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음의 행복(5) 다시 사랑을 생각한다.

닥터 양 2020. 4. 6. 01:58

마음의 행복(5) 다시 사랑을 생각한다.

 

목차

1. 사랑은 퍼주는 것인가?

(1) 잘 해 주는 것이 사랑의 본질일까?

(2) 퍼주기로 전락한 사랑

(3) 퍼주기가 가져온 폐해

2. 장가가기 위해 공부하는 나라 시집가기 위해 성형하는 나라

(1) 인생의 목표가 몸매 좋은 마누라인가?

(2) 공부열심히 하면 연봉 높은 남편을 만날 수 있을까?

(3) 가장 좋은 취업준비는 성형수술?

(4) 장기적 성매매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결혼 카사노바와 창녀의 만남

3. 다시 사랑을 생각한다.

 

1. 사랑은 퍼주는 것인가?

(1) 잘 해 주는 것이 사랑의 본질일까?

  ‘시크린 가든이라는 드라마에서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위하여 일본행전세기를 마련하여 제공한다. 급하게 일본에 가서 오디션을 봐야 하지만 비행기좌석은 구할 수 없고 시간도 거의 없다.(이런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설령 좌석을 남에게 사더라도 시간을 맞출 수 있는 비행기 편이 없다. 그래서 남주인공은 전세기를 거액을 들여 빌려 준다. 눈물겨운 장면인가? 전세기에 얼마나 드는지는 모르지만 서민들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거액이 들 것이니 그것을 사랑을 위해 쓴 남자 주인공의 순애보에 모두가 감동을 받아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것은 순애보보다 재력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애절한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도 그에게 재력이 없다면 무슨 수로 전세기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집이라도 팔아서?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하지만 그 정도로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웃돈을 주고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출이나 주택처분을 기다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재벌회장이 무척이나 아끼는 여비서를 거느리고 있다고 치자. 그는 그 여비서의 미모가 너무 좋아 그녀와 화끈한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것을 위해 회장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돈이 넘치는 데 무엇인들 못하랴. 비행기전세쯤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회장의 성의에 마음을 빼앗겨 회장을 사랑하게 되었고 회장의 은밀한 바람은 이루어졌다.

  삼류 로맨스 소설의 끝은 대개 비극이다. 회장은 그녀와 평생을 두고 사랑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녀는 회장의 정부가 되어 잠깐 행복했지만 결국은 위자료 몇 푼에 버림 받았다. 물론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회장과 불륜을 한 여자도 잘못이지만.

  그런데 그녀는 뱃속에 회장의 자식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하여 회장을 위협하여 거액의 금품을 요구한다. 회장은 그의 심복을 시켜 그녀를 살해하려고 하나 그녀는 운 좋게 도망쳐 숨어살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모든 것이 잊혀 질 무렵 회장 앞에는 한 사나이가 나타난다. 바로 여비서가 낳은 아들이다. 그는 복수를 위해 회장에게 충성을 다하여 마음을 얻고 요직에 앉는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사나이가 아니라 여인이라도 좋다. 막장이 극에 달하면 그녀는 아버지를 유혹하여 손안에 넣을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마 이런 드라마를 못 만들겠지만 서양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이 이야기에서 또 한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여비서는 원래 어떤 가난한 남자와 사귀는 사이였다. 그런데 회장의 물질공세에 넘어간 여비서는 남자와 결별한다. 그는 비행기전세는커녕 영화전세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가난했다. 하지만 그는 능력이 있기에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버린 그녀에게 남자는 복수를 다짐한다. 그는 회장에게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회장의 친아들 또는 친 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사랑의 크기가 반지에 박힌 다이아먼드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나에게 쓰는 돈과 시간 정성이 사랑의 크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소중히 여기니 그렇게 쓰는 거 아닌가?” 라고. 그래서 상대에게 그런 것을 요구한다. 남자들의 경우 사랑한다면 해 줘야 하지 않나?”라고 하며 성관계를 강요(?)하기도 한다. 뭔가 많이 해줘야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의 막장 드라마에서는 그것이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매일 일에 좇기는 여자 친구와 실업자여서 바쁘지 않은 여자 친구 중 누가 더 자주 만나줄 수 있을까? 물론 마음이 없다면 둘 다 안 만나 주겠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실업자인 여자 친구가 훨씬 잘 만나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맞벌이 엄마가 전업주부 엄마보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더 약한 것이 아니 듯이 말이다.

