 이상 꿈이 아닐 것이다. 군대도 전쟁도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존재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존의 가치에 대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결성은 이러한 신뢰와 의지를 바탕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결성 그 자체로 전쟁과 군대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자원이 보다 본질적인 필요에 의해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인류 공동체는 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가능한 거대한 목표이다. 그것은 국가와 국가간의 충돌, 지역 간의 대립 아울러 국가 내부에서의 갈등 개인과 개인의 충돌 가족내의 불화 이러한 모든 대립과 충돌 갈등을 해결하려는 마음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현실적 시스템을 가지도록 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한 수준에서의 통합만을 바란다면 UN처럼 피상적인 역할 밖에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미시적인 수준에서만 움직인다면 인류공동체의 이름에 걸맞는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류전체라는 거대한 레벨에서 개인의 삶에 이르기 까지 여러 수준에서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 갈 때 인류공동체는 실현되는 것이다.

4. ‘인류공동체로의 여정

  나는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위하여에서 이러한 다양한 수준에서의 통합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국가 간의 갈등 국가내부에서의 대립 가족의 해체 등등 인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분열과 대립을 보이는 바 이에 대한 분석 역시 그렇게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다양한 분석이 서로 별개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인류 전체의 대립과 갈등이나 개인 간의 갈등과 대립이나 그 본질과 해결책은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다를 수 밖 에 없으니 여러 가지 수준에 의해 분석하여 보다 정확하고 종합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체 제목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위하여

1. 21세기 대한민국과 링컨 화합과 행복을 위한 길

2. 아름다운 가정과 사랑

3. 남녀관계 - 혐오론을 넘어선 남녀 화합의 길을 찾아서

4.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위하여

자본주의적 삶에서의 해방을 위한 지침 /봉사와 헌신으로 행복해지는 삶/

오늘은 내일을 위한 과정이 아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길

5. 교육 혁신의 길

6. 역사 일본역사/ 세계문화사/한국사

7. 인류공동체의 길

  최초에 소개되는 링컨의 이야기는 남북전쟁이라는 분열의 시기를 극복한 링컨의 리더십을 통해 분열된 세계와 인간을 화합시키는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탄핵재판으로 인해 국가전체가 두 동강이 난 상태이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좌우로 나뉘어져 대립하고 있는 이 나라의 통합의 길을 링컨의 삶과 그의 행위를 통해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아울러 링컨의 정신은 더 큰 수준의 통합에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포용과 원칙을 함께 실현한 링컨의 리더십을 통해 인류공동체의 길을 엿보고자 한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아름다운 가정과 사랑은 가정을 대상으로 한 통합론이다. 인류의 가장 작은 집단인 가정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가정의 미래가 불안한 지금 가정의 가치를 다시 묻고 그 회복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가족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공동체이다.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그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가족이 없는 인간은 없다.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가족의 사랑과 보호는 한 인간의 성장과 발전에 절대적인 것이기에 가족의 존재를 담는 가정을 우리는 보다 소중히 여기고 이를 아름답게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족의 가장 핵심적인 사랑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정과 사랑을 수호하는 것은 인류가 건강한 삶을 통해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과 사랑은 가장 낮은 수준의 가장 핵심적인 통합이라는 점에서 인류공동체의 결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남녀관계는 인류를 이루는 두 구성원의 대립에 대한 성찰이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해관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남과 녀 오늘날 그들 간의 갈등과 대립은 인류공영에 커다란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대립과는 달리 적과 동지가 명확히 구분되기 어려운 점이 크다는 것이 남녀 대립의 한 특징이다. 남과 여는 가족의 구성원으로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때론 적이기도 하지만 때론 동지인 것이다. 이러한 양면성이 남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양성평등의 문제가 중대한 과제가 된 오늘 피할 수 없는 이 문제에 과감히 도전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인류를 구성하는 두 구성원이 화합하여 살아갈 때 인류공동체의 길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석가모니는 그것을 알고자 출가를 하여 수도생활을 하였고 그 결과 불교를 창시하였다. 기독교의 예수는 그것을 전파하며 다니다 사형을 당했다. 공자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참다운 도를 실현하여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바른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고 마호메트는 그것이 알라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여 이슬람교를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쿠란이라는 구호와 함께 전파하였다.

