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이기주의가 가져온 아동학대
극단적 이기주의가 가져온 아동학대
“손주가 딸의 젖은 빠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났어요. 제 딸에게서 영양을 뺏어가는 것 같으니까요” 필자는 이 말을 접하고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이것은 남이 아니라 아기의 외할머니가 한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외할머니가 손주에게 수유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 미소를 지어야 할 것이다. 손주란 비록 한 단계 거치기는 해도 엄연한 직계 자손이니 자식에 버금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손주는 자식보다 귀엽다”라는 어느 노인의 말씀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을 키울 때는 부담감 때문에 귀여워할 여유가 별로 없었지만 손주는 그렇지 않아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 말에 ‘손주가 얼마나 귀여울까?’라는 호기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런데 손주를 원수로 여기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아주 별난 사람들만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싶고 실제로 얼마나 많은 외할머니들이 손주를 이런 식으로 미워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대부분의 외할머니들은 여전히 손주를 자식처럼 사랑하고 귀여워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른바 조손가정의 경우를 보면 조부모가 자식이 버린 손주를 사랑으로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이런 말이 자주 들려오기 때문에 마음에 걸린다.
이것을 가족의 사랑마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된 증거라고 말한다면 과잉반응일까? 지금 가족의 해체는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가족이니까 참고 산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어가고 있고 가족을 더 이상 운명공동체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 현실일 것이다. 물론 가족이니까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는 주장은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가족의 사랑으로 최대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노력을 하고는 있는지 묻고 싶다.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가족 해체를 결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 사고가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주에 대한 적대감은 조부모의 사랑이 손주에까지 미치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가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체되어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이 말은 사촌이 매우 친숙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촌이란 관혼상제나 잘 해야 명절 때나 만나는 어색한 상대가 된 것 같다. 명절에 친척끼리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자주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의 질책은 물론 관심까지도 부담스럽게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라고. 이렇게 가족이 멀어져 핵가족이 일반화되었지만 이제는 핵가족마저도 해체되어 가고 있다. 손주에 대한 조부모의 적대감은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이모 부부에 의한 아동학대가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모라면 엄마처럼 믿고 따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던가? 고모보다 이모가 우리에게 더 친숙한 것은 엄마의 자매이기에 조카를 더 정성껏 돌봐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손주를 적대시하는 사회라면 이모가 조카를 학대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 조카뿐인가? 친자식마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심지어 배우자가 미운데 아이가 배우자를 닮았다고 해서 학대를 하기까지 하는 세상이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그런 행위에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이것은 극단적 이기주의가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녀의 수가 하나나 둘이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왕자님 공주님으로 대접받으며 살아왔기에 희생과 헌신과 거리가 먼 ‘이기적’ 세대가 부모가 되거나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를 돌봐야 할 때 그 부담감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가시킬 가능성은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애초에 비혼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야 적어도 아동을 학대할 가능성은 없으니 특별히 문제될 일은 없지만 문제는 결혼과 출산으로 아이를 양육해야 할 처지가 될 때이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다. 매스컴에서는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고 하거나(우리나라 매스컴의 수준 아닌가?)훈육에 대한 생각을 바꾸자고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대책은 아닐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권의식이 더 높아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반려동물을 학대해도 처벌을 받는 세상이다. 그것은 동물이라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에 따른 것이다. 아동은 특히 영유아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아무런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다. 동물이라면 물거나 할퀴는 저항이라도 가능하지만 그마저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가 더 그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철저히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결코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아님을 모두가 제대로 숙지하고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시대이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마구잡이로 태어나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부모교육을 받아야 아이를 낳을 자격을 주도록 제도화하고 싶을 정도로 아동학대가 심각한 것 같다.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회복하도록 우리 사회가 더 힘을 기울여야 이 땅의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하게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