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본소득과 함께 떠나는 미래여행(6)

닥터 양 2019. 11. 20. 00:25

3장 소크라테스는 어떤 세상을 원했는가?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재판정을 메웠다. 일부는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다. ‘만세를 외친 사람도 있었다. 지지자들의 태도는 가히 광신도의 그것에 가까웠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기세가 한 풀 꺾이는 것 같아 보이기조차 하였다.

잘 들었습니다. 이제 고소인 측에서 소크라테스 피고에 대한 심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소인 대표는 일어서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심문을 시작했다.

  “피고가 선의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 것이 사실이라면 조금은 감형의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고의 주장에 납득할 수 없음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진 것 그리고 일자리의 감소에 대하여는 우리들도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피고와는 달리 저희는 다른 처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생각하는 대안에 대하여 설명하기 바랍니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까 증인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

하지만 피고인의 입으로 정리하여 주시면 재판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제 생각을 보다 확실하게 전할 기회로 여기고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생각은 매우 단순하고도 명쾌합니다.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을 하여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물론 부유층들은 예전부터 노예들에게 노동을 맡기고 살았기 때문에 예외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각종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어 살아왔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매우 명예롭게 여겨왔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하는 믿음은 우리사회의 중심적인 윤리였습니다. 노동을 통해 각종 재물과 서비스가 제공되어져 사회가 유지되니 노동이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노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부자들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노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자만이 아니라 일부 고소득자들 심지어 중산층의 일부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노동을 천시하였고 그래서 노예들에게 노동을 맡기고 자신들은 좀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치활동입니다. 우리 아테네의 빛나는 전통에 의하면 정치가들은 무보수로 봉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유한 또는 여유있는 사람들이 정치활동에 중심이 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동을 신성시하는 한편 노동을 천시하는 것이 한 사회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노동은 우리에게 어떤 것일까요? 신성한 것일까요 아니면 천한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동은 천한 것도 신성한 것도 아니라고. 그럼 무엇이냐? 그냥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부자들은 노동이 필요 없으니 하지 않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하니 하는 것일 뿐 그것을 신성하다느니 천하다느니 하는 식의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노동은 해야 할 의무도 아니고 해서는 안 될 천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싫든 좋든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저렴하게 아니 가능하다면 무료로 노동을 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노예란 존재는 바로 그것을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노예에게는 최소한의 생계보장 이외에 어떠한 대가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예는 숫자도 제한적이고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시민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노동을 하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가지가 서로 보완관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 드린 것처럼 부자들은 정치적인 실권을 장악하면서 대가를 훨씬 덜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노예를 더 활용하게 되어 시민의 노동을 줄여 갔고 남은 시민노동조차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죠. 그러니 시민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적은 일자리에 의존하게 되어 궁핍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부자들이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다면 시가 그것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가 시민들에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소득을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제공하게 된다면 일자리의 소멸이나 일자리로 인한 소득의 부족에 의한 시민의 궁핍함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와 저의 동료들이 그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시민들은 시가 제공하는 기본소득을 받는 것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최소한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으로 인해 일자리의 감소나 소득의 결핍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시가 시민공동체를 유지하게 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의 재원은 시민 전체가 벌어들이는 소득에서 조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체 적으로는 부자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입에 대하여 높은 세금을 과세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매우 높은 비율로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절반수준의 세금만 거두고 있습니다. 그것을 원래대로 하기만 해도 상당한 액수의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재원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필요 없는 시의 지출을 줄이도록 할 생각입니다. 국방과 전쟁비용은 매우 중요하기는 하나 우리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동맹과 우리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동맹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스파르타는 계속 군비를 확장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델로스 동맹의 도시들은 강경책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스파르타와의 대화를 통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돼서 전쟁을 피하고 국방비를 줄인다면 많은 재원이 마련될 것입니다.

  각종 탈세와 면세 등에 대하여도 전면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하경제를 파헤쳐 숨겨진 재원을 찾아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부자들 중에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자산을 시외로 옮겨 놓고 세금을 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시외의 재산에 대한 징벌적 과세도 감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노동을 통해 살아갈 길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여전히 노동을 통해 살아갈 길만을 제시하여도 의미가 없습니다. 노예들은 우리들의 일을 빼앗고 있으며 그들의 능력은 우리보다 출중하여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부자들은 남은 일에 대하여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그들에게 저항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시가 나서서 시민의 몫을 대신 받아내서 돌려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제도입니다.

  저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쳐 왔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무지를 인정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덕목입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절대시할 때 우리는 결코 겸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자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절대시하여 그릇된 판단을 합니다. 기본소득이라는 파격적 제안에 우리는 자신들의 제한된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회가 왔습니다. 이번 재판이 보다 현명한 판단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