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복(9) 황혼이혼을 부르는 진짜 이유
마음의 행복(9) 황혼이혼을 부르는 진짜 이유
목차
1. 어쩌다 만난 사람보다 매일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가 즐거운 이유
2. 티브이를 매개로 해야 대화가 되는 우리들의 가족
3. 황혼이혼의 진짜 이유는 소유중심의 삶으로 인한 가족관계의 형식화
4.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소유지향의 삶과의 작별
1. 어쩌다 만난 사람보다 매일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가 즐거운 이유
"하루에 한 번 만나는 사람과는 할 이야기가 넘쳐도 몇 년 만에 만난 사람과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은 수긍할 것이다..언 듯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매일 만나니 뭔 할 이야기가 있겠는가? 몇 년 만에 만났으니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많아서 할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아야 하지 않을까?....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대화란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을 때 훨씬 수월해진다. 상대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고 요즘 무슨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으며 또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를 알고 있으면 그것을 끄집어 내이야기를 전개하면 되기 때문이다...또 상대와 나의 공통관심사를 알고 있다면 더욱 쉬워진다...즉 상대와 나의 접점이 많을 수록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쉽고 따라서 그런 상대와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아질 것이다...
"지난 번 그 일 어떻게 되었어? 잘 풀렸어?..."
"이런이런 이벤트가 있는데 가볼래?.."
"나 걔랑 헤어지기로 했어..니 말대로 하기로 했어.."
식의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만난 사람과는 접점을 찾기 어렵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모르니..괜히 잘못 이야기를 꺼냈다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재미없는 화제를 들이밀면 싫어할 거고..관심사 무엇인지도 모르고...최근의 상황을 모르니 어떤 고민이 있는지도 모르고..도대체 어디서 대화의 단서를 잡을지 알 길이 없다..게다가 만약 서로 부딪히게라도 되면 그걸로 둘 사이가 완전히 끝장이 날 수도 있다...그러니 자연스럽게 대화는 겉돌게 마련이고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얼른 끝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진다...(물론 몇 십년에 만났어도 어제 만난 것처럼 대화의 물고가 터지는 관계도 있다)
2. 티브이를 매개로 해야 대화가 되는 우리들의 가족
우리나라 가정에 가족 간의 관계가 어쩌면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모두가 모여도 대화대신에 티브이에 매달린다. 누군가가 말했다.."부모의 얼굴 보다 연예인 얼굴을 더 오래 쳐다보고 사는 세상이 왔다"..그들은 함께 앉아 있지만 그들 상호간의 대화나 교류 대신 끊임없이 티브이와 교류하고 대화한다.. 어쩌다 나누는 대화도 연예인이나 티브이드라마의 내용에 관한 것이 되고 마니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없다...그런 식으로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마치 몇 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처럼 서로간의 접점을 상실해 간다..
그러다가 어떤 문제에 부딪혀 대화를 시도해 볼 때 비로소 그들 간에 존재하는 공간의 실체가 드러난다..접점을 잃은 대화는 겉돌거나 대립으로 치달리기 마련이다..서로에게 그저 놀랄 뿐이다..대화자체가 불가능해 진다...서로에게 상처를 받는다..그것이 쌓여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그러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남편이 퇴직을 하게 되어 둘 만의 시간이 늘어났다.그러나 둘의 대화는 접점을 갖지 못하고 만다.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대화...곁에 있어도 사실은 곁에 없었던 것과 같았던 세월들이 둘 사이를 가로 막는다...그것이 두 사람에게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티브이의 죄일까?...물론 겉보기에는 그렇다...아니 실제로도 그렇다..티브이로 인한 가족의 대화단절 관계단절은 생각 보다 매우 클 것이다...식사조차도 티브이를 켜 놓고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시선을 외면한 대화가 얼마나 진실한 내용을 담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이전에 왜 우리는 티브이를 매개로 하지 않으면 함께 앉아 있을 수 없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일이다....티브이는 어떻게 우리 가족들의 삶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었는가?...그것은 바로 간편성이라는 점이 아닐까? 별다른 노력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어렵지도 않은 편리함 바로 그것이 티브이를 가정의 지배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티브이의 편리성은 가정문화의 해체에 따라 중요성을 더해갔다. 소유 중심의 삶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가족은 과거와 같은 여유를 잃어 갔다...아버지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아이들은 학원이나 과외에 쫓겨 지쳐있다...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바라볼 시간이 점점 줄게 되었다..그런 가운데 티브이는 일종의 구세주가 된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티브이를 가족의 매개체로 섬기게 되었다. 가족의 얼굴은 매일 바라보지 않지만 연예인의 얼굴은 매일 바라보니 친근감이 더 커진다..그들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 등으로 조사하고 있으니 가족보다 더 잘 알게 된다..그래서 그들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으니 하루라도 안 보면 허전하게 된다..가족보다 더 절실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이젠 티브이를 치워버린다 해도 가족과 대화하거나 교류할 자신마저 없다..그러니 더욱 티브이에 매달린다..거의 신앙에 가깝게 된다...
