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음의 행복 (1)소유의 사랑 마음의 사랑

닥터 양 2020. 4. 4. 02:10

마음의 행복(1) 소유의 사랑 마음의 사랑

 

목차

1. 분에 넘치는 결혼식문화는 맹목적 자식사랑의 나쁜 열매

2. 세대간 연대의 과도기에 놓인 우리나라

3. 마음의 교류보다 물질로 채워진 부모자식관계

4. 미녀와 충복의 관계가 된 남녀의 사랑

5. 마음으로 사랑을 나눈 토큰 데이트의 추억

6. 욕망의 거래는 사랑이 아니라 스폰관계일 뿐!

7. 진정한 마음의 사랑은 가슴에 행복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8. 목적을 위한 만남과 만남을 위한 목적

9. 마음의 사랑만이 답이다.

 

1. 분에 넘치는 결혼식문화는 맹목적 자식사랑의 나쁜 열매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라는 어느 모 일간지의 기획기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모가 결혼식에 눈물을 흘린다고 하면 원래는 감동과 아쉬움의 눈물이어야 할 것이다. 자식을 무사히 키워 결혼을 시켰다는 감동과 자립해 부모의 품을 떠나는 자식에 대한 아쉬움...바로 그것이다..하지만 모 일간지의 기획기사가 그것을 다룬 것이 아니었다.

  기사의 내용의 핵심은 부모들 간의 체면경쟁과 허영이 부모들의 부담을 크게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예단을 얼마나 받았는지에 신경과민이 되고 결혼식에 오는 하객들의 눈이 무서워서 결혼식에 과도한 비용을 들인다느니 하는 식으로 기사는 전개 되었다..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너무 하네"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의 일이 될 때는 "나만 손해 볼 수는 없다"라고 돌변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실렸다.. 모두가 맞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소홀하게 다루어진 내용이 있다..그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의 성격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것이다..기사에서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잘못된 결혼 문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이야기는 하고 있다..그들이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해주지 않으면 그러한 호화결혼식이나 예단 등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하지만 부모들이 왜 그들 자녀에게 노후자금까지 깨면서 뒷바라지를 해 주는가 에 대한 문제의식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마치 그것은 당연한 거 인 냥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문제의 또 하나의 핵심은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들에 대한 맹목적 헌신이라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도 부모 또는 자신이 부자인 경우에는 호화결혼식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유명인의 결혼식 소식에서 종종 듣는다. 결혼을 호화롭게 하고 싶은 욕망이 외국인들에게도 없는 것이 절대 아니다..문제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을 때에도 무리하게 그렇게 하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예를 들어보자..유대인들은 만13세에 성인식을 한다고 한다..우리로 치면 돌잔치나 환갑을 하듯이 친척과 친지들을 불러 제법 성대하게 거행하는 모양이다..물론 우리의 결혼식 같은 규모는 아닐 것이다..그때 모인 하객들은 우리의 결혼부조금처럼 축하금을 낸다..그 액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제법 되는 모양이다..

  13살의 아이가 그 돈을 관리할 능력은 물론 없으니 당연히 그 돈은 부모가 관리한다. 우리 같으면 그걸 살림에 보태 쓰겠지만(아이들의 세뱃돈을 갈취(?)하는 우리부모들이니 그렇지 않을까?) 그들은 그 돈을 펀드 같은 곳에 넣어서 늘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가 20대 후반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그 돈을 자립자금으로 건네준다고 한다...10년이 넘게 불어난 돈은 젊은이에겐 상당한 거액이고 그들은 사회 첫 출발을 보다 힘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무일푼으로 시작하는 사회생활과 수억의 종자돈을 갖고 출발하는 그것과의 차이를 ..유대인의 현명함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돈이 부모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 역시 다소의 도움을 줄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친지들이 모아 준 돈이다..그것을 쓰는 방법도 대단히 현명하지만( 한나절을 위해 엄청난 돈을 쓰는 우리들의 어리석음과 비교해서)부모의 태도가 우리에 비해 속된 말로 ''한 것을 엿볼 수 있다..그들은 자식에 대하여 우리처럼 맹목적으로 헌신하지 않는 냉정함을 갖고 있다..

