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들아, 가끔은 머뭇거려야 인생 이란다 제3부 아름다운 삶 배우기 (5) 아들아 경험으로 너의 지평선을 넓혀라

닥터 양 2015. 2. 26. 11:29

아들아, 가끔은 머뭇거려야 인생 이란다

3부 아름다운 삶 배우기

(5) 아들아 경험으로 너의 지평선을 넓혀라

 

아들아 아빠는 어제 티브이에서 철학에 대한 강의를 보았다. 티브이도 바보상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대로 애는 쓴다. 문제는 그런 프로를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지. 입시생이나 뭔가를 꼭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교육방송을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아빠도 그런 이상한(?) 사람 중에 하나지만. 티브이도 적절히 이용하면 쓸 만한 점도 있지. 중독이 되어서 늘 상 티브이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문제지.

어제 내용은 흄이라는 철학자의 이야기였어. 아빠는 흄이라는 철학자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있지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기 때문에 무척 관심을 갖고 보았단다. 아빠는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어. 특히 서양철학은. 동양철학은 논어나 맹자 같은 책을 원서로 읽어 봤고 관계된 문헌을 좀 보아서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철학은 예전에 학교에서 배운 것 이상으로 깊이 공부한 적이 없어 . 언젠가 한 번 도전해 보고 싶구나.

흄의 주장은 경험론이었다고 강사가 말해 주었어. 강사분이 서울대 철학과교수인데 무척 쉽게 강의를 해 줘서 어려움 없이 내용을 이해했지. 언젠가 그런 강의를 좀 집중적으로 들어 보고 싶구나. 이성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경험은 미지의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하였지.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되면 그로 인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게 되니까.

하지만 경험에 의한 지식탐구는 한계도 있다고 하더군. 경험에 의한 지식이 언제까지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거야. “여러분들이 오늘 타고 온 지하철이 돌아갈 때도 있을지 확신할 수 있나요? 경험상 그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요? ” 라 고 질문을 던지니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그럴 듯한 의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구나. 그것을 강사는 ‘항상성’의 결여라고 하더군.

경험이냐 이성이냐는 아빠가 학교 다닐 때도 논쟁거리였지. 제대로 모르면서도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싸움을 벌였거든.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친구들은 대개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이 소유자들이고 이성을 중시하는 친구들은 조금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지. 말하자면 자기들이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니겠니?

그런데 인생을 오래 살다 보니 그런 논쟁이 그다지 생산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구나. 결론은 둘 다 중요하다는 거야. 경험론은 주로 영국에서 지지를 받았는데 자연환경도 안 좋고 농사도 잘 안 되는 영국인들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주로 밖으로 다니면서 활동을 많이 했고 그 덕에 해상왕국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어. 활동을 많이 해서 경험을 많이 쌓아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해 가다 보니 실용적인 분야가 발달했지. 과학이나 경제학 법학 등.

그에 비해 독일이나 프랑스는 넓은 땅과 좋은 날씨를 갖고 있으니 돌아다니기 보다는 주로 집에서 지내면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 프랑스사람들은 집보다는 카페를 주로 이용한 것 같지만 어쨌든 밖으로 돌아다니며 활동을 하고 다니던 영국인에 비하면 정적이라 하겠지. 그래서 이성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싶네. 데카르트는 프랑스인이고 칸트는 독일인지. 그들은 모두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것 같아. 그래서 철학 문학 음악 같이 관념적인 것이 발달 한 것은 아닐까 싶네.

하지만 인생이란 경험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 같아. 경험만 쌓는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어렵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뭔가 보편적이 진리를 끄집어내는 것이 이성이야. 그러니 경험과 이성을 모두 중요시해야 하지 않겠니?

그런데 세상이 점점 이성만을 중요시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말이 좋아 이성이지 사실은 탁상공론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 되지. 아빠가 문화의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변해 갔다는 말을 했음을 기억하니? 이것은 적극적인 창조자에서 수동적인 소비자로 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뭔가 자기 힘으로 하기 보다는 그저 돈으로 사서 즐기기만 하겠다는 것이라 하겠지. 그럴수록 경험이라는 것은 결여되게 되고 결국 그것이 더 소극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일종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거지.