3. 황혼이혼의 진짜 이유는 소유중심의 삶으로 인한 가족관계의 형식화
그런 가운데 아이들이 자립하고 아빠가 정년을 맞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부부간의 오붓한 노년..이라는 환상은 처음부터 완전히 깨진다..둘 사이에는 오랜 세월의 간격이 존재한다..그들은 같이 있었지만 서로를 바로 보지도 서로와 대화하지도 않았다...티브이가 매개였는데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니 매개체로서의 티브이가 한계를 드러낸다
세계에서 황혼이혼이니 정년이혼이니 하는 것이 이토록 사회문제가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 아닐까 싶다...일본은 어찌 보면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선배일지도 모른다..우리와 마찬가지로 정년 후에 함께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서 생기는 갈등이 원인이다.
물론 그 갈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가장 표면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은 아내들이 남편과 달리 자유롭게 살아왔는데 남편이 집에 계속 있게 됨으로써 자신들의 자유가 제약된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 요즘 삼식이 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이는 집에서 꼬박꼬박 아내에게 세끼 식사를 얻어먹는 사람을 말한다..아내로서는 여간 그것이 귀찮은 일이 아닌 모양이다...옛날에도 그랬었겠지만 옛날 여성들은 자신들의 자유에 대한 강한 집착이 오늘날의 여성 만큼없었기에 아마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요즘 여성들은 남편이 출근할 때 “일찍 들어오세요” 대신 “웬만하면 저녁까지 먹고 와요”라고 하지 않을까?
남편들이 집에만 머물게 된다는 것도 소유 지향의 삶의 결과일 것이다..취미도 친구도 희생하고 오로지 높은 소득을 올려 가족들의 소유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 온 그들이다..여성들은 흔히 "나에겐 내 인생이 없다"라고 하지만 ' 내 인생'이 없기는 대다수의 남편들도 마찬가지이다...극히 소수의 성공한 남자들을 제외하고..
하지만 이러한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서로가 너무나 오랜 세월 서로와의 교류를 하지 않고 지내온 것에 따른 접점의 부재가 아닐까 한다... 이것은 부부간의 관계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자식들 간에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그러기에 자식들은 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점점 가족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자식들이야 그렇다 쳐도 남은 부부의 관계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물론 모든 부부가 이런 문제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일본과 우리는 조금 달라서 아직은 정도가 덜 심각하다고 생각된다..하지만 그냥 방치하고 있기에는 사태가 제법 심각하다...비록 황혼이혼을 하지는 않더라도 갈등을 안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부부들도 많을 것이다..
4.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소유지향의 삶과의 작별
소유지향적인 삶이 가져온 가족문화의 해체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보다 큰 집 보다 큰 차 보다 큰 냉장고와 세탁기 ...등등 많은 소유를 위하여 가족이라는 따듯한 보금자리를 합숙소로 만들어 버린 개발시대 성장시대의 폐해를 우리는 정면으로 맞이하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이런 것을 가부장제의 문제라느니 한국의 전통문화의 문제라느니 하면서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아마도 계속 이런 문제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가 되는 집단이 아니겠는가?...같이 산다고 같이 잔다고 해서 가족이 가족으로서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집안 가득히 소유물이 가득하다고 해서 그 가족이 온전한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다...마음의 공백이 있으면 옆에 누워있어도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만다...이제부터라도 더 갖자 더 누리자 는 생각 대신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는 가족이 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