2. 세대간 연대의 과도기에 놓인 우리나라

  이러한 부모의 태도는 비단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부모에게도 살아야 할 인생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평균수명이 80이 넘는 선진국가의 경우 자녀를 60에 출가시킨다고 해도 20년 넘는 삶이 부모들에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몽땅 자녀에게 쏟아 붓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는다..후진국일수록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올인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점에서 과도기에 놓여 있고 그래서 더욱 큰 문제를 안게 되었다.. 후진국처럼 자녀가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이른바 '가족복지'사회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경제적 수준이 떨어지고 사회복지도 거의 정비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혈족의 단결이 굉장히 중요했고 세대 간의 연대 역시 절실한 생존 수단이었다..노인을 버리던 고려장이 없어진 것은 세대간의 연대로 생산력이 없어진 노인들을 부양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 생산력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생산력 수준이 계속 높아지게 되면 가족 친척 세대간의 연대의 필요성이 점점 희박해진다. 소득증가와 사회복지의 발전은 스스로 노후준비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세대간의 연대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게 된다. 자녀들 역시 부모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개척할 힘을 얻기 때문에 부모와의 연대를 요구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해서 부모와 자녀를 이어주던 현실적 이해관계는 해소되어 가는 것이 이른바 선진국의 현실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더 이상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과거의 부모들이 했던 것처럼 헌신적 지원을 할 것은 부모에게 요구하고 있다..좀 거친 표현을 하면 의무는 하지 않고 권리는 다 챙기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부모에게 받았던 헌신적 사랑에 대한 강한 기억으로 인해 그러한 자식들의 이기적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 이것은 의무를 지고 권리는 행사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3. 마음의 교류보다 물질로 채워진 부모자식관계

  이러한 부모의 자세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지금의 부모세대는 고도성장기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살아왔다..비록 어려서는 가난을 겪었지만 성장하면서 경제적 발전을 통한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행운을 가장 충실하게 누려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부족하나마 부모들에 대한 부양의무를 어느 정도 짊어졌고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어려서 누리지 못한 풍요한 삶을 제공하고자 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들의 자녀들에게 쏟아 부은 무분별한 애정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가난했기에 갖지 못했던 물건과 하지 못한 취미생활 그리고 좋은 교육 등을 힘껏 제공하면서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이렇게 잘 해줬으니 아빠 엄마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해줄까? ..우리 부모님들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부모인가? "라는 환상에 빠졌을 것이 불을 보듯 환하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중국으로 치면 '작은 황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어진 풍요로운 환경은 그들의 눈높이를 높였고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애쓰는 부모가 조금 심하게 말하면 도우미나 종 같은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옛말에 부자가 삼대를 가기 어렵다고 했던가?...부자로 태어나 부자로 성장한 손자들이 재산을 탕진하기 쉽다는 이야기일 것이다..그렇게 우리의 자녀들도 자라온 것은 아닐까?...

  지금의 부모들의 어린 시절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다지 줄 것이 없었다..끼니 제대로 챙겨주고 학교 제대로 보내주고 하면 일단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기에 그들의 부모들은 그 공백을 마음의 교류로 채워야 했다.. 지금과 같은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한 것은 아니다...'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 따위는 없었다...티브이나 컴퓨터도 없던 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가족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것 뿐 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티브이와 컴퓨터가 대화를 가로 막는다...물질을 쥐어주는 것으로 부모의 도리를 잘했다고 한다...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식을 닦달 거린다..그들 부모의 삶이 그렇듯이 자식들도 많은 소유=큰 행복이라는 공식을 주입받게 된다..어려웠던 어린 시절 덕에 욕망의 눈높이가 비교적 낮은 부모와는 달리 그들의 욕구수준은 하늘 높은 줄 올라간다...그리고 부모는 그것을 당연히 채워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웨딩마치를 적시는 부모의 눈물에는 바로 이러한 왜곡된 부모자식의 관계 부모의 잘못된 사랑이 가려져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자녀들은 너무나 그러한 부모의 잘못된 사랑에 익숙해 있다..스스로 종이 되어 버린 부모 그 위에 군림하는 자녀..도대체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4. 미녀와 충복의 관계가 된 남녀의 사랑

