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작은 것이라도 ‘크리스마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9장 7절)
과부의 두 렙돈에 대한 가르침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야. 마음이 중요해!” 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는 가르침도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는 적게 내는 것을 합리화시키거나 미화하려는 의도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과부는 일부러 적게 낸 것이 아니라 정말 그것 밖에 없어 전부를 드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과 달리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웠던 시절 과부의 삶은 남편이 큰 재산이라도 남기지 않은 이상 비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게서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잘 돌보라고 하셨죠. 그런 과부가 헌금을 하는 것은 비록 액수가 적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생활의 질을 극단적으로 희생해 가면서 드려야 했습니다. 두 렙돈을 드린 과부는 바로 그런 희생을 각오하고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가톨릭를 믿으시는 저희 어머니께서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를 하시면서 헌금 액수가 무슨 문제냐고 하실 때 저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저희 어머니는 엄밀히 말해 과부 맞습니다. 그것도 바울이 도와주라는 과부인 60의 나이를 넘어 67세에 과부가 되어 지금은 80이 넘으셨으니 언 듯 두 렙돈의 과부와 처지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는 재산도 있으시고 안정적 수입인 월세도 있으시니 전혀 입장이 다르십니다. 그런 분이 차마 제가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인색하게 헌금을 하시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닙니까? 오죽하면 저는 할 말을 잃어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가톨릭에 대하여 잘은 모르지만 한가지 결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의식에 치우쳐 말씀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가톨릭도 미사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고 신부나 수녀들의 저서도 제법 나오며 그것이 일반인들에게도 꽤나 읽히고 있다는 점에서는 평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빈약할 뿐 아니라 믿음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가르침의 비중이 커서인지 의외로 가톨릭 신자들의 믿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오해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톨릭의 미사나 결혼식에 참가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장엄함에 놀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의식은 글자 그대로 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와 너무 멋있다’ 오죽하면 ‘나도 가톨릭으로 바꿀까? 어차피 예수님 믿는 것인데’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 정도였습니다. 특히 저의 여동생이 결혼식을 가톨릭교회(‘성당’이라는 말은 공식 명칭은 아닌 것 같습니다.)에서 올렸는데 (원래 개신교도였던 여동생이 이때는 신앙을 버린 상태라 생긴 일입니다. 그냥 부모님의 의사에 따라)너무나 화려하고 장엄해서 입이 벌어졌습니다. 개신교의 결혼식은 그에 비하면 초라해 보였습니다. ‘아 왜 우리 개신교는 이렇게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라도 이런 결혼식을 시켜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럼 개종?
하지만 그런 화려하고 장엄한 의식이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가톨릭의 사제들의 메시지는 짧고 간결합니다. 개신교가 가르침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과 달리 가톨릭은 의식 자체를 중시하는 것 같고 그래서 가르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문인지 오해를 전제로 말씀드리면 주변의 가톨릭신자들의 신앙에 대한 열정도 상대적으로 약해 보입니다. 그들이 드러내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물론 신부나 수녀들은 자신의 삶을 글자 그대로 드렸으니 개신교 지도자들보다 더 나은 신앙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지만. 같은 개신교라도 여호와의 증인이 믿음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은 그들이 극단적으로 의식을 축소시키고 말씀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유학 할 때 다니던 일본인 교회의 목사님은 개신교라는 점을 감안해도 말씀에 대한 강조를 유달리 강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수요예배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모세가 40일간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을 본문으로 삼아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교회는 목사님이 중직자를 훈련시킨다는 의미에서 수요예배의 설교를 자신과 번갈아 가며 하게 했는데 그날은 제가 안수집사를 받고 첫 설교여서 무척이나 긴장을 했지만 막상 강단에서는 조금도 떨지 않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제 설교가 끝나자 목사님께서 보충적인 이야기를 하셨는데 “모세가 왜 시내산에 갔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말씀의 종교이기에 우리는 말씀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25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첫 설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어머니의 오해는 늦은 나이에 가톨릭에 입문한 탓으로 생긴 것인지 모릅니다. 가톨릭을 믿을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비방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님을 양해 바랍니다. 제 믿음이 성숙해져서인지 지금은 그러한 장엄한 의식이 거추장스러워 보입니다. 그러한 의식에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한다면 문제이지요. 남녀가 연애를 하는데 이것저것 따지면 진실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다른 교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것이 결국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를 헌금의 액수는 얼마이든 상관없다는 식의 아전인수식 이해를 가져왔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액수가 아니라 마음이기에 액수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1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내는 10만 원의 헌금과 10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내는 10만 원의 헌금은 그 가치가 전혀 다릅니다. 1,000만 원을 버는 사람에게 10만 원은 너무나 적은 돈이라 부담이 없지만 100만원 버는 사람에게 10만원은 조금은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아무리 절약을 해도 일정한 지출은 필요한데 그것이 수입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커질수록 여윳돈이 늘어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마음을 다한 헌금을 한 것일까는 분명하죠.
