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끄럽지않는 우리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나? (1) 동아시아 최고의 문명을 이루다.

닥터 양 2020. 4. 21. 22:33

부끄럽지않는 우리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나?

(1) 동아시아 최고의 문명을 이루다.

 

목차

1. 야만이 넘치던 유럽의 중세 영주마저도 일자무식

2. 세계최고 문명의 동아시아학인관리와 철인군주가 다스리던 곳

3. 신비주의적 기독교와 현실적인 유교윤리의 차이가 가져온 결과

4. 맹자 이익 대신 인의를 말하다. ‘하필왈리(何必曰利)’의 교훈

5. 유교의 가르침이 조선왕조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지탱하여 주었다.

 

1. 야만이 넘치던 유럽의 중세 영주마저도 일자무식

  “농민은 물론 영주마저도 일자무식 저는 세계사 교과서에 적혀 있던 이 문장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주라면 우리로 치면 양반인데 양반이 일자무식이라니 말이 되나 싶었죠.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역사라하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던 저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역사과목에 더욱 힘을 기울여 공부했습니다. 혼자 교과서를 읽다가 이 문장을 접하자 한동안 진도를 나갈 수 없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여쭤봤지만 시원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사학과에 진학한 후에는 다른 역사문제에 파묻히는 바람에 이 문제는 잊고 있었습니다.

  “누가 역사를 암기과목이라고 했던가?”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위의 구절을 암기만 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하며 공부한다면 큰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위에 제시된 범상치 않는 문장의 의미를 추적함으로써 역사의 퍼즐을 완성시켜 봅시다.

영주가 일자무식이라는 것은 사회전체가 속된 말로 무식하다고 것입니다. 무식이란 곧 문화의 부재나 몰락을 말하며 따라서 중세 유럽은 문화가 부재하거나 몰락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문장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이런 글입니다. “수도원만이 문명의 등불을 지키고 있었다중세유럽은 게르만이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입니다. 게르만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던 것처럼 로마제국에 비해 문명의 혜택을 훨씬 덜 받은 민족입니다. 그것은 게르만족이 원래 무식해서가 아니라(그런 민족은 없습니다. 반대로 원래 유식한 민족도 없습니다) 북방의 거친 땅에서 수렵과 농경을 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언제 글자를 배우고 공부를 합니까? 그런 건 토지가 비옥하고 날씨가 좋아 먹고 살 일이 어렵지 않은 남방의 농경민족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유럽을 지배하게 되었으니 무식이 넘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독일인에 대하여 일종의 경외심을 느낌니다. 문학 철학 음악 과학 등 다양한 지적분야에서 넘사벽적 업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사실은 오랫동안 야만인으로 무식하게 살았습니다. 게르만족도 게르만족이지만 로마가 무너지니 문명을 유지할 비용과 인재가 사라졌습니다. 나라가 망해 힘든데 태평하게 책이나 볼 사람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유럽은 종이도 없던 시절이니 책이 너무나 귀했습니다. 이 점에서도 유럽은 동아시아에 비하여 훨씬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나마 로마제국시대에는 균형을 맞췄는데 그나마 무너지니 야인시대가 아니라 야만시대로 접어듭니다. (야인이 판치니까 야만시대일까요?)

