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문현답 –한일관계에 대한 오해 몇 가지

닥터 양 2020. 4. 14. 21:35

우문현답 한일관계에 대한 오해 몇 가지

 

목차

1. 들어가기 히도츠바시 아카데미 여러분!

1. 일본에 대한 비판을 과거 양반가문의 후예에 대한 비판이라고 본점

2.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혼동했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

3. 시대가 바뀌었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

부가질문 일본의 반인륜적인 행위는 문제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한 것은 문제가 아니 라는 주장.

 

해설 이 글은 사회디자인 연구소소장이자 415총선에 관악갑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 했다가 막말문제로 제명되어 도중 하차한 김대호씨의 공격에 대한 답변입니다. 개인적인 논쟁이지만 이런 식의 문제에 대하여 오해를 없애기 위해 게재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 다. 김대호씨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없고 다만 그와 같은 생각에 대한 비판을 위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다만 그가 평소에 한 친일적인 언행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김대호씨는 악의가 있는 인물은 아니며 도리어 자기 나름대로는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 끌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는데 다만 그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뜻이 민주당에서 관철되지 않자 결국 미래통합당의 문을 두드렸고 국회의원후보로 공천받기 까지 하였으나 결국 팽당하고 말았습니다. 보다 더 심한 막말을 한 차명진을 용서한 미래통 합당이 그를 내친 것은 그가 외부영입인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지역적 특징상 미래 통합당이 승리하기도 어렵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입니다. 평소부터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결 국 무덤을 판 셈이나 차명진의 면죄를 생각하면 희생양이 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하는 히도츠바시 아카데미라는 공부모임을 위한 단톡방에 올린 반론입니다. 김대호씨가 이 단톡방에서 저를 공격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론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것은 김대호씨에 대한 개인적 반론이라기 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저의 의견으로서 올린 것 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들어가기 히도츠바시 아카데미 여러분!

 

  저는 어제 어느 인물에게 생각지도 않은 모욕을 당했습니다.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어질 정도였습니다. 결국 그 인물을 저는 단톡방에서 내보내야 했습니다. 그것은 저에 대한 모욕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 히도츠바시아카데미의 취지를 해치는 것이기에 부득이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맹목적 친일을 하기 위해 그것은 종일(從日)이라고 해야 할 것-히도츠바시 아카데미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일본을 바로 이해하고 그를 통해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까? 아울러 우리가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얻고자 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인물은 우리를 맹목적 친일세력 내지 종일 세력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평소에 하는 언행을 알고 있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표현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식민지지배를 합리화하고 문재인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일본에 유리한 발언을 서슴치 않았던 자를 히도츠바시 아카데미에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한 점 양해 바랍니다.

  아울러 그 인물이 제게 걸어온 공격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합니다. 그대로 넘어가도 상관없으나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하기에 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좀 더 제대로 된 인식을 가져야 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이니 양해 바랍니다.

1. 일본에 대한 비판을 과거 양반가문의 후예에 대한 비판이라고 본점

(김대호 주장) 일본에 대한 나의 비판은 옛날 양반 가문의 착취에 대한 공격과 같다.

  3가지 공격 중 가장 터무니없는 공격입니다. 역사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민족의식도 결여된  한 마디로 난 쪽빠리 편이야라고 선언한 공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우리 내부에서의 권력에 의한 착취가 동일한 것이라고 여겨지시나요? 그리고 그것을 연결시켜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적합한 것인가요? 그가 얼마나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싶으면 이런 터무니 없는 비유를 들이대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늘 일본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는 발언을 일삼아 나를 놀라게 했지만 설마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노릇입니다

  양반의 횡포를 우리는 합리화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들도 비난받아야 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책에는 그들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비난을 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지배계급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에 대하여 지배세력에 대하여 끊임없는 견제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해 왔고 이는 우리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촛불혁명은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 87민주화운동 419민주혁명의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는 오늘도 과거의 잘못을 막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양반계급의 횡포는 그 후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우선 양반의 후손이 지배계급이 아닌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격동의 근대사를 통해 엄청난 신분이동을 경험하였고 그로 인해 양반의 후예가 양반이 아닌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오늘날 양반이란 존재는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양반이라는 이름으로 정죄해야 할 대상이 없습니다. 만일 오늘날까지 양반이 계급적인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들을 양반이라는 이름으로 정죄하고 사과를 요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을 양반이라는 이름으로 정죄하여 사죄를 요구하지는 않고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만일 개별적인 관계에서 과거 양반에게 피해를 받았고 그 후손이 오늘날 누구인지 확실히 안다면? 그렇다면 저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일세력의 후예에게 도덕적 비난을 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만일 내 조상이 누군가의 조상에 의해 역모죄로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는데 그의 후손을 만나게 된다면 그에게 도덕적인 비난을 가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지만 이것은 현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엄연히 민족으로 국가로서 우리 앞에 존재합니다. 지금도 그들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양반계급이 도산하여 사라진 기업이라면 일본은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사죄를 원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상대는 과거의 죄를 뉘우치지지도 않았고 반성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우리 덕에 네가 잘 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 문제가 있을까요?