  이러한 왜곡된 관계는 비단 부모자식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간의 관계조차 그런 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왜곡된 사랑에 찌든 자녀들은 그들의 만남에서도 그러한 것을 자연스럽게 요구하게 되었다..여성들은 그들의 연인을 수행기사쯤으로 여기게 되었다..인터넷을 도배하는 글 "나는 이런 남자를 원한다"식의 글들을 조금만 읽어 보면 이 시대의 여성들이 얼마나 왜곡된 애정관을 갖고 있는지 알 것이다..그들이 누리던 부모의 사랑을 그대로 연인에게 받고 싶어하는 유아적 사고의 여성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가 여성들을 마냥 강자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그녀들 역시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우리사회를 풍미하는 성형수술 붐...외모지상주의 이것이 여성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남성들은 외친다. "나의 충성을 받을 가치가 있는 여성이 되어라"...과거에는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이른바'신부수업'이라는 것을 받곤 했다..살림살이를 위한 교육부터 자녀양육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런 교육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그들이 받을 것은 신부수업이 아니라 성형수술이 되었다..‘외모지상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좋지만 남성들에게 충복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여성들의 이기적 사고가 그것을 더 확대 강화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미녀와 충복(왕자)’의 만남이랄까?.

  이렇게 맺어진 두 사람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는 안 봐도 비디오가 아닐까?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탄 그들..더 많은 소유와 소비를 향해 그들은 달린다.." 더 사라 더 소유하라 더 즐겨라. 자신들의 수입만이 아니라 부모의 지갑도 할 수 있는 데로 이용하라”...

  이런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람들은 그래도 행운아들이다. 현실이 받쳐주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부모에게 모아둔 재산이 없다..수입도 별로 없다...자신들도 비정규직이라 여유가 없다..번듯한 남자를 얻지 못했다.. 예쁘지도 에스라인도 아니라서..이래저래 높아진 욕구를 충족할 길이 없다..남는 것은 좌절감뿐이다..

  해외에서 한국여성들의 성매매가 유명세를 타게 된지 오래다..'성매매 피해자'라는 말을 써가며 성매매 여성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그들은 피해를 당하기 위해 해외원정도 불사하고 있는가?...여자의 성을 사는 남자들을 천인공로 할 인간으로 몰아 부치면서 아직도 예전의 기억에 붙잡혀 성매매를 가련한 여성들의 불가피한 선택쯤으로 여기는 풍조가 남아 있는 한 한국은 성매매 선진국의 길을 계속 가게 될 것이다..그녀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높아진 욕구와 좌절감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5. 마음으로 사랑을 나눈 토큰 데이트의 추억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이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한 '돈 안드는 연애' 이야기를 아는가? 그들은 강둑 같은 데서 여러 시간을 함께 앉아 시간을 보냈지만 그 흔한 커피 한잔 마신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물질로서 이벤트로서 공백을 채우려고 하는 대신 마음으로 서로를 채워주었다. 그들 부부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모르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상당히 다정했던 관계였던 것 같다.. 그들은 서로를 욕망의 불덩어리로 만들지 않았다. 사랑의 불덩어리로 만들었지...

  예전에 '토큰 데이트'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토큰이 뭔지도 모르는 세대도 많은 지금...참으로 좋은 추억이라고 여겨진다면 너무 궁상맞은 것일까?...버스토큰을 내고 버스에 올라타 종점까지 가는 시간에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데이트..그것이 토큰데이트인것이다..상대의 지갑을 요구하지 않았고 에스라인의 몸매를 탐하지도 않은 마음만의 데이트였던 것이다.

  오해하지는 말라...새삼 토큰데이트를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강둑이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하지도 말라..시대가 바뀌었는데 새삼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꼰대들의 착각이니까..."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에 너무 부담 갖지 말라. 그런 말 안한 세대는 인류 역사이래 없으니까..우리 때도 꼰대들은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바로 사랑에 대한 올바른 생각인 것이다. 사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이며 마음을 저버린 사랑은 왜곡된 사랑이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고 싶다..우리는 자칫 마음을 주고받기보다 외적인 것을 주고받기에 바쁜 그런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예전에는 그런 것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6. 욕망의 거래는 사랑이 아니라 스폰관계일 뿐!