  백화점에 가면 점원들이 매우 친절하지만 재래시장에 가면 덜 친절하다. 그럼 백화점에는 친절한 성품의 사람들만 모이고 재래시장은 다른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백화점에서는 친절하지 않은 점원이 살아남기가 어렵고 재래시장은 덜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백화점 점원의 친절은 당신에 대한 애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식일 뿐인 것 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친절하면 더 사랑한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 친절한 것은 성격이나 처지 등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성격이 온화하거나 친절하게 해야 할 처지에 있거나 그럴 경우에는 사랑이 없거나 약해도 친절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격이 소심하거나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을 때는 불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다.

  성관계 문제도 비슷하다. 좀 극단적인 이야기를 통해 이해를 돕고자 한다. 신앙에 투철한 삶을 사는 여성이 남자친구의 성적관계에 대한 요구를 거부한다면 그녀가 사랑이 약한 것일까? 반면 이른바 노는 여자로 살아 온 어느 여성이 남자의 요구에 흔쾌히 응한다고 하여 그녀의 사랑이 더 강한 것인가? 그렇게 믿을 바보는 없을 것이다. 이제 조금 더 확실히 이해가 되는가?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 결론을 내리면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면 잘해 주겠지만 잘 해준다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해주는 정도가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바람둥이 회장은 그의 재력을 이용하여 가난한 남자친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지만 그것은 단지 하룻밤의 화끈한 성관계가 목적이었지 사랑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즉 사랑과 잘해주는 것 사이에 직접관계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2) 퍼주기로 전락한 사랑

  그런데 어느덧 사랑은 퍼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 그런 경향이 너무나 두드러진다. 가난한 여자가 부유한 남자를 만나 서민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퍼주기를 경험하면서 행복해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드라마는 넘치고 있다. 아니 그런 드라마가 아닌 것을 찾기가 어렵다. 회장님은 드라마의 숨어있는 주인공이다. 회장님의 아들도 그렇고.

  과거의 왕자가 하던 역할을 오늘날에는 재벌 아들이 혹은 손자가 드물게는 재벌 자신이 한다. 예전엔 재벌 자신이 등장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지만 요즈음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아들이나 손자를 내보내고 있다. 첩을 당당히 두고 살던 과거와 달라진 세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예전에 40대 사장과 20대여비서의 불륜을 그린 드라마가 방영되자 여론의 비난이 들끓었다. 그에 대하여 터부에 도전한 드라마라는 평이 있었는데 기자가 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그런 드라마는 지금의 재벌드라마만큼 많았다. 예전 여자들은 아버지나 삼촌뻘 되는 남자들에게도 사랑을 잘 느낀 모양이다. 사랑도 세상 풍토를 따라 움직이는가보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면이 남아 있다. 돈만 많으며 나이가 많아도 좋다는 여성들은 지금도 제법 있음을 필자는 확인했기 때문이다.

  모두에 예를 든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도 결국은 재벌 왕자님에게 구원받은 신데렐라의 이야기로 끝난다. 언 듯 가난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꿈을 키우는 여자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그녀 역시 왕자님에 의해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런 것이 없이 성공한다면 보는 여자들이 나도 저렇게 노력해야 하나 라는 스트레스를 느끼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암 왕자님은 영원한 여성들의 영웅이니까. 드라마 시청자의 대다수가 여성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럴 수 밖 에 없다.

  그런데 그런 재벌드라마가 왜 문제가 되냐고? 그냥 드라마니까 보고 즐기면 된다고? 글쎄 그럴까? 요즘 서민들이 재벌 흉내를 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 혼자일까? 고급호텔에서 뽀대나는 결혼식을 하고 호화예물을 주고받고 여자를 여왕님으로 모셔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 왠지 재벌 흉내 같다. 프로포즈를 꼭 해야 하고 그것을 할 때 무릎을 꿇어야 하는 남자들의 모습이 드라마와 겹쳐 보이는 것은 착시현상일까?