  일본이 사죄했다고요? 사죄란 말보다 그에 따른 행동이 보여질 때 그 진실성을 갖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지금도 과거를 부정하는 언행을 일삼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한 것을 후세에게 가르치지도 않고 있으며 야스쿠니신사에 가서 전범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아베신조는 사과하라는 자기 나라 의원의 말에도 끝내 사과를 거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강제병합을 원만히 이루어졌다고 하였으며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습니다. 이것이 사죄한 자의 태도입니까?

  그걸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경제보복을 단행했습니다. 우리의 밥줄을 끊으려고 한 것이죠. 이것은 그들은 현재에도 우리를 지배하고 공격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었고 아울러 그들의 사과가 전혀 형식적인 립서비스임을 명백히 드러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을 비난하고 과거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 어째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까? 역사를 왜곡하고 자기합리화를 끊임없이 하는 것에 우리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까? 그것에 과거에 대한 단순한 집착입니까? 그것을 과거에 연연한다고 하는 주장은 역사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란 그저 흘러간 과거이니 잊으라는 말 아닙니까? 더구나 상대가 그 흘러간 역사를 빌미로 우리에게 보복을 가하는데 말입니다. 피해자가 살아있고 그들이 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원하는 지금 말입니다.

  저는 30년간 친일파로 살아왔습니다. 일본에 대한 증오는 원래 없었습니다. 한일관계의 개선에 제 인생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증오에 의해 감정에 의해 일본을 비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보인 무책임함 자기합리화 그로 인해 보복 등이 저를 분노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까?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다? 그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일본 아마존에 들어가서 반일이라고 입력해 보십시오. 반일을 빙자한 혐한서적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보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아울러 식민지지배를 합리화 나아가 미화하는 책들이 수도 없이 출판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교보문고에서 반일이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겨우 3,4권 정도가 나오더군요. 한국어 책은. 하지만 일본어로 된 책은 역시 많이 검색되었습니다. 물론 마찬가지로 반일을 빙자한 혐한서적입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을 제대로 비판하는 서적이 과연 얼마나 출판 내지 판매되고 있을까요? 전 거의 없다고 확신합니다.

  가해자 일본이야 모든 것을 덮고 미래로 가자고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그러한 도피에 동조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일로 인해 한일관계를 망쳐버리고자 구체적인 행동을 했나요? 아닙니다. 분명히 분리하여 왔습니다. 700만이 넘는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외국방문객 2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가는 외국여행객의 1위이고요. 경제협력 안 했습니까? 이번에 문제가 된 3가지 전략물자를 일본에서 대부분 수입한 것은 그들에 대한 신뢰의 증표 아닌가요?

  오히려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만들어 한일관계를 망치고자 한 것이 일본 아닙니까? 예전에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사태가 일어나도 우리는 그것으로 상대에게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규탄데모나 시위를 하는 정도였죠. 물론 일본측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일 관계는 계속 미래를 위해 나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베와 그의 정부는 이러한 룰을 깨버렸습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명분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독일이 그리고 유대인이 그렇듯이 말이죠. 그들이 왜 제2차 대전의 전범과 홀로코스트에 대하여 지금도 엄격한 자세를 취합니까? 그들이 과거에나 연연하는 바보로 보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확실한 역사의식을 갖고 있죠. 알베르 까뮈의 말처럼 오늘의 범죄자를 용서하는 것은 내일의 범죄자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역사에 기초한 가장 실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의 위협 이것이 제거되는 것만큼 실리적인 것이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식민지지배를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만큼 실리적인 목표가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요? 저도 이번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일본이 행한 과거의 침략 모두가 우연이 아니라는 불안과 공포를 느낌니다. 이웃과의 신뢰를 깨뜨리고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그야말로 눈 앞의 이익이죠-를 챙기는 그들의 행동에 다시금 역사의 망령이 되살아난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합니다. 일본과의 관계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고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엄연한 현재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담담하게 이야기할 추억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풀어야 할 숙제인 것입니다. 그것을 가해자인 일본의 입장에서 ぎたことはにながして(지나간 일은 흘려 보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것입니다. 용서는 가해자의 몫이 아니라 피해자의 몫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며 일본은 용서에 합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음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혼동했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