  개인의 깨달음은 인류공동체건설에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대안이 될 것이다. 사회든 국가든 인류이든 모두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다. 개인이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수준의 공동체의 건설과 유지에 필요하다. 개인의 깨달음이 전체의 깨달음이라는 식의 공식은 성립되지 않을지 모르지만(개인의 단순한 합이 사회가 아닌 것처럼)매우 중요한 기초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올바른 가치관의 개인이 사회를 이룬다면 인류공동체는 보다 쉽게 만들어질 것이다. 개인수준에서의 통합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개인의 깨달음인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위하여는 그 점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펴 볼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은 교육을 통해 이루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길일 것이다. 교육이 바로 이루어질 때 깨달음은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주어진다. 입시위주의 교육 생각을 방해하는 가짜 교육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생각과 그 실천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지식이나 능력의 배양 등을 위한 참교육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교육 개혁은 그것을 위한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형식과 수단에 얽매이지 않는 교육의 길을 모색한다.

  역사는 우리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열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이다. 과거의 사실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목표나 꿈 그리고 그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간다. 경험이란 지식의 습득도 포함되어 있다. 그 모두가 그 사람의 역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과거에서 모든 것을 미래로 연결시켜 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는 이러한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역사의 이해 없는 미래로의 전진은 마치 어두운 길을 등불 없이 걷는 것과 같다. 잘못된 역사이해는 고장난 나침반을 가지고 항해를 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인류공동체로의 길을 보다 넓게 열어줄 것이다.

  아울러 역사는 인류의 구성원들 사이에 발생하는 각종 대립을 해결할 하나의 도구가 될 것이다. 인류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는 어느 사회 국가의 과거이다. 과거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불필요한 오해와 대립을 피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화합의 길이 열릴 것이다. 세계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 역시 보다 용이하게 될 것이다. 화합은 이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화합은 억압이다. 역사를 통해 서로를 진정 이해하여 참다운 화합의 길을 걸을 때 인류공동체의 꿈은 보다 빨리 그리고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상의 여정을 끝내면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하나로 하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하나 하나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점검하고 이를 이해하며 그 실천을 고민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분의 합이 곧 전체는 아니듯이 이러한 부분적인 성찰이 곧 전체에 대한 해법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비빕밥은 섞어서 하나를 만들어야 되듯이 이상의 과정에서 얻어진 것들을 하나로 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 필요하다. 인류공동체는 무엇이며 왜 필요하며 그것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시간이 될 것이다 

5.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을 채워 가는데 머물고 있지는 않을까? 예전에 어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쓸데없는 거 걱정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는 답이 돌아왔다. 어른이 되자 돈 벌 생각이나 하라고 하는 답을 들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보통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는 것으로 끝내도 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은 결코 고립된 것이 아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모여 인류를 이룬다. 작게는 가족 보다 크게는 사회 나아가 국가를 이룬다. 하지만 인류와 국가 사회 가족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다. 서로의 상호작용이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 그러니 개인은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여서는 안 된다. 내가 속한 가족 국가 그리고 인류를 바라보며 살 때 비로소 개인의 삶이 제대로 영위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살해된 사람 국가의 잘못된 정책으로 큰 피해를 본 사람 사회에서 소외되어 범죄자가 된 사람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개인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개인의 합인 전체가 만드는 환경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임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속한 모든 전체의 모습을 고민하고 그것을 변화발전 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인류공동체란 그러한 것의 인식을 전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외면한다고 이러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당신의 무관심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룰 것이다. ‘인류공동체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은 당신의 삶을 결정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해라는 말처럼 개인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우리의 삶을 결정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하고자 한다. 당신의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