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가장 든든한 부모이다 – 믿고 맡겨라!
하나님은 가장 든든한 부모이다 – 믿고 맡겨라!
그것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하나님의 계획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그 이름 홍예숙! 그녀의 시작은 그야말로 재앙이었습니다. 엄마가 임신을 하고 병원에 갔지만 의사들은 그것을 임신이라고 진단하지 않고 약을 처방했습니다. 여러 번 임신과 출산을 거듭했기에 임신을 의심한 엄마가 계속 병원을 찾았지만 역시 진단 결과는 임신이 아니었고 더 센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임신을 확신하고 약을 버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임신 9개월이 되어도 의사들은 임신이라는 진단을 내리지 않았으니 이것이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가 될 일입니까? 그 정도면 배가 불룩해져서 세상이 다 알 시기인데. (하긴 10대 아이들의 임신을 출산 때까지 부모가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이해가 아예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뻔했습니다. 임신을 하면 감기약 조차 피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토록 쎈 약을 복용하였으니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홍예숙의 삶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갈 운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죠. 과연 그녀가 정상적으로 자라 어른이 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오늘 놀랍게도 홍예숙은 목사의 사모가 되었고 게다가 ‘지구 최강’의 치유사역자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면서 예수님처럼 살고 있습니다. 놀라운 인생역전 드라마가 아닙니까? 그러한 기적을 기획하고 연출하고 이끌어온 것은 누구의 몫일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셨어요’라는 정경주 사모의 간증처럼 이 모든 것은 한나님께서 만드신 장대한 드라마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홍예숙 사모의 부모님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10살이 되던 해에 홍예숙 소녀는 기도원에 맡겨졌습니다. “아니 아무리 장애가 있다고 아이를 그냥 버리다니!” 이런 말이 나올 법하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 맡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뜨겁게 홍예숙을 위해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을 훗날 홍예숙 사모는 자신의 자서전 ‘나는 진실로 행복한 사람’(고즈윈, 2009)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 중의 일부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그렇게 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이지 주체가 아니며 주인은 더더구나 아니니까요. 그러니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적어도 주님 앞에서는! 믿음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그 역시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이니까요.
홍예숙 사모의 삶은 평범한 정상인이 감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전개되었습니다. 10살에 기도원에 맡겨져 마치 맹자가 그랬듯이 기도를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나이에 산기도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기도의 수준이 거의 예수님 수준이었습니다. 4박 5일간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기도하는 것은 일도 아니고 심지어 3주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40일 금식기도는 자랑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깨에 눈이 쌓이고 그래서 얼었다 풀렸다 하다가 마치 바위가 그렇듯이 어깨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모를 정도로 기도했답니다.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기도의 달인들이 울고 갈 수준의 기도 그것이 소녀 홍예숙이 보여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기도준비가 끝나자 놀라운 사역을 하게 됩니다. 투시능력으로 사람의 병을 진단하고 안수나 명령으로 치유하는 치유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홍예숙 사모의 나이는 이제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그 나이면 부흥회에 가 앉아 있기만 해도 대견할 텐데 자신이 부흥회를 이끄는 부흥강사가 된 것입니다. 놀라운 치유능력과 함께 말씀의 은사도 함께 받아 성경 66권을 꿰뚫었으니 은혜로운 말씀을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이끄신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저 자신 없어요!”라는 푸념에 하나님은 ““걱정 말아라 딸아! 내가 했지 네가 했냐?”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런 그녀이기에 미친 사람도 말 한마디에 얌전한 사람이 되었고 손을 대면 무서운 병마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홍예숙 사모는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애썼고 자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오늘날 자신이 치유해서 나았고 그 과정에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오창균 목사와 대망교회를 세워 사역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정보는 의외로 적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넣고 검색해도 신통한 자료는 찾기 어렵습니다. 교회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사모님께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신다”라고” 하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장애를 갖고 있기에 숨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치유집회를 이끌 수 있었습니까? 중학생의 나이에 미국까지 가서 수 천명을 고치는 집회를 했던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 없겠죠.
오늘의 필자 역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이사야 66장 13절)의”(이사야66장13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아들을 하나님께 가도록 믿음의 기반을 다져주려고 노력해 왔고 그것은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녀는 결코 아들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자녀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홍예숙 사모의 부모님들처럼.
자녀를 키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갓난아이가 태어나 자라 한 사람의 성인이 될 때까지의 기간이 길고 깁니다. 다른 동물은 불과 몇 개월에 그렇게 되는데 인간은 20년 이상 걸립니다. 그것만으로도 힘든데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니 부모 말씀을 얌전히 들으며 자라주지 않으니 더욱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육아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의 욕심만으로 아이를 키우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요? 입으로는 하나님 예수님을 찾지만 그 마음에 진정한 믿음이 없으니 아이를 그분들에게 이끌지 않은 채 자신의 힘으로 키우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보다 세상의 교육을 더 신뢰하고 맡기는 크리스천이 과연 크리스천일까요? 자녀 교육의 목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보다 세상적인 성공에 두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죠? 하나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니 힘든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습니까? 자녀 교육의 모습을 보면 그 믿음의 실체가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 믿음과 참믿음의 차이가 확연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사실에 예외는 없습니다. 자녀 교육도 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믿고 맡기십시오. 그것이 되어야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 자격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제 아이는 제가 키울게요. 전 하나님께 맡기는 게 불안하네요” 이런 생각은 곧 불신을 의미합니다. 그런 분이 다른 것은 온전히 맡길 수 있겠습니까?
홍예숙 사모의 부모는 그녀가 대학 가는 것조차 반대했습니다. “네가 충분히 은혜를 받고 주님의 사역을 하고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대학을 가려느냐?” 믿기 어려운 수준의 믿음이네요. 여러분은 자녀가 대학에 가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말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홍예숙 사모는 대학을 3번이나 합격했지만 도중에 사역 때문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아니었으면 홍예숙 목사라고 불러야 했겠지요. 마지막으로 입학한 학교가 신학대학이었으니까요. 여러분과 제가 이러한 믿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