(김대호 주장) 일본과 독일은 다른 상황에 있었는데 같은 내용으로 비판하는 것은 잘못

  제가 최근에 출판한 일본은 왜 이상한 나라가 되었는가를 읽어 보신 분이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주장인지 알 것입니다. 물론 저는 그에게도 한 권 선물했습니다. 아마 읽어보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일 앞 부분에 독일과 일본의 비교가 조목조목 적혀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책을 집필하고 나서 출판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그 부분입니다. 일본과 독일은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기계적 비교는 곤란하다 고 하는 내용인데 이것이 자칫 일본의 잘못을 합리화시키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원래 제목은 일본만 나쁘다고 하는 우리 제정신인가?‘ 라는 조금 과격한 것이었는데 일본은 정말 악한 나라인가?‘라고 바꿔야 했습니다. 솔직히 겁이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은 독일과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릅니다.

1) 일본은 식민지책임과 전쟁책임 독일은 전쟁책임과 홀로코스트 독일은 책임이 비교적 명확한데 비해 일본은 너무나 크고 막연합니다. 식민지책임은 현재 세계 열강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이 만든 국제법이 그렇게 되어 있고 일본은 식민지책임에 눈을 감을 수 있는 명분을 이러한 사실에서 찾고 있습니다.

2) 일본은 오랜 내전에서 화합을 강조하여 전쟁을 매듭지었다. 하지만 유럽은 국제전쟁을 빈번히 치루면서 패자에게 책임을 묻는 룰이 성립되어 있었습니다.

3) 일본에는 명백한 전범을 가려내기 어렵지만 독일은 나치스당과 히틀러라는 명백한 전범세력이 존재하였기에 책임을 묻기가 쉬웠습니다.

4) 일본에게 피해를 당한 국가들은 약소국이 많지만 독일에게 피해를 본 나라들은 대부분 강대국이고 따라서 사죄를 하지 않고는 독일의 존립도 위험했습니다.

이외에도 많지만 핵심적으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일본이 잘못을 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이러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의 차이를 무시하면 독일인=선인, 일본인=악인 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독일인은 결코 선인이 아닙니다. 선인이라면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600만이나 학살하지는 않았겠지요.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의 열강들은 누구도 식민지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죠. 이러한 사실은 독일인에게는 반성과 사죄를 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고 일본에게는 그것이 적었거나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행동은 일본이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를 통해 유럽의 신뢰를 얻었고 그것은 독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유럽의 맹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독일이 얻는 이익은 막대할 것입니다. 또한 주변국가들 역시 보다 안심하고 살아갈 근거를 얻었을 것입니다.

  일본이 만일 독일처럼 처신을 했다면 아마 우리 모두가 오늘날보다 나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불신도 또 우리에 대한 일본의 분노도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은 아시아 각국에 대한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동아시아공동체도 가능하였을지 모릅니다. 참으로 아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일본은 실리적인 것 같지만 실은 명분에 치우쳐 처신했다고 생각됩니다. 사죄와 반성이 결코 국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자신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했다면 아마 엄청난 이익을 얻었을 텐데 언제까지고 명분만을 쫓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뭐가 어때서라는 식의.

  법정에서도 쾌씸죄라는 것이 있듯이 국제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피고인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하고 있기에라는 문구를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그 뒤에는 형을 감면해 준다는 내용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사죄와 반성은 매우 실리적인 행동임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하지 않아 일본은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10억엔이라는 거금 대신에 정말로 잘못했습니다라는 아베신조의 사죄가 훨씬 큰 힘이 되었을텐데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우리는 다가갈 수 없는관계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3. 시대가 바뀌었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

(김대호 주장) 시대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

  애매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이라 반론할 수가 없는 주장입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바뀌었다는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예전 일을 왜 꺼내냐고 한다면 1번과 같은 반역사주의 내지 역사의식의 결여가 될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맞는 말이죠..그러니까 일본의 과오에 눈을 감아라 이겁니까? 골수 친일파 내지 종일파다운 생각이네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P.S, 그 후 일본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 아들을 죽이고 딸을 성노리개 로 만든 자가 돈 몇 푼 쥐어주고 사과도 사죄도 없이 도리어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세월이 지난 뒤에 용서가 되겠습니까?라 고. 그들을 말을 아꼈습니다. 여러분은 가능합니

? 엎드려 머리 숙여 빌어도 용서가 될까 말까인데 저라면 100년이 지나도 용서 못합니 다. 제가 옹졸한 것인지 그런 태도를 보인 자가 후안무치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카톡에 올린 내용이 아니라 새로 추가한 것입니다)

 

부가질문 일본의 반인륜적인 행위는 문제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한 것은 문제가 아니 라는 주장.