  이러한 것들이 결국 사랑을 퍼주기로 만들게 되는 원인이다.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퍼주기를 사랑의 증표로 보고 오늘도 열심히 퍼주기를 실시한다. 남녀사이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는다. 많이 퍼줄수록 좋은 부모라고 하는 착각을 가진 부모들이 대한민국에는 너무 많은 것이다.

  예전에 보험회사서 근무할 때 그런 점을 이용하여 영업을 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생명보험을 가입하도록 권하면서 당신이 죽는다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될까요?” 라고 하여 일단 협박(?)을 가한 후 필요한 금액을 산정하고 거기에 맞는 보험료를 지불케 한다. 그런데 그 필요한 금액에는 아내의 남은 생의 생활비 아들, 딸들의 학비 결혼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엄청난 금액이 되고 따라서 보험료 역시 고액이 되고 그에 따른 설계사수당도 덩달아 커진다.

  그런데 왜 아내의 남은 삶의 생활비와 아들딸의 결혼비용을 죽은 사람이 다 책임져야 하는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죽어서도 가족부양의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더구나 아이들의 결혼비용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살아있으면 몰라도 그걸 죽어서도 지불하라니? 전형적인 퍼주기 아닌가? 결혼 정도는 자신들이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인 정상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아내의 경우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벗어나 자립할 수 있을 기간 정도의 보장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 이상은 퍼주기에 불과하다.

(3) 퍼주기가 가져온 폐해

  이러한 퍼주기풍토가 세상을 왜곡하고 있다. 삼포세대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삼포세대의 근본적인 배경은 퍼주기이다. 분수에도 맞지 않은 혼수나 예물 그리고 예단 주택 수입 등에 대한 요구가 삼포세대의 가장 큰 이유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모든 것을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제공받던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하려니 그런 삶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미 사랑은 퍼주기가 아님을 필자는 간단하게나마 증명하였다. 퍼주기는 사랑 없이도 되고 사랑이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퍼주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퍼주기를 사랑이라고 착각하여 더 많이 더 빨리 퍼주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퍼주기 식 사랑은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퍼주기 식 사랑으로 인해 사람들은 물신주의의 노예가 된다. 그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사랑은 이미 관심 밖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퍼주기에 실패하면 그는 사랑의 실패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 자체보다 퍼주기가 모든 사랑의 중심을 차지하고 말았다. 주객전도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많이 퍼주라. 그것이 사랑이다라고 하는 말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2. 장가가기 위해 공부하는 나라 시집가기 위해 성형하는 나라

(1) 인생의 목표가 몸매 좋은 마누라인가?

  “십 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의 몸매가 바뀐다 어느 공공도서관에 있는 낙서이다. 마누라 라 고 되어 있으니 대상은 남학생들이겠지. 어찌 보면 귀엽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하지만 솔직히 분노가 느껴진다.

  이 낙서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공부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도구라는 일반적인 뜻이 담겨 있다. 할 수 없지. 조선 이래 이 나라 사람들의 공부가 입신출세임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니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 뿐이고 학술적인 노벨상은 이웃 일본이 20명 넘게 배출되는 가운데 한 명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필자를 분노케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선 마누라를 얻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라는 사실이다. 결혼을 위해 하는 공부? 무슨 신부수업도 아니고. 차라리 "십분만 더 공부하면 연봉이 달라 진다라 고 하면 화는 안 날 거 같다. 인생의 목표가 장가가는 것이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노땅의 마음일까?

  하지만 더 화나게 만드는 것은 그 장가의 대상이 될 여자에 있어서 가장 큰 매력은 몸매라는 사실이다. 능력도 심성도 아니고 몸매란다. 이 시대 여자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몸매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필자를 서글프게 만든다.