  현대사회의 남녀의 만남은 마치 창녀와 카사노바의 만남을 연상케 하고 있다...갖가지 방법으로 최대한 외적매력을 증폭시킨 여성들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물적 욕망을 채워줄 남성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하면 너무 극단적인 것일까? ..이미 짧아질 대로 짧아져 '하의 실종'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여성들의 치마길이...성관계가 필수코스처럼 되어버린 남녀간의 연애풍속도..길거리에서 질펀한 스킨십을 즐기는 남녀의 모습...여자친구와의 데이트비용을 위해 회사물품을 빼돌리다 적발된 어리석은 남자 이야기..남자의 자격을 들이대는 사회...욕망의 거래는 지금도 거리를 메우고 있지는 않는지..

  부모자식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자식을 고객이나 애완동물로 여기는 부모들은 마음으로 자녀와 하나 되기보다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오늘도 지갑과 열심히 교류하고 있다..그런 것에 의한 대가는 일종의 자기만족은 아닐까? 자녀의 성적 자녀의 성공. 그것을 위해 비싼 대가를 치루지만 막상 그 자녀들은 자신들을 스폰서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할 듯 하다..여대생들만 스폰을 갖는 것은 아닌 것 같다...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는 영원한 스폰이 아닐까?..

  199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한의사부부살해사건을 기억하는가? 꽤나 부유했던 그들을 살해한 것은 바로 그들이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들이었다..끔찍이 사랑한 아들이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하다니..이 사건의 배후에도 부모자식간의 스폰관계가 있었다. 끊임없이 자식의 욕망을 채워주는 부모 하지만 그들의 부모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아들의 욕망을 따라 가지는 못했다..그는 마침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통 채로 잡아 보려고 했고 동화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삶을 망치고 말았다..아들을 패륜아라고 욕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스폰서 부모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얼마 전에 엄마를 목졸라 죽이고 시체를 집에 한 달 동안이나 방치했던 고교생의 경우이다. 남편과 이혼한 엄마는 아들만이 희망이었다..문제는 그의 남편이 생활비를 제대로 보내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왜 문제냐고?...물론 그 자체는 상당히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 엄마로 하여금 자식에 대한 집착을 현실화시킬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먹고 살기에 바쁜 엄마라면 그렇게까지 집착을 할 수도 또 마음으로 한다고 해도 실현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집착은 결국 자신의 죽음을 부르고 말았다. 그녀의 여동생이 재판정에서 "언니에게 000밖에 없었어요"라고 했단다...엄마의 병적인 집착을 잘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살해당한 엄마는 억울하다고 호소할지 모른다.."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건데"라고 말이다..하지만 그녀가 남편과 원만하게 살아서 자신의 욕구를 분산시킬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자녀가 여럿 있었다면...스토커의 집착이 용서된다면 그녀의 집착도 용서되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물론 그녀의 병적인 집착을 가지고 아들의 죄를 합리화시킬 생각은 없다..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엄마를 자식들이 다 살해한다면 우리나라 엄마들 중에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집착을 아름다운 모성애로 포장하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가치관도 함께 합리화시키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랑이란 상대를 잘 해주는 것일까? 또는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명품가방을 원하는 여성이 있다고 하자. 그녀에게 명품가방을 선물하면 사랑일까? ..하지만 가난한 남자친구보다 그녀의 스폰인 돈 많은 남성이 명품가방을 더 흔쾌히 사준다고 하여 그가 그녀를 더 사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기독교신앙에 철저한 여자친구가 성매매여성보다 성관계에 소극적이라고 해서 그녀가 그를 덜 사랑하는 것일까?..물에 빠진 내 자식을 인명구조대원이 아빠 대신 구조했다고 해서 그가 내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이 비유가 현실에서는 버젓이 통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을 해 보길 바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음만 있으면 되지 뭔가를 주거나 또는 상대에게 헌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물질도 있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물질을 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욕구이다..받고 싶은 마음 역시 그렇다..성관계를 통해 잠시나마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 역시 자연스러운 욕망이다..그걸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염불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라는 말은 종교에만 통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설교에는 관심이 없고 헌금액수에만 관심이 있다"라고 해야 불교신자들에게 욕을 덜 먹을 것 같다..관심 없는 일에 마음이 모아지겠는가?..염불은 힘을 잃고 설교는 은혜가 안 될 것이다..상대보다 상대가 해주는 것에 관심이 집중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대한 관심이 남아 있을 여지가 있겠는가?