아빠가 어렸을 때 비해 사람들은 경험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봐. 뭔가를 하기를 싫어하고 대신 책상머리에서 그저 생각만 하거나 돈으로 소비하려고만 하지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귀찮아 하는 거야. 교회에서도 봉사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사람들은 교회에서 손님이 되어 가고 있단다.

소득이 높아졌으니 그냥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지. 과거에는 집에 손님을 초대해서 대접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어. 외국 사람들은 지금도 홈파티라는 것을 하는데 과거에 도리어 그런 것을 잘하던 우리나라가 오히려 그것을 하지 않게 되었단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장례식조차 집에서 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야. 외국에서는 지금도 집에서 장례식을 한단다.

외국에서는 유명한 야구선수나 연예인들의 사회봉사가 삶의 일부인데 우리는 뭔가 예외적인 행사가 되어 있지. 그들은 비활동기간에 그런 것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하고자 한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는 학생들의 봉사활동조차 시간 떼우기식의 요식행위가 되고 있지. 봉사내용도 지하철 역에서 피켓들고 서있기 헌혈권장 피켓들고 서 있기 같이 그다지 큰 의미 없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교육에서 뭔가를 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넌 공부만 하면 되 나머지는 아빠엄마가 알아서 할게 ” 라 고 하여 오로지 책상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도록 교육 받은 아이들이 뭔가를 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 그런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 마찬가지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고 있으려고 하지 않겠니? 그러니 남을 위한 봉사가 가능하겠니?

과거에는 방학을 이용해 각종 활동을 했지. 아빠는 중학교 시절에 보이스카웃활동을 했는데 여름이면 캠핑을 가서 며칠 간 밥도 해먹고 설거지도 하고 텐트도 쳐보고 하며 자립하는 연습을 했단다. 비로 짧은 기간이지만 부모님 곁을 떠나 생활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지.

그런데 요즘 스카웃활동 같은 걸 보면 정말 어이가 없더라. 학교에 있는 각종 단체가 하나가 되어 버스를 빌려 어딘 가에 가서 그저 몇일 동안 지내고 오는 것이 다야. 물론 식사나 그런 것도 자신들이 만들지 않지. 그냥 뭔가 한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행사 같더라. 이래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니? 아이들은 자립심을 기를 수도 없으니 말이야.

대학생들은 어떻고. 우리 학교 시절에 지금처럼 돈이 있니 뭐가 있니? 그래도 배낭하나들고 싸구러 완행열차( 각 역마다 서는 기차인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의 열 두시간 걸린단다 대신 요금은 엄청나게 저렴했지. 1988년 서울 부산 요금이 2000원 정도지. 물가를 생각해도 정말 싼 거야 당시에 전철기본요금이 200원이니 지금으로 치면 만 원 정도나 될까? .)

그런데 요즘엔 우리 보다 여유도 있을 텐데도 방학에 뭐했냐고 하면 알바나 하고 그랬다는 소리 밖에 안 하는구나. 물론 여행을 열심히 다니는 학생들도 있지만. 뭔가 이해가 가지 않네.

아들아 아빠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생애 한 번 그것도 되도록 25살 이하일 때 해외생활을 1년 정도 체험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아빠 나이 27살에 일본유학을 시작했어. 그 때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단다. 바로 이웃나라인데 이렇게 다르니 멀고 먼 외국은 어떨까 라고.

모든 젊은이들에게 무이자로 2천만원 정도를 해외생활체험자금으로 빌려주고 일 년간 어느 나라라도 좋으니 외국에서 살아보게 하는 거야. 모자란 돈은 본인이 부담해야겠지만 그래도 2천만원이면 큰 도움이 될거야. 영미권같이 인기있는 지역은 조금 덜 주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좀 더 주는 것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분산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 몰라.