2. 세계최고 문명의 동아시아학인관리와 철인군주가 다스리던 곳

  그렇게 유럽이 수도원에서나 문명을 유지하던 시절 동아시아에는 문명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양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뭔가요? 조용한 사랑방에서(안방이 아니고요. 안방은 주인마님의 거처입니다)정좌하고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아닐까요? “하늘천 검을현” “자왈 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랴)를 낭독하며 공부하는 모습이야말로 양반과 선비의 스탠다드한 이미지입니다. 일자무식한영주들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서양사람들이 동아시아에 와서 감탄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학인관리 또는 학자관리입니다. 과거시험이라는 난관을 뚫고 합격하여 관리가 된 사람들은 지금으로 치면 박사학위 받은 학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유식한학자들이 관리가 되어 나라를 관리하니 얼마나 훌륭한 통치가 펼쳐지겠는가 하고 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습니다. 심지어 왕이나 황제도 학자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세자의 후계자 세습은 학자의 양성과정에 버금갈 정도로 지적입니다. 공부를 게을리 하면 대신 매를 맞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엄격하게 훈련을 했습니다. 그러니 왕이 된 사람은 관리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박사학위 소지자처럼 지적인 능력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연산군처럼. 하지만 그도 뛰어난 시인이었다. 폭군조차 문학을 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그래서 동아시아를 방문한 과거의 서양인들은 철인정치라고 찬양했습니다. 플라톤이 그리던 철인정치가 동양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라이프니치는 열렬한 중국매니아였다고 할 정도로 당시 유럽은 중국열풍에 휩싸였습니다. 그들이 조선에 왔다면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세계최고의 문명을 자랑했습니다. 서로마제국이 붕괴되어 야만의 시대가 찾아왔을 때 그래서 중세의 암흑기가 어쩌고 할 때도 문명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이라는 중국의 4대발명품은 그 상징이라 할 것입니다. 종교문제로 살육을 일삼던 그들과 달리 동아시아는 불교 유교 도교 등이 모두 함께 공존하는 관용을 보였습니다. 종교적 갈등은 있어도 전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이 종교전쟁을 겪고서도 수 백년간의 시간을 보내 겨우 이룬 이종교간의 공존을 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루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아시아의 군주들은 민중을 벗겨먹는데 혈안이 된 서양의 군주와 달랐습니다. 그들은 유교적 윤리로 가득차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성인을 지향하고 정치적으로는 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백성의 어버이으로서 법보다는 윤리와 도덕으로 나라를 이끌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민중은 이익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존재였습니다. 與民同樂(여민동락)’ ‘君民一體(군민일체)’의 정신으로 국정에 임하였습니다. 국가는 사유화의 대상도 아니고 매매양도상속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천명을 어길 경우 역성혁명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이 민주주의의 여론정치같이 그들을 견제했습니다.

3. 신비주의적 기독교와 현실적인 유교윤리의 차이가 가져온 결과

  너무 미화시켰다고요? 그런 건 이론일 뿐 실제론 다르지 않았다고요? 예 맞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지요. 하지만 이론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실현되지 않겠습니까? 아예 그런 것조차 없는 경우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서양에도 정치철학이 있었고 도덕윤리가 있었지만 로마제국 붕괴로 그 뿌리가 뽑히지 않았습니까? 기독교가 그나마 중심을 잡고자 했지만 한계가 컸죠. 우리처럼 과거제도를 통해 기독교교리를 통치자들이 공부한 것도 아니고(오늘날에도 기독교도 중에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경우는 드문데 하물며 그 시절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기독교자체가 개인적 구원에 치우쳐 제대로 된 통치철학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니 얼마나 황당합니까? 그마저도 르네상스니 종교개혁이니 해서 무너지고 근대 철학이 등장하기까지는 공백기가 컸습니다.

  중국도 한나라가 망하고 이어진 진나라가 북방족에 의해 남방으로 도주한 후 한동안 야만의 시대가 열렸지요. 그런데 그것이 300년이 못가 원상회복되었습니다. 북방민족은 중원의 문화에 감화되어 그것을 따라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세력이 건재했습니다. 그리고 천년넘게 중원의 문명은 흔들리기는 했어도 무너진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동아시아문명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계속적인 발전을 이룬 것입니다.

  저는 과거제도를 예전에 엄청나게 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암기식 교육의 원조라고. 물론 지금도 그 점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시험을 위해서라도 통치철학과 도덕 윤리를 배웠는데 그것도 철저히. 하지만 서유럽의 지배자들은 무엇을 배웠습니까? 없죠. 윤리도 도덕도 없는 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니 막장이 될 수 밖에 없죠.

  유명한 성상논쟁을 아십니까? 동로마 황제는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의 분리 이전에 유럽 종교의 최고권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우상숭배를 금한 성경의 가르침을 엄격히 지키도록 하여 성상(오늘날 가톨릭 교회에 가면 잔뜩 세워 놓은 예수상 마리아상 등)을 파괴하도록 명합니다. 그러나 로마의 주교(훗날의 로마교황이죠)는 게르만족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유효하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합니다. 그로 인해 동서유럽의 기독교가 갈라서게 되는 것이죠.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시의 기독교도들이 문자에 의한 기독교교리나 성경을 배우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오늘날까지도 가톨릭은 그런 이유로 교리라는 점에서 개신교에 비해 약합니다. 물론 개신교조차 교리를 제대로 공부하고 이를 주야로 묵상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지만. 중세후반이 되면 유럽에도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생기지만(우리에겐 이미 고대시대부터 각종 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이름은 달라도) 그것은 서민은 물론 지배계급에게 필수적인 기관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과거를 위해 열공하는 우리들 지배계급과 같은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죠.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유교만큼이나 지식으로서 전수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종교가 의식이나 신비주의에 머물면 그 영향력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대한민국 사회를 보다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개조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아예 그마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기대만큼 사회의 개선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일파라 할 수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이와 반대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온갖 악평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굳건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고 마침내 대체복무라는 우리 사회의 정서에 반하는(한국에서는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것에 대한 공격이 엄청나죠) 개혁을 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의식이나 신비주의가 아니라 철저히 교리를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11로 교리를 정기적으로 배워야 구성원으로 인정해주고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가르치는 것을 권장 받아 그로 인해 또 철저히 배우게 됩니다. 교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죠. 그에 비하면 일반기독교는 의식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쁘게 말하면 세뇌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우리의 선비들이 유교를 철두철미하게 배우고 익혀 단발령에 목숨을 걸고 대항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와 같은 혁명사상을 머리에 철저히 심어놓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 활동을 기억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일반 기독교의 경우 그러한 세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철저한 교리습득과 실천을 말해주는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한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미국이 전쟁을 하게 되면 직간접적으로 도울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일반 기독교도라면 그것이 신념에 반해도 일단 그렇다고 하고 집에 돌아가 회개 기도를 하겠지만 그는 라고 하여 불합격되었습니다. 그 좋은 미국 시민권을 얻을 기회를 그 하나 때문에 놓친 것이죠. 군대를 거부하여 징역을 살아야 했던 것 수혈을 거부하여 생명을 잃는 것-그런 행동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제쳐두고 생각하면-이런 무모한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교리를 철저히 배우고 익혔기 때문입니다.