  결국 이 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공부를 더 하면 성적이 오른다. 성적이 오르면 좀 더 좋은 대학에 간다. 좀 더 좋은 대학에 가면 좀 더 좋은 곳에 취업을 할 수 있다. 좀 더 좋은 곳에 취업을 하면 좀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좀 더 좋은 연봉을 받으면 좀 더 좋은 몸매의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낙서지만 사회풍토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목적이 남자들의 경우 몸매 좋은 여자랑 결혼하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몸매 좋은 여자는 공부 잘하면 주어지는 상 같은 존재라는 소리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높은 연봉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몸매 좋은 여자라는 소리가 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른바 집창촌이라는 곳에 가면 쇼윈도에 여자들이 반라의 모습으로 앉아서 손님들의 지명을 기다리고 있다. 남자들은 돈을 들고 그곳에 가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선택하고 그래서 그가 돈을 지불하면 거래가 성립되어 여자는 성관계에 응해준다. 돈과 몸매의 만남이 아닌가? 얼굴이라면 굳이 반라의 몸으로 앉아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결혼은 이렇게 돈과 몸매의 만남 즉 성매매의 양성화로 전락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르다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장기 전속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 정도일지 모른다. 남자는 평생 여자에게 돈을 주고 여자는 평생 몸매를 가지고 남자를 즐겁게 하고 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 이익이고 어느 쪽이 손해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오늘도 몸매와 돈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일 것이다.

  삼포시대라는 말을 대부분 알 것이다. 연애 결혼 출산 의 포기를 뜻하는 삼포 그 핵심에는 돈과 몸매가 있다. 남자는 돈이 없어 여자는 몸매가 안 좋아 포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가 훨씬 심하다. 몸매가 나쁘더라도 조건을 포기하면 여자는 포기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쇼윈도에 앉아 있지는 않아도 성매매를 하는 여성은 제법 있고 그 중에는 몸매가 그리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녀들은 다소 저렴한(?) 가격에도 응해주긴 해도 어쨌든 취업(?)이 가능하다. 오죽하면 60대 한물 아니 두 물은 갔을 할머니들이 파고다공원을 어슬렁거리며 현직(?)을 고수하시는 것일까 생각해 보라. 하지만 정해진 돈을 제공못하는 남자들은 얼씬도 못할 것이다. 괜히 돈 없이 기웃거리다가는 매나 맞고 쫓겨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 공부열심히 하면 연봉 높은 남편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데 반대의 문구도 있기는 하다. “십분 더 공부하면 남편의 연봉이 바뀐다라 고. 패러디인지 대항의식으로 만든 건지 모르지만 비슷하면서 다른 문구이다. 물론 남편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 번엔 여학생들을 위한 잠언(?)이겠지?

  문제는 몸매가 연봉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장난삼아인지 남편의 얼굴이 바뀐다라는 낙서도 있지만 그다지 일반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어린 소녀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돈 많고 못생긴 남자하고 돈 없고 잘 생긴 남자 누가 더 좋니?” 하자 그 아이들은 이런 대답을 했다. 돈 많고 못생긴 남자랑 결혼해서 그 남자를 돈으로 성형수술시키죠 라 고. 어린 소녀조차 여자들인지라 그녀들의 돈 사랑(돈 사랑= 미친 사랑?)은 변함없이 크다.

  여학생들의 공부목표는 남편의 고수익이라 할까? 이것을 아까처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부 더 한다 그럼 성적이 오른다. 성적이 오르면 좋은 대학에 간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에 간다. 좋은 직장에 가면 좋은 남자(=고수익남자)를 만난다. ”. 과거에는 고졸여사원과 대졸엘리트 남자사원의 결합이 제법 있었지만 고졸여사원이 대졸사원과 함께 일하기 어려운 오늘날에는 여성자신이 고수익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도 그만한 실력(?)갖추어야 되게 됬다.

  여학생들이 이유야 어찌 되었든 열공(=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건 기특한데 목적이 너무 불순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녀들을 좌절시킬 장벽이 놓여 있다. 남학생버전의 낙서에는 마누라의 직업이나 마누라의 연봉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몸매인 것이다.

  ‘몸매란 외모를 상징하고 있다. S라인 V라인으로 대표되는 몸매가 이 시대의 여성에게는 성공적 결혼의 중요한 아니 필수 도구가 되었다. 여자의 외모에 대한 남자들의 극성이야 어디 오늘 뿐 이겠냐만 노출이 자유로워진 덕(?)에 바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오늘날 치마저고리에 몸을 감추던 조선시대는 물론 긴치마에 두꺼운 겉옷으로 몸매를 감추던 쬐끔(?)먼 옛날과는 다른 가치가 중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3) 가장 좋은 취업준비는 성형수술?