이해하기 어렵습니까? 그럼 이렇게 생각하죠.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고 합시다. 상대가 얼마나 자신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냐에 따라 식사비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또는 그 만남이 중요한지에 따라. 유명인사들과 점심을 하는 것을 두고 경매를 하는 일이 있지요? 가끔 그런 경매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대의 가치를 그만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나타납니다. 물질은 거저 생기지 않습니다. 땀과 눈물의 결과이죠. 그러니 물질을 많이 쓰는 것은 자신의 땀과 눈물을 많이 쓰는 것과 같습니다.
과부가 두 렙돈을 벌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처럼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와 전혀 다른 시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여자들이 혼자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그러기에 비혼이니 하는 것을 생각하거나 실천할 여유가 없기에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고 과부의 재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죽하면 ‘형사취수제’를 만들어 과부들을 보호하려고 했을까요? 우리 입장에서는 ‘아니 형수와 결혼을 해’라며 비난하겠지만 환경이 훨씬 우리보다 어려운 중동에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아와 과부들은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긴 제도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은 부자의 거액보다 액수는 적어도 그녀의 눈물과 땀이 전부 들어간 것이니 예수님의 칭찬을 들은 것입니다. 과감히 말씀드리면 부담이 없이 드리면 그것은 헌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기부금이죠. 기부금도 C.S. 루이스는 부담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하물며 헌금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헌금의 헌(獻)은 바칠 헌 자입니다. 헌신하면 몸을 바치는 것이지요? 돈을 바치니까 헌금입니다. 헌신적 사랑 하면 적당히 하는 사랑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한 사랑입니다. 그럼 헌금은 뭡니까? 모든 것을 다하여 드리는 돈입니다. 그렇죠? 그러니 제 말씀이 과장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편하게 내는 수준에서 헌금을 하면 하나님게서는 그 정도 수준의 평가만 하실 것입니다. 마치 접대를 할 때 적당히 하면 상대도 적당하게만 감사하는 것처럼.
2012년의 일입니다. 저는 금전적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공식적으로 일해서 받은 수입은 겨우 6만 원이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것도 교회에서 통역을 하고 받은 사례비입니다. 돈을 받고 놀랐습니다.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봉사니까 사례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수입이 생기자 "사례는 하나님이 하십시다"고 하며 사양하게 되었지만 그 때는 너무 돈이 아쉬워서 그대로 고맙게 받았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일부러 일은 안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이력서를 넣어도 취업은커녕 면접의 기회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은 이때 말고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었고 특히 어머니에게 가장 폐를 끼쳤습니다. 하지만 50이 다 된 사람이 함부로 손을 벌릴 수는 없었기에 제 주머니는 자주 비어 버렸고 결국 그것이 저의 삶을 집과 도서관을 왕복하는 단조로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마르크스가 돈이 없어 런던도서관에 다닌 것과 비슷한 처지였죠. 그것이 나중에 큰 재산이 된 것조차 비슷합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처럼 정말 배고픈 처지는 아니었으니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교회헌금이었습니다. 헌금 바구니가 와도 드릴 게 정말 없으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빈손을 집어넣고 헌금을 하는 흉내를 낸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눈물 어린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헌금할 돈을 주십시오. 제발요’라고. 도서관에 갈 때 도시락을 준비하니 (물론 집에서)굶는 일은 없었습니다. 집 냉장고에 간식거리도 많으니 그것도 가져가서 먹었으니 식생활에는 지장이 전혀 없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그래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서 지냈고 그런 면에서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헌금을 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점에서도 힘들었습니다. 핸드폰 요금이 밀려 전화가 끊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교통비가 없어 누가 만나자고 하면 겁부터 납니다. 결국 역무원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애원을 해서 해결하거나 심지어 아무도 안 볼 때 그냥 건너가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하철 공사 여러분에게 사죄드립니다.