 

  이 인물의 생각이 축약되어 있는 공격이죠. 남의 나라에 처들어가 일시적으로 그들을 죽이고 억압한 것이 죄인데 하물며 수십년 또는 수 백년간 지배하고 억압한 것이 죄가 아니라면 무엇이 죄란 말인가요? 상식도 양심도 없는 공격입니다.

  미국의 독립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당시 미국의 중심은 앵글로 색슨 즉 영국계였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영국은 하나의 민족이 세운 나라인 셈이죠. 미국인들은 영국의 왕을 그들의 왕으로 여겼고 영국의 법을 존중했습니다. 독립을 처음부터 꿈꾼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독립을 하게 된 것은 식민지지배가 아무리 좋아도 억압과 착취를 동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 역사 어디에 자진해서 식민지지배를 원하고 그것을 기뻐한 민족과 국가가 있을까요? 1997년 홍콩이 반환되었을 때 홍콩의 시민들은 불안에 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의 태도에 불안을 느낀 것이지 영국에서의 독립을 거부한 것은 아닙니다. 홍콩처럼 식민지지배의 긍정적인 효과를 상당히 누린 경우도 그렇다면 다른 곳이야 어떻겠습니까?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날 사람들은 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을까요?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춘다. ...”라는 광복절 노래는 이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종일주의자말처럼 식민지 시대가 좋았다면 슬퍼하고 통곡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그런 모습은 친일부역자들 외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군대가지 않게 돼서 기뻐했다라고 하더군요.얼마나 일본을 합리화시켜주고 싶으면 이런 말을 하나 싶더군요. 우리나라가 정부수립을 해서 이제 61년이 지났고 징병제도는 꾸준히 유지되었지만 징병제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반감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군대 가기 싫어서라면 왜 해방후 징병제도가 별 문제 없이 유지되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식민지지배가 나쁜 것은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도 당연한 것입니다. 남에 나라를 지배하는 자들이 설마 그 나라 국민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다못해 회사가 회사를 합병해도 합병당한 회사는 갖가지 방법으로 유린되고 직원들은 칼바람을 맞는데 국가가 국가를 합병할 때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새삼 반인륜적인 행동을 골라내라니요. 골수친일분자답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많았음을 이번 사태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다행이지요. 전쟁나면 등 뒤에서 칼 꽂을 자들을 미리 찾아냈으니. (알곡과 가라지를 고를 기회였음)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납치해서 노예처럼 부려먹었다고 합시다. 하지만 밥은 먹여 줬고 잡은 재워주고 부족하나마 옷은 입혀 주었습니다. 그게 감사할 노릇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부려먹을 수가 없는데.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준다고 사장에게 감사해야 하나요? 당연 것인데 왜?. 월급을 안 주면 누가 일을 합니까? 명나라가 조선을 도운 것? 당연하죠. 조선이 무너지면 자기 나라 국토에서 전쟁을 하게 되고 그러면 훨씬 더 힘들고 손해 보는 싸움인데. 조선에서 하면 조선병사를 동원해 조선물자를 가지고 전쟁이 가능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합니다. 유대인이 왜 대단한 민족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한 손에는 구약성경(토라) 한 손에는 탈무드를 들고 살아갑니다. 둘 다 역사를 통해 깨우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는 통곡의 벽에서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통곡을 하는 유대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세력을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1972년 뮨헨올림픽 때 테러를 당해 이스라엘선수들이 살해되자 그 테러를 주도한 자들을 모두 찾아내 죽여 버렸습니다. 유대인의 위대함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에게 그들은 지금도 감시의 눈빛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는 자들을 용서하고 그냥 잊으라고요?..일본의 죄를 묻는 것이 반일종족주의라면 유대인은 반독종족주의라도 됩니까? 만일 그런 식으로 유대인들이 행동했다면 그들은 지금도 세계를 떠도는 신세였을 것입니다. 왜 유대인은 그래도 되고 우리는 안 된다고 합니까?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당했을 때 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세계사의 보편적인 법칙이지 결코 우리만의 모습은 아닌데 반일종족주의란 말이 어디서 나옵니까? 그것이야말로 자학사관이 아닐까요?

  우리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 그에 따른 성실한 모습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은 우리가 관대히 대할 수 없는 상대임을 이번에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대화의 창구는 열어놓았고 또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노력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화가 전면 항복이라면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으로서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부디 그런 불행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