7. 진정한 마음의 사랑은 가슴에 행복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다...'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번역 되는데....한마디로 너무 심한 충격을 받고 나면 그것이 오래오래 심지어 평생을 가는 상처가 되어 그 사람을 괴롭히는 증세라고 한다. 물론 누구나 절대 피하고 싶은 것이다...나 역시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다..그건 어렸을 때 당한 왕따의 기억이다...그것이 남의 비판에 가끔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할 정도의 과잉반응을 보이기도 한다..제정신이 들고 나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다행히 폭력을 휘둘러 남을 해치는 일은 없지만 그렇게 남과의 관계를 망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왠지 어려서 겪은 왕따의 공포가 나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의미의 트라우마(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도 있을 것이다..친구들과의 좋은 추억 첫 사랑의 기억. 보람된 일을 했던 뿌듯한 기억 등등...그런 것이 가슴에 가득할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을 느낀다..그것이 과거의 일일지라도 오래 오래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경우는 종종 있다..인간은 추억과 꿈을 양식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추억이 있기에 현재를 이기고 꿈이 있기에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서영은의 '내 안의 그대'라는 노래는 그렇게 채워진 마음의 행복을 잘 노래하고 있다. 노래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대가 없던 어제의 나는 없던 것 같아요" 사랑의 행복으로 주인공은 "내가 나인 것이 행복"하고"모든 세상에 감사"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기에 다시 혼자가 된다 해도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다고 노래한다. "내 안에 그대 있음이 나를 살아가게 할 테니 그대가 날 지켜 줄 테니." 사랑의 행복에 의한 좋은 '트라우마'를 잘 묘사한 노래인 것 같아 무척이나 감동적이다...마음으로 채워진 사랑에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그것들은 그저 주변의 장식일 뿐....

8. 목적을 위한 만남과 만남을 위한 목적

  티브이광고에서 두 남녀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만나면 뭐할까? ...밥먹고 영화보고 차 마시고...그럼 다음에는? 차 마시고 밥먹고 영화보고 ..그리고 그 다음엔? 영화보고 밥 먹고 차 마시고.." 자세히 보면 결국 둘은 언제나 같은 것을 하고 있다...식사와 영화 그리고 차 마시기..물론 실제로 이런 식으로 같은 것만 하는 커플은 거의 없겠지만..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만나기 위해서 만나느냐 아니면 만나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이다..편견인지 몰라도 내 경험을 동원해 분석해 보면 남자들과 여자들의 만남의 성격이 다른 것 같다...남자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술을 마시기 위해 게임을 하기 위해 만난다..여자들은 만나기 위해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한다..뭐가 다르냐고?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남자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 만나고 여자들은 만나기 위해 무엇을 하니까..

  어느 쪽이 더 진실할까? ..이 역시 단정 짓기 어려우나 무엇을 하기 위해 만나는 경우에는 만나는 목적이 없어지면 만나지 않게 된다...하지만 만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경우라면 쉽게 관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지 않은가? ..이유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상대가 목적이고 상대를 만나는 것이 행복한 관계라면 상대가 소멸되거나 상대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존재로 바뀌는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만남은 계속 될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여자아이들에게 나는 가끔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휴일이나 시험이 끝난 직후에 만나서 "시험 끝나는 날 뭐했니?" "휴일에 뭐했니? "라고 말하면 "친구랑 만났어요"하는 경우가 많다..남자아이들의 경우엔 집에서 게임하는 방콕이 많지만..."만나서 뭐했니?" 하면 "그냥 돌아다녔어요.."라는 답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그것도 한 두 시간이 아니라 거의 한나절을 말이다..직접적 이유는 물론 뭔가를 할 돈이 없어서이지만 그녀들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어떻게 한 나절을 그저 같이 돌아다닌다는 것인지..