외식? 꿈도 못 꿈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때만 해도 먹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지 않아서 그것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백화점 옥상에서 공부를 할 때가 있었는데(도서관 휴관일) 아랫 층이 식당가였습니다. 화장실이 거기에 있어 내려가면 휘황찬란한 쇼윈도에 전시된 음식을 보며 군침을 흘린 적도 많습니다. ‘아! 한 번만이라도 먹어 봤으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막상 나중에 돈이 생겼을 때는 전혀 갈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사람은 가지지 못하는 것에 더 큰 욕망을 느끼나 봅니다. '하던 00도 멍석 깔아 놓고 하라고 하면 안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곳을 가면 옛날 일이 떠올라 미소를 짓습니다. 예전에 내가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음식을 보면서 그 때는 왜 그렇게 먹고 싶어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외식은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다르죠. 그냥 먹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럴 돈이 있다면 좀 더 의미있는데 곳에 쓰고 싶습니다. 어쩌다 외식을 하고 나면 먹고 나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접대 이외에는 삼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서인지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러니 유튜브를 보다가 왜 그렇게 먹는 것 광고가 많은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니 이렇게 까지 먹고 싶은 게 많은 건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는 걸까요?
카페는 어떻고요? 길을 가다 보면 카페를 지나가는 일이 많은데 가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아 나도 저런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예전에 카페에서 공부를 해 보아서 압니다. 적당한 소음과 맛있는 커피와 함께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하지만 그 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카페 갈 돈이 있으면 헌금을 하겠지요. 지금도 카페는 가끔 가고 싶고 그래서 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로 가는 카페는 별다방도 콩다방도 아니고 맥카페이니 가격은 매우 저렴합니다. 1-2,000원내로 이용가능하니까요.
그 때 제가 책을 냈는데 궁여지책으로 그 책을 팔아먹을 생각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선배를 만나 책을 주면 아마 돈을 주거나 아니면 몇 권 팔아 줄거라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무도 돈을 지불하지 않았고 더 팔아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고맙다 그걸로 끝이거나 커피 한 잔 사주는 것이 다 였습니다. 지금은 뻔뻔해져서 “책 좀 사줘요”라고 할 텐데 그때만해도 그럴 배짱도 용기도 없었습니다. 돈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돈을 탈탈 털어 교통비를 내고 갔는데 못 받았으니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던 때도 있습니다. 결국 역무원에게 하소연하거나 슬쩍 넘어갈 수 밖에요. 엄청 야속하더군요.
그런 와중에 가끔 아주 가끔 헌금할 돈이 생기면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럼 그 돈 다 헌금했습니다. 액수는 보잘 것 없어도 예전에 그 보다 훨씬 큰 돈을 드릴 때보다 더 기뻤습니다. 감사 기도를 하면 눈물 콧물 다 나올 정도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돈을 다 드리면 주머니가 지갑이 다시 텅 비지만 제겐 그런 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집에서 기본 생활은 보장해 주는데 돈이 없다고 큰일이야 나겠냐고. 그런 점에서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고생하면서도 주님께 집중할 수 있었으니.
주님의 연단이 끝나고 다시 경제활동을 하게 되자 교회의 헌금 시간은 제겐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헌금 시간에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지만 그보다는 주님께 드릴 돈이 이렇게 많다니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돈을 주셨으니 ...그 은혜 뭘로 갚겠습니까?’ 이래서 ‘약할 때 강함 되시네’라는 찬양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몰랐던 감동 그리고 간절함이 절로 나오니 믿음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시련이 축복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정말 시련은 위장된 축복이었습니다. "왜 나만 이런 고난 있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고 감사하세요" 그때 저는 이 찬양을 얼마나 자주 불렀는지 모릅니다. 아울러 욥기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견뎠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의 필자의 글을 읽었을 때 저는 주마등같이 그때의 일이 떠올라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주님의 연단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 때만큼 혹독하지 않았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습니다. ‘아 주님께서 또 나를 축복하시려나보다’라는 소망을 잃지 않고 견뎠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견디기가 쉽습니다. 비록 아파서 눈물의 기도를 할지라도 그 소망을 붙들고 갈 수 있기 때문이죠.
작은 것이라도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내놓으시면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축복을 주시고자 합니다. 마치 유치원생 자식이 작은 정성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의 필자는 여관주인이 마구간을 빌려준 것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읽어 보니 말이 되네요. 함부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감사해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에서) 라는 찬양이 생각납니다. 하찮은 것 같은 나의 존재 나의 헌신이 하나님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헌신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