4. 맹자 이익 대신 인의를 말하다. ‘하필왈리(何必曰利)’의 교훈

  맹자가 말했습니다. 나라가 오로지 이익만을 찾는다면(何必曰利하필왈리- 왜 이익만을 말하는가 라는 그의 반문에서 나온 말)위와 아래가 서로를 해치고 그래서 나라가 망한다고 했고 그러기에 인의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릴 것을 가르쳤습니다. 감동적인 설교입니다.

孟子見梁惠王(맹자견양혜왕)하신대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 뵈자 王曰叟不遠千里而來(왕왈수불원천리이래)왕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와 주셨으니 亦將有以利吾國乎(역장유이이오국호)잇가 :역시 이 나라에 앞으로 이익을 주시려 함입니까?"

孟子對曰王(맹자대왈왕):맹자가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왕께서는 何必曰利(하필왈이):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亦有仁義而已矣(역유인의이이의)또한: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王曰何以利吾國(왕왈하이이오국)고 하시면 :왕께서 나라의 이익만을 생각하시면 大夫曰何以利吾家(대부왈하이이오가)오하며 :대부들은 어찌하면 내 집이 이로울까 생각하며,士庶人曰何以利吾身(사서인왈하이이오신)고 하여 :선비나 백성들은 제 한 몸의 이익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上下交征利(상하교정이):윗사람이나 아랫사람 모두가 서로의 이익만을 취하게 된다면

而國危矣(이국위의)리이다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萬乘之國(만승지국):만승의 나라에서 弑其君子(시기군자):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必天乘之家(필천승지가):반드시 천승의 대신이며,千乘之國(천승지국):천승의 나라에서弑其君子(시기군자):그 왕을 죽이는 자는

必百乘之家(필백승지가):반드시 백승의 대신입니다. 萬取千焉(만취천언)하며 :만승의 나라에서 천승을 지니고 千取百焉(천취백언):천승의 나라에서 백승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不爲不多矣(불위불다의)언마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苟爲後義而先利(구위후의이선리):진실로 의리를 뒤로 미루고 이익만을 앞세운다면不奪(불탈)하여는 :모든 것을 다 빼앗지 않고서는不饜(불염)이니이다 :만족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未有仁而遺其親者也(미유인이유기친자야):아직 어질면서 그 부모를 버린 사람은 없으며未有義而後其君者也(미유의이후기군자야)니이다 :의로우면서 임금을 뒷전으로 여긴 사람은 없습니다.():왕께서는亦曰仁義而已矣(역왈인의이이의)시니 :오직 인의만을 말씀하실 것이지何必曰利(하필왈이)잇고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맹자 위나라 양혜왕편)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글을 읽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양혜왕은 양나라 혜왕이 아닙니다. 전국칠웅의 하나인 ()나라의 왕입니다.) 우리 자신은 모두 양혜왕같이 살고 있지 않나요? 입만 떼면 돈을 벌 생각 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맹자는 하필 왈리를 부르짓습니다. ‘하필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지만 그것이 여기서 나온 줄 아는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넌 왜 하필...?”는 식으로.