아빠는 특히 젊은이들이 유럽대륙에 많이 가서 경험을 했으면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영미권 특히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지. 그래서 우리사회가 커다란 변화를 거두기 어려운 것 같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틀에서 문화를 수용하고(그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그저 전공의 틀에 갖혀 다람쥐 쳇바퀴같은 생활을 하다 돌아오니)있으니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가 없단다. 유럽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니 우리는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을 거야.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너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는 아빠의 무능력이 안타깝구나.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그렇게 해주고 싶구나. 아빠는 너에게 유산을 물려 줄 생각도 없고 (나중에 자세히 말하지) 너의 결혼 비용을 대줄 생각도 없지만 네가 배우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힘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싶구나. 너 뿐 아니라 누나들도 그렇고 제자들도 그렇고. 인재를 키우는 것은 소비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이니까.

얼마 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했단다. 어느 여고에 ‘은조’라고 하는 봉사동아리가 있단다. 은조란 은밀하게 돕는다는 뜻이데 봉사점수나 따려고 하는 모임이 아니라 봉사를 체험하여 평생을 봉사하며 살자는 의미에서 만든 동아리라고 하네. 갸륵하지 않니?

그런데 그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찾아가 상대하는 할머니에게 일어난 일이야. 그날 따라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이기에 병원에 가 보시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괜찮다고 하셨다네. 그래도 걱정이 돼서 두 여학생은 다음 날 다시 찾아갔어. 그런데 그 할머니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계신 거야. 그 중 한 학생의 아버지가 119구급대원이시라네. 그래서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서 응급조치를 하게하고 병원으로 모셔서 다행히 회복되셨다네.

이런 경험을 한 학생들은 더욱더 봉사의 소중함과 기쁨을 알게 되니 아마 평생 그런 삶을 살게 될 것 같구나. 이성이나 이론으로 깨달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경험으로 현실화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아들아 명절증후군이라고 들어 봤니?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뭔가를 하기를 싫어하는 지 알 수 있는 증거야. 일 년에 두 번이란다. 겨우. 예전처럼 몇 날 몇 일을 하는 것도 아니야 겨우 하루 정도일까? 정확히 말하면 몇 시간이지. 명절준비를 하는 것 때문에 증후군까지 등장하는 구나. 예전 어머니들이 보면 얼마나 한심할까? 일 년에 한 두 번 가족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만 가지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걸 가지고 증후군까지 만들어내는 나라가 이 나라야. 봉사나 섬김이 실종된 나라이지.

솔직히 말하면 명절이 없어졌으면 하는 구나. 명절로 인해 그렇게 괴로워한다면 왜 있어야 하니? 그냥 명절 없애고 대신에 며칠 푹 쉬는 날로 지내면 어떨까 싶다. 아빠는 서울 사람이라 더 그렇게 생각해. 실제로 명절기간에 해외여행 가는 사람도 많아. 그렇다면 더욱 의미가 없지

과거의 명절은 이렇지는 않았단다. 각종 놀이나 행사를 하던 날이었지.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이 다 사라지고 말았어. 축제가 없는 나라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란다. 이른바 지방축제라는 것이 있지만 수입을 잡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지 전통을 이어가는 행사들은 아닌 것 같구나. 여기서도 우리가 얼마나 소극적 인간이 되어 있는 지 알거야.

머리만 커져서 뭐든지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인간들이 사는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이다. 축제도 명절 풍속도 사라진 나라 대한민국 정말 이대로 좋으니? 손님대접도 사라진 나라 대한민국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미국에도 존재하는 홈파티조차 없어진 나라 대한민국 뭐든지 직접 하려고 하지 않고 경험을 싫어하고 머리로만 살려는 나라 대한민국 그렇지만 정작 필요한 사고나 사색은 없는 나라. 그저 돈이나 벌고 잘 먹고 잘살고 그것 밖에 생각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아들아 절었을 때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험을 통해 너의 삶의 지평선을 넓혀 다오. 그것이 너의 일생의 재산이 되어 너의 삶을 보다 역동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흄이 말한 것처럼 경험에 의한 지식이 항상성의 결여로 불안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너의 지식이 커져간다면 인생의 스케일도 함께 커져갈 것이라고 믿는다. 아들아! 비게덩어리 제거하고 눈을 밝혀 나침반을 손에 든 채 인도자와 함께 경험의 세계로 뛰어들어 봐야 하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