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3)
마음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3)
그것은 글자 그대로 저의 ‘인생드라마’였습니다. 저에게 인생 드라마라 할 수 있는 드라마는 세 편을 들 수 있습니다. ‘메이퀸’ ‘모래시계’ 그리고 바로 이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앞의 두 드라마가 제 삶까지 바꾸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감동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특히 ‘메이퀸’의 경우 매번 보면서 눈물의 바다를 헤매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매 번이라는 말도 모자랍니다. 순간순간 쏟아지는 감동에 눈물을 흘려야 했으니까요. 물론 제 삶에 영향도 컸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국민드라마였던 ‘모래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동 그 자체였던 드라마지만 제가 그것으로 얼마나 변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나머지 드라마와 ‘네 멋대로 해라’(이하 ‘네 멋’으로 줄임)은 여러 가지로 다릅니다. 나머지 드라마는 스케일이 큼니다. 모래시계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시간과 공간의 폭이 있습니다. 주제도 다양합니다. 정치 사회 음모 사랑 등등 하지만 ‘네 멋’은 오롯이 남녀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다른 요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록일 뿐입니다. 좁고 깊게 다루었기 때문에 영향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나머지 드라마가 아픈 과정이 어어져 갔다면 ‘네 멋’은 행복과 아픔이 교차하는 드라마였습니다. 오히려 행복한 장면이 더 많았지요.
주인공 남녀는 조건이나 미래보다 사랑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원래 사랑해서는 안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성은 독립밴드의 키보드 연주자입니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할 정도로 실력있는 연주자이지만 클래식보다 락밴드에 더 관심이 있어 이 길에 들어섰습니다. 피아노만이 아니라 웬만한 악기는 다 다룰 정도의 재주꾼입니다. 더구나 그녀의 아버지는 큰 호텔의 사장이었습니다. 반은 조폭같이 거친 사람이지만 자식사랑은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락 음악을 하는 딸이 못 마땅해서 못살게 굽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뀐 것일까요?
그에 비해 남자주인공은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거의 보기 어렵지만 과거에는 꽤나 서민들을 괴롭힌 ‘소매치기’전과자입니다. 드라마의 시작부분에서 그는 2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매치기를 하게 되죠. 순식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꿀잡(?)이니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죠.
소매치기가 두 사람을 이어줍니다. 여자주인공의 지갑을 훔친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말이 되나요? 소매치기와 부잣집 딸 어울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지갑을 훔쳤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 지갑에 밴드의 멤버의 치료비가 들어 있었는데 돈이 없어 결국 치료를 못 받은 그 맴버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면 결코 사랑해선 안 될 사이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것을 뛰어넘어 사랑을 하게 됩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마음의 사랑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소매치기임을 알고 더구나 자신의 지갑을 훔쳐 동료를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그를 원망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미운 마음을 사랑이 이긴 겁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이. 그래서 결국 그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좋아해도 될까요?” 라 고. 그렇게 둘은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좋아해도 될까요?” 별로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않는 이 말이 저의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좋아하는 걸 굳이 허락을 맞을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 말은 그녀가 소매치기라는 그의 정체를 알고 쏟아부은 막말에 대한 미안함과 용서를 비는 마음이 담겨 있기에 감동적입니다. 감히 좋아할 자격이 없는 자신을 받아달라는 것이겠지요. 그것도 여성이 하니까 더욱 감동이 큼니다. 마음이 사랑의 이끌림에 자신을 맡기는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하죠. 사랑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현실에서는 먼저 고백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불리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사람이 머리를 숙입니다. 먼저 고백하면 상대에게 끌려다녀야 하니까 절대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을 놓치더라도. 애당초 사랑이 목적은 아니고 사랑이 주는 이익이 목적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더 있습니다. 남자주인공이 뇌종양 말기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된 여주인공은 “그럼 저 좋아하면 안 되는거 아닌가?”라고. 그러자 남자주인공은 “어떻게 안 좋아해요”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무책임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것을 오히려 좋게 생각합니다. 사랑이 깊기에 그랬던 것이니까요. 다른 드라마에서 보면 죽을 병에 걸리면 일부러 차갑게 굴어 상대를 떼어놓거나 그러는데 그건 상대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나중에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실제로 이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여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 있을 때 죽은 사람 되지 말고 죽었을 때 살아 있는 사람 되지 마세요”라고. 남자주인공은 자신이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통해 여주인공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이겨내자는 의미에서 이 말을 합니다. “살아 있을 때 죽은 사람 되지 말라”는 것은 왜 미리 죽음이 두려워 삶의 행복 즉 사랑을 포기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두려움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거나 억제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녀는 현재의 행복을 함께 누리자고 합니다. “죽었을 때 살아 있는 사람 되지 마세요”라는 말은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을 가지지 않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치고는 드물게 여주인공이 주도 하에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것은 그녀가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망설이는 남자주인공을 이끌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우리 사랑해요”라는 메시지가 역력합니다. 용기 있는 결단이지요.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드라마에서는 그 흔한 키스신 한 번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음의 사랑은 스킨십이나 키스 섹스 등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은 그런 것을 굳이 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흐믓하게 합니다. 물론 그런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드라마에서 그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육체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며 굳이 육체가 하나가 되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만일 서로가 원한다면 결혼하고도 평생 섹스를 일체 하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있습니다. 상대가 정말 저로 하여금 마음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면 말입니다. 이것은 경험담입니다.
마음의 사랑은 마음을 채워주기에 ‘섹스’없어도 배가 부릅니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말이죠. 드라마의 결말은 애매합니다. 수술을 했는데 성공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죽더라도 그녀의 마음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의 사랑이 가진 힘입니다. 몸이 떨어져도 마음은 하나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동의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