  그리고 맹자의 주장이 논리정연하게 펼쳐집니다. 자신은 인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인의정치가 도리어 큰 이익이 됨을 주장합니다. 왕이 나라를 이롭게 할 생각을 하면 귀족은 가문을 서민은 자신을 이롭게 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아담스미스는 각자 이익대로 움직이게 놔두라고 했는데 이는 서양의 군주들이 날강도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아담스미스의 주장을 가지고 와서 문맥을 무시하고 찬양하는 바보들이 지천에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먹힙니다. 왜나고요? 모두가 하필왈리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모두가 이익을 찾는 것이 왜 나쁜가를 논증합니다. 제후가 군주를 죽이는 것은 이러한 이익중심의 사고 때문이라고 맹자는 주장합니다. 모두가 이익만을 바라보니 흉악한 일들이 끊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죠.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에 빠진 상태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법과 질서만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 즉 인의로만이 막을 수 있다고 맹자는 주장합니.

  萬乘之國(만승지국):만승의 나라에서 弑其君子(시기군자):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必天乘之家(필천승지가):반드시 천승의 대신이며,千乘之國(천승지국):천승의 나라에서弑其君子(시기군자):그 왕을 죽이는 자는 必百乘之家(필백승지가):반드시 백승의 대신입니다.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이 구절을 접하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래서 바로 외워버렸습니다. 이것이 고리타분한 가르침일까요? 유교는 성리학은 구태의연한 것이라 하시는 분들은 이런 문장이 맹자에서 논어에서 지천으로 깔려있음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현실적 가르침을 하는 종교가 또 있나요? 복이나 바라고 죽어서 천국이나 가겠다는 종교야 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맹자는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 합니다.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죠. 결국 세상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누구도 행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의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라고 합니다. 어느 정치 철학 통치이념에 뒤질 것 없는 주장이 아닙니까?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성찰의 결과입니다. 개인적인 철학에서 정치로 발전한 주장 그야말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이념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상공업을 천시하고 농업을 중시한 것이 무조건 비판받아야 할까요? 상공업이 발달한 우리사회는 정말 행복할까요? 아니면 맹자의 말대로 위아래가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혼란만 커졌을까요? 상공업을 장려하는 것이 이의 극대화를 가져오고 그것은 모든 것을 다 가져야 끝난다는 맹자의 가르침에 어긋나기에 억제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오늘날 상공업을 억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객관적으로 역사를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상공업을 억제한 것이 세상의 도덕윤리를 바로 세워 공정한 사회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이죠.

5. 유교의 가르침이 조선왕조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지탱하여 주었다.

  제 동창생 중 하나인 김경일박사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저도 물론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공자의 주장의 본질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의 가르침이 악용되어 나라에 해를 끼친다는 주장이며 어찌보면 공자의 가르침 나아가 유교의 가르침의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독교도 악용되었을 때 온갖 폐해를 끼쳤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를 보십시오. 말로 다할 수 없는 참담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 본래의 정신은 아니겠지요. 유교도 성리학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서가 아니라 따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권력이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유교와 하등 관계없는 일입니다. 공자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했지 착취를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유교는 임금은 임금답게 하고 신하가 신하답게 하라고 했지 멋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지켰다면 착취나 억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억압과 착취를 유교의 탓으로 합니까?

가부장제 운운도 이상합니다. 가부장제가 유교의 전유물입니까? 어느 나라든 과거에는 가부장제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가부장제란 가족이라는 생존단위를 이끌어가기 위한 관습입니다. 어차피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사회라면 가부장제는 불가피합니다. 그것이 왜 우리 고유의 문화이며 유교의 폐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튼 이런 가르침을 배우고 때로 익힌 사람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나라를 이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의지할 것은 검과 총 뿐입니다. 맹자가 말한 것처럼 상하가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나라가 혼란과 분열에 빠져 서로 죽고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외부로 나가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이 팽창형 성공을 거두게 하였으니 그것이 과연 칭송받아 마땅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조상탓을 합니다. 결국 오늘날 대한민국은 모두가 하필왈리를 부르짖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선진국 으뜸의 자살공화국에서 행복하십니까? 경제가 문제라고요? 지금보다 훨씬 못 살던 시대에 자살이 지금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부모를 내버리고 아이를 내버리는 것이 가난해서입니까? 아니면 맹자의 말대로 하필왈리가 부른 혼란과 타락의 결과입니까?

조선은 결코 부패하고 타락하고 무능하기만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학자군주 학인관리가 다시리고 위민정치를 펼치고자 애쓴 나라입니다. 상공업을 천시한 것은 이익이 최우선과제가 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상공업을 중시해서 남의 나라와 전쟁을 하고 침략과 지배를 일삼은 서양의 역사가 자랑스럽습니까? 아니면 느리지만 발전을 하면서 인의를 중시한 문명국 조선 동아시아가 더 바람직할까요? 답은 각자의 선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