  하지만 몸매만으로는 완벽한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몸매는 어떻게 만들어 볼 수 있다.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하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차별화를 기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성형미인이다.

  이걸 만약 낙서로 만들면 이렇게 될 것 같다. “한 번 더 성형하면 남편의 연봉이 두 배로 뛴다라 고. 이른바 텐 프로클럽이라는 것이 있다. 외모 상위 10%의 젊은 여성들을 두고 운영하는 클럽인데 외모가 뛰어나니 팁은 엄청나게 높아지고 해야 할 의무는 적은 곳이라 그런 업계를 원하는 여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란다. (?)은 쉽고 수입은 높은 나름 신이 내린 직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모가 상위10%에 드느냐 이다.

  물론 이곳을 가기 위해 성형수술이라는 취업준비(?)가 이루어질 것은 누가 봐도 확실하다. 어차피 천연산(?)과 양식(?)을 구분하기 어렵고 어두운 조명에서 술 마시며 바라보면 웬만해선 미인으로 보일 판이니 성형이 뭐 대수겠나? 짧은 시간 동안 고객이 만족할 정도면 될 것이니 말이다.

  잠깐의 취업을 위해 하는 성형수술을 장기취업 아니 평생취업인 결혼을 위해 못하겠는가? 잘만 하면 평생 고수익을 보장받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데. 요즘은 이혼이라는 것이 흔해져 평생은 보장 못하지만 그럴 경우라도 돈 많은 남자라면 두둑한 퇴직금(재산분할)과 실업수당(위자료, 양육비 등)도 챙길 수 있으니 무능한 남자와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4) 장기 성매매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결혼 카사노바와 창녀의 만남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쇼윈도에 앉아서 선택을 기다리는 여자들과 두둑한 돈뭉치를 들고 그녀들을 찾고 있는 남자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카사노바와 창녀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합법적 성매매로 실현되고 있다. 단 그런 시장에 참가할 외모와 돈의 소유자에게만 가능한 이야기지만. 나머지는 삼포 내지 사포를 강요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들이 만나 벌이는 연애와 결혼의 향연이 어떤 모습일지는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돈을 싸들고 나타난 남자는 그의 돈의 위력을 마음껏 과시하기 바쁠 것이다. 그것을 그들은 눈물겨운 사랑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포장하여 선전하고 있다. 남자의 그러한 감동적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여자는 뜨거운 밤을 선사하고자 애쓸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도시들은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밤을 수놓게 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한 과정이 되풀이 되다 마침내 둘의 아름다운 사랑은 결실을 맺어 평생을 그렇게 살기를 고대하고 종신계약서에 서명을 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결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단계로 넘어간다. 물론 본질은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갖고 있는 마케팅 포인트를 최대한 살려 사랑의 불꽃을 피우는 기존의 방식을 장기간에 걸쳐 보장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사랑이란 퍼주기의 극대화에 불과할 것이다. 물질적 육체적 퍼주기 바로 그것이다. 애당초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아닌 이상 그것이 없이는 이어갈 수 없는 것이다. 끝임없는 퍼주기로 두 사람의 인연의 풍차를 돌려주지 않으면 멈출 수 밖 에 없는 물거품과 같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퍼주기 사랑이 일반화되니 대한민국의 남녀의 삶은 고달프기 이를 데 없어진다. 미래의 꿈과 희망을 각각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품는 대신 명문대진학과 고수익연봉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가져야 하는 삶이 그들을 어려서부터 속박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논술고사를 위한 수단이 되고 봉사도 점수를 따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심지어 넓은 세계를 접하기 위한 여행조차도 진학 스팩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배움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다.

3. 다시 사랑을 생각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와의 강변 데이트를 회고하곤 하였다. “커피 값도 없이 강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만 했지만 너무 행복했다고한 그의 회고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이 없는 남자의 자기변명쯤으로 들릴지 모른다. 왜냐하면 퍼주기를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헌신적(?)사랑보다 더 멋지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저 늙은 꼰대의 편견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