  하지만 그들은 아직 그럴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내 자신이 부끄럽다..상대가 아니라 상대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산 내 자신이 왠지 마음의 교류를 잊고 사는 것 같아서 말이다..그리고 생각한다. 저들도 나이가 들면 나 같이 되는 것은 아닐까? ..

  연인과의 만남도 계획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자식들과 함께 있어도 뭔가 좋은 일을 벌여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그냥 보고 싶어 친구를 불러내면 왠지 욕먹을 것 같다...그냥 수다가 떨고 싶어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하면 "바쁜 세상에 할 일도 되게 없네 "라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아 전화기에 손이 안 간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한 제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더니 카카오톡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선생님, 왜 전화하셨어요? 저 지금 과제중인데요라고. 그래서 우리 사이에 무슨 이유가 있어야 되냐?”라고 답장을 했다. 사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래요 전화는 그렇습니다라 고 다소 차가운 답장이 날아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차라리 과제가 바빠서 전화를 못 받는다고 한다면 이해가 가지만 전화는 특별한 용무가 있을 때 하는 것이라는 제자의 주장(?)이 다소 의아했던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음성통화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경험이기도 하지만 왜 우리는 이렇게 상대와 나 사이에 무언가를 매개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씁쓸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식의 만남이 언젠가는 반드시 벽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다...상대를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주기 위하여 애쓰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인간은 유감스럽게도 쉽게 싫증내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돈이든 선물이든 이벤트든 상대는 곧 질리게 되어 있다..그럴 때 마다 더 많은 돈이 더 많은 선물이 더 많은 이벤트를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일본 속담에 " 돈이 떨어질 때 인연도 끊어 진다"라는 말이 있다..돈으로 선물로 이벤트로 매개된 사랑은 그것이 한계에 부딪힐 때 무너질 것 아니겠는가?...

  문제는 우리의 현재상황이 더 이상 상대의 높아지는 욕망을 맞추어 줄 수 없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노후자금을 깨고 자식의 호화결혼식을 해 준 부모에게 더 이상 자식에게 줄 것은 남아 있지 않다...지금의 자녀들은 현재부모들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으니 그들은 자녀들에게 호화로운 결혼 따위 시킬 힘이 애시당초 없다..

9. 마음의 사랑만이 답이다.

  답은 간단하다...'소유의 사랑'에서 벗어나 '마음의 사랑'을 하면 되는 것이다..예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구원을 위해 바쳤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주는 사랑이 좋다는 것하고 특정인에게 있는 대로 없는 대로 퍼주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자식에게 연인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가진 것을 무조건 퍼주고 예수의 사랑을 실천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큰 오해이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 예수는 말했다..깨달음이 없이 그저 떡을 배부르게 먹은 것 때문에 나를 따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예수는 기적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원한 것이다..기적은 그저 수단일 뿐..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의 책임은 우리의 잘못된 사랑 바로 소유의 사랑에 있음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될 것이다..적어도 왜곡된 의미의 눈물은...해외 입양된 고아들은 왜 그토록 낳아준 부모를 찾아보려고 애쓸까? 그들의 부모가 해 준 것이라고는 고작 자신들을 버린 것 뿐 인데 말이다..그들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마음의 사랑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가난하게 자란 자녀는 부모의 선물이 아닌 마음을 보고 자랐기에 더욱 부모를 사랑하게 된다..선물과 돈으로 양육된 자녀는 부모는 보이지 않고 선물과 돈만 보고 자란 셈이 아닐까?...그들은 부모라고 쓰고 돈 선물 이라고 읽을 것 같다..아니 어쩌면 스폰이라고 읽을지도..

  찰리 채플린과 그의 네 번째 부인인 우나오닐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아는가? 세 번의 결혼에 실패한 채플린 그의 명성과 부가 오히려 그로 하여금 진실된 마음의 사랑을 하지 못 하게 한 것이다. 우나 오닐과의 극적인 만남은 그의 삶을 바꾸었고 34년여의 결혼생활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그는 말한다. 좀 더 일찍 우나를 만났다면 이렇게 방황하고 살지 않았을 텐데...배우도 아닌 평범한 여자 오닐에게 그가 느낀 마음의 사랑 ...우리가 고도성장과 물질적 풍요 속에서 소유에 찌들며 살아가는 중 잃어버린 소중한